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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한일관계 악화를 불편해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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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한일관계 악화를 불편해하지 않나

[좋은나라 이슈페이퍼]<70> 적대적 공존에서 상생적 공존으로

한일 양국 정부는 한일관계 파탄의 원인을 상대국 정부에 전가하며 대립하고 있다. '우경화 프레임'과 '한국 때리기'에 빠져 있는 양국 언론은 상호 적대적인 국민 여론을 조성하며 이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정치리더십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양국 정상이 만나기 힘든 상황이라면,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일본 국가안보국 사이의 정례 대화 등 청와대와 관저의 의사소통 통로를 확보하여야 한다. 또한, 상대국에 대한 객관적이고 미래지향적 보도가 이루어지도록 한일 언론인 대화를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역사문제와 경제·안보문제를 분리하여 대응함으로써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이 한국의 원리원칙주의에 있다는 비난을 피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중견국가로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슈퍼파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기 발언력을 확보하기 위한 연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한일관계의 전략적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생적 공존'을 추구하는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최근의 한일관계는 참으로 이상하다. 박근혜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한일 양국 정상은 미국을 매개로 잠시 만난 것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회담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아베 신죠(安倍晋三) 내각이 수정주의적 역사관에 따라 한국 국민감정을 건드리고 있는 사정을 보면 작금의 한일관계는 그다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2005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등 역사문제의 분출로 한일관계가 험악했을 때에도 한일 정상 간 대화가 끊긴 적은 없었다. 더 과거로 거슬러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한일관계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일본 각료의 망언, 독도 문제와 이와 연관된 한일 어업협정 개정 문제 등으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한일 정상은 만나서 이들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비정상적 한일관계의 원인 1 : 정치리더십과 국민여론

이렇게 비정상적 한일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원인을 찾는 곳에서 관계 정상화의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은 그 원인을 구조적 변화에서 찾는다. 동아시아 세력균형의 변화로 한일관계의 전략적 가치가 저하되었고, 일본의 우경화로 역사전쟁이 시작된 이상, 한일관계의 악화는 구조적으로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일관계의 전략적 가치가 하락하였다는 것, 역사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곧 한일 정상 간 대화의 부재, 즉 '외교의 방기'를 의미할 수는 없다. 결국 비정상적 한일관계의 원인은 정치리더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표방한 박근혜 정부, '전후의 대개혁'을 내걸고 있는 아베 내각은 모두 경제 활성화에 정권의 사활을 걸고 있다. 정책 우선순위에서 한일관계의 개선이 뒤로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실한 대응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원칙외교를 고수하고 있고, 아베 내각은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과 '강한 일본'의 건설을 위해 수정주의 역사관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간 정치적 타협은 기존 정책으로부터의 후퇴로 비쳐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한일관계가 '국내문제화'되어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이기에, 양국 정부는 한일관계가 정치쟁점화 되는 것을 애써 피하고 있다. 오히려 양국 정부는 한일관계 파탄의 원인을 상대국 정부에 전가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지 모른다. '적대적 공존'이야말로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러한 양국 정치리더십의 '적대적 공존'은 국민여론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은 '전쟁', '헤이트 스피치', '역사지우기', '우경화'라는 키워드로 이해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 한국은 '중국 편승', '일본 무시', '떼쓰기(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거 일본 정부의 노력을 평가하지 않고 원리원칙만을 내세우는 것)', '고자질 외교(국제사회 혹은 다른 나라와의 양자관계에서 일본의 역사인식을 비난하는 것)'라는 키워드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누구도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국에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을 찾고 있으며, 상대국이 백기를 들 때까지 압력을 넣기를 원하고만 있다.

이러한 상대국 인식은 매스미디어의 상업주의와 연동되며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다. 일본에서 '혐한'이 비즈니스가 되어가는 것은 이러한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울분을 씻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매스미디어 또한 '우경화 프레임'에 갇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가령 한국 언론은 작년 고노담화 검증보고서가 고노담화를 훼손시키고 무력화시키려는 아베 내각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도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존재하지만, 고노담화 검증보고서는 고노담화 작성과정에 어떠한 문제점도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담화의 계승을 천명했다. 적어도 고노담화 검증보고서 이후 아베 총리는 고노담화 수정을 얘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고노담화 검증보고서가 발표된 날 이를 평가한다고 한 것이다. 

작년 일본 중의원 선거 보도 또한 '우경화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기실 중의원 선거는 자민당의 압승이었지만, 동시에 우익 정당이었던 차세대당의 몰락, 위안부 문제로 망언을 일삼았던 일본 유신회의 후퇴, 공산당의 선전 등 일본 국민의 자정노력 또한 두드러졌던 선거이기도 하였다.

비정상적 한일관계의 원인 2 : 한일 간 상호의존의 특수성

아마 비정상적 한일관계가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한일관계의 악화가 국민 실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미관계는 곧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기에, 관계가 악화되면 불안감을 유발하게 된다.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아가는 상황에서 한중관계의 악화는 또 다른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한일관계는 악화되어도 생활에 어떠한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불편과 불안이 없으니 개선할 의지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왜 더 이상 한일관계의 악화를 불편해하지 않는 것일까? 이는 한일 간 상호의존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먼저 한일 간 안보적 측면의 상호의존성을 보면, 한일 간 직접적 안보협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물론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표방하며 동맹국 간 연대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전략 하에 '한일관계는 곧 한미관계이다'는 공식이 작동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여론은 아베 내각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 헌법개정 움직임, 방위력 증대 등을 두고 '위협'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이는 '우경화 프레임'과 연동되어, 일본에 대한 위협의식을 높이고 있다. 일본 여론 또한 최근 한국이 중국에 경도되어 가고 있는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고대부터 일본은 한반도를 '일본의 심장을 겨눈 칼'로 인식하였고, 지정학적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한반도가 어느 영향권에 포섭되느냐를 매우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일본의 한반도 인식에 의하면 최근 한중관계의 긴밀화는 매우 '위협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현실상으로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공유하고 있기에 안보적 상호의존성이 높지만, 의식상으로는 서로를 위협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한일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 또한 복잡하다. 2014년 한국 무역에서 일본은 중국, 미국에 이어 3위다. 그러나 규모면에서 중국의 1/3에 불과하다. 우선 규모가 예전과는 달리 크지 않아 한일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 더군다나 한일 경제적 상호의존은 B2B(Business to Business)의 형태가 B2C(Business to Consumer) 형태보다 월등히 높다. 기업 간 거래는 정치적 관계에서 벗어나기에 한일 간 경제관계는 한일관계의 악화에 그리 큰 영향을 받는 구조가 아니다. 또한 중국에서 반일데모로 도요타 자동차의 매출이 감소했다는 보도는 있어도, 한국에서 일본제품, 일본에서 한국제품을 보이콧하여 매출이 감소했다는 보도는 없다. 정치에 민감하다는 B2C조차도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한일관계의 성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한때, 여행업계에서 일본 관광객이 격감했다고 아우성을 쳤지만, 요우커가 그 자리를 대체해주자 비명이 사라졌다. 한류산업 또한 비슷한 상황이다.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일본기업과 경쟁하는 한국기업은 반일의식이 팽배한 중국에서 반사이익마저 보고 있는 듯하다. 비록 미비하기는 하지만 한일관계의 악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한중관계에서 메우고 있는 형국이다. 더 정확하게는 한일관계의 악화에 가장 웃음 짓는 중국이 그 손실을 보전해주는 형태이다. 그러기에, 예전 같았으면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개선을 요구하던 경제계가 지금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상생적 공존을 향하여

기실 한일관계의 전략적 가치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된 지금, 한일관계를 1960년대 방식(냉전형), 1990년대 방식(탈냉전형)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찌 보면 한일 양국 모두 1990년대 방식으로 정의내려진 한일관계의 전략적 가치를 폐기한 것은 사실이나, 새롭게 한일관계의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지 입장을 정리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기에 정치리더십과 국민여론은 미국과 중국 문제에 골몰할 뿐 한일관계를 등한시하고 있다. 아니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큰 그림이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두 손 놓고 있다는 게 올바른 표현일지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슈퍼 파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두고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강한 일본'을 표방하며 중국과의 대립적 상황도 감내하려는 아베 내각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을 심화시켜 '동맹 관리'를 위한 엄청난 비용(방위분담금 지출, 원하지 않는 전쟁에의 참가 등)을 지불해야 할 것이며, 언젠가 국내적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일본에는 원칙외교를 고수하면서 대중 관계는 긴밀화하고 있다. 대일 관계를 도외시한 채 중국에 경사하는 한국에 미국의 경고장이 언제 날라 올지 모른다. 재작년 12월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는 바이든 미 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실수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돌아보면, 아베 내각 이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은 지금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를, 그리고 박근혜 정부 이전의 이명박 정부는 아베 내각의 딜레마를 비슷하게 경험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이 미중 양강 시대에 직면하는 외교적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동일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북핵문제의 해결, 중국 경제에의 과도한 의존에 따른 위험성 회피, 미국에의 과도한 안보 의존에 따른 위험성 회피 등 여러 면에서 한일 양국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실 아세안(ASEAN)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중견국가(middle power)로서 아세안을 포함하여 미중이라는 슈퍼 파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기 발언력을 확보하기 위한 연대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한일관계는 한국 외교와 일본 외교의 지평선을 확장하는 강력한 토대가 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한일관계의 전략적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생적 공존'을 추구하는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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