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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경찰 조사 중엔 화장실도 허락받고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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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정원·경찰 조사 중엔 화장실도 허락받고 가야 할까?

[프레시안 books] 장경욱 변호사가 말하는 '피의자 신문의 비밀' <2>

지난 1월 23일, 프레시안 북스는 허위 자백을 이끌어내는 미국 수사기관의 기법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허위 자백과 오판>(후마니타스, 2014년 12월 펴냄)에 관한 장경욱 변호사의 서평을 실었다. 이에 더해, 한국에서 이뤄지는 피의자 신문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짚는 장 변호사의 글을 5회 정도 게재한다. '편집자'

피의자 신문의 비밀
피의자는 왜 겁먹을 수밖에 없는가?

피의자는 범죄 혐의자다. 수사 대상이다. 피의자 신문은 범죄 혐의에 대해 추궁하여 진술을 듣는 절차다.

누구나 수사기관에 피의자로 출석하여 피의자 신문이라는 조사를 받게 되면 시쳇말로 '쫄게' 마련이다. 쫄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대개 거짓말이다. 쫄지 않으면 수사관이 쫄게 만든다. 왜 쫄게 될까.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로 부르면 자기 마음대로 안 갈 수 없으니까. 체포, 구속을 각오하면 안 갈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어디 그런가. 차라리 몸이 아파 병원에라도 입원해 있으면 모를까. 수사기관은 꼭 출석시켜 조사한다. 가끔 전직 대통령의 경우 집으로 찾아가 조사하거나 서면으로 조사하는 사례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아무나 그런 특혜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니 가긴 가야 하는데, 불려 나가기 전부터 뭔가 심신이 답답해진다.

가보면, 내 집 같은 분위기의 피의자 신문 조사나 그러한 조사실은 없다. 수사관이 손님이고 피의자가 주인장이 되어 집 같은 편한 분위기에서 조사하면 얼마나 좋을까. 홈그라운드의 이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내 집 같은 분위기에서 조사하면 누구도 쫄지 않을 게다. 수사기관에 출석해서 조사받더라도, 수사관 이외의 여러 민원인이 오가며 볼 수 있는 탁 트인 곳에서 조사받는다면 훨씬 긴장감이 덜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사관을 따라가면 외부와 격리된 느낌을 주는 곳으로 안내되게 마련이다. 피의자는 그 순간 겁부터 나게 된다. 그렇게 겁이 나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자율 신경계가 작동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수사관은 격리를 통해 피의자에게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몰렸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그곳의 제왕은 수사관이다. 수사관에게 잘 보여야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처지로 전락한다. 그곳에 들어가면 수사관의 허락이 없는 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사 중에는 약속이 있어도 바로 일어나 나갈 수 없는 것인 양 착각하게 된다. 혹여 너무나 중요한 약속이 있어 조사를 중단시키고 퇴거라도 하려고 하면 괘씸죄에 걸려 독박을 쓰게 되지 않을까 눈치 보며 수사관에게 조사 중단을 애원하게 된다.

피의자는 형사 절차의 주체로서 수사기관과 대등한 당사자이고 무죄 추정을 받으며 존엄한 인격체라는 권리 의식은 가뭇없이 사라진다. 수사관과 마주 앉은 그곳에서 피의자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감히 행사하겠다는 용기가 나지 않게 된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수동적 처지가 되어 수사관이 시키는 대로, 유도하는 대로 따르는 신세가 된다. 화장실 가는 것도, 휴식을 취하는 것도, 담배를 피우는 것도 맘대로 못하고 수사관의 허락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들며 시쳇말로 '바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가당치 않은 일이 되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임의동행으로 수많은 시민을 불법 체포·연행하여 불법 감금 상태에서 피의자 신문을 하는 불법적 관행이 우리 사법 절차에서 어떠한 견제도 없이 버젓이 행해졌었다. 피의자 스스로 수사관의 요청에 자발적으로 응해 수사기관에 동행했고, 그곳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퇴거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수사기관에서 숙식까지 하며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지내면서까지 피의자 신문에 자발적으로 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도무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이지만, 실제로 다반사였고 1990년대까지 이어진 역사적 사실이다.

요즘도 과거의 불법적 임의동행의 잔재가 종종 모습을 보인다. 수사기관에 오전 일찍 출석하여 야간 및 새벽 조사까지 장시간 조사를 받고 나오는 피의자를 볼 때면 참 답답하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착해도 너무 착하다. 수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한 번 출석한 김에 피의자 신문을 모두 끝내고 마무리하는 게 좋아서 그런 것일까? 겁 많고 소심한 나머지 반인권적 수사 관행에 무기력하게 넋을 놓고, 진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의자 신문 중 화장실에 가거나 쉬고 싶다면? 허락받을 필요 없다

ⓒ후마니타스
수사기관에 출석해 피의자 신문 과정에 들어가면 피의자는 일방적으로 의심받고 추궁당하는 신세다.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항상 '을'이다. '갑'의 지배를 받게 된다. 피의자 '을'은 수사관의 '갑질'에 어쩔 수 없이 당하기 일쑤다.

'조였다 풀었다' 하는 수사관의 '갑질'에 평정심을 잃고, 편하지가 않다. 모든 것을 통제 당하는 수동적 처지로 빠져든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자리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지루한 추궁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자기 마음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갈수록 심해진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고, 옆에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의심을 더하며 추궁하는 눈과 목소리가 무서워질 뿐이다.

계속 불안하고 그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피의자에게 수사관이 그 해답을 넌지시 던진다. 별것 아니란다. 서로 눈을 부라리며 대들고 힘들게 하지 말고 사이좋게 넘어가잖다. '갑질'을 하던 수사관이 애원하며 도와달란다. 이럴 때 피의자들 중에는 그 동정의 눈빛에 마음이 동해 고마움을 느끼고, 뭔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이들이 있다. '그래 별것 아니라는데 인정해줘 버리지 뭐.' 그렇게 유혹에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길들여지기 십상이다. 왜 그렇게 되고 말까. 쫄았기 때문이다. 잘 몰라서 그렇게 된 거다. 누군가 옆에서 피의자를 도와주며 수사관을 견제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물음이 생길 만하다. 그럼, 피의자 신문 중 마음대로 조사를 중단시키고 나와도 되는가? 그렇다. 불구속 피의자라면 자기 마음대로 퇴거해도 상관이 없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는 구속 피의자의 경우, 조사 중단 및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보내줄 것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피의자가 조사 중에 마음대로 화장실에 가고 휴식을 취해도 된다.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피우러 나가면 된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겠다는 피의자를 상대로 계속 신문을 하며 진술을 강요하는 수사관의 행태에 맞서 포괄적 진술 거부 의사를 밝히고 조사실에서 퇴거해도 될까? 된다.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과 답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건 우리 현실에서 위와 같이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수사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야 선처를 받을 수 있다고 믿고 권리 행사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민변 변호사가 졸음으로 국정원 수사 방해? 사실은 이렇습니다

수사관이 피의자 혹은 참고인 조사에서 피조사자를 어떻게 옥죄고 통제하려고 하는지 그 수법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사례를 살펴보자.

국정원의 어느 관계자가 극우 보수 언론에 민변 변호사의 간첩 옹호 행태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변호사는 졸고 있는 자신을 깨웠다는 이유로 '강압적 수사이므로 출석하지 않겠다'며 '출석 불응의 책임은 국정원에 있다. 출석 요구 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국정원이 문제 삼은 민변의 "어떤 변호사"가 바로 필자다. 그 사연은 이렇다. 필자는 국정원 조사실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는 과정에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참고인은 조사 과정에서 일체 진술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필자는 그 옆에서 함께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는 참고인과 변호인을 상대로 국정원 수사관이 느닷없이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변호인", "참고인"이라고 수차례 부른 후 "눈을 감고 있는 것은 괜찮지만 수면은 수사 방해입니다"라며 훈육하려 들었다. 변호권 조력을 하지 아니한 채 수면을 취하러 왔냐는 식의, 참고인 신문과는 무관한 모욕적 언사를 하였다.

이에 필자는 강력히 항의하였다. "당신이 도덕 선생인가? 우리가 당신의 수업을 바른 자세로 들어야 하는 존재인가? 왜 훈육하려 드는가? 조사받는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 형성 과정에까지 관여하려 드는 것인가? 우리가 조사의 객체에 불과한가? 조사 중에 당신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자세인가? 우리가 눈을 뜨고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가 당신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인가?" 그리고 당당히 주장하였다. "조사를 받는 피의자나 참고인이 반드시 눈을 뜨고 신문에 응해야 하나? 왜 졸면 안 되나? 그게 왜 수사 방해인가? 피곤하여 조는 피의자를 자지 못하게 하고 계속 신문하는 것은 잠 안 재우기 고문 아닌가?"

기실 그곳에서 졸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국정원 수사관은 참고인 조사 중 참고인과 변호인이 심리적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수면을 취할 수조차 없는 상황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진술을 일체 하지 않는 참고인을 괴롭힐 목적의 교묘한 심리적 책략으로 국정원 수사관이 시비를 건 것이었다. 조사실에서는 마음대로 눈을 감을 수도 없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이거야말로 참고인의 인권과 변호인의 변호권을 침해한 것 아닌가?

필자는 국정원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국정원 수사관의 위법한 수사 행태를 지적하고, 수사관 교체와 처벌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국가보안법의 참고인에 대한 강제 소환 조항을 악용하여 참고인과 변호인을 상대로 계속된 출석 요구를 할 경우, 가능한 법률적 대응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위 사례에서 보듯 민주 시민을 억누르는 피의자 신문의 위법하고 부당한 관행에 맞서, 민주 시민이라면 피의자로서 권리를 한 치도 양보함이 없이, 그리고 주저함도 없이 행사해야 한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국정원·경찰 등의 조사 시설

이 세상에 피의자나 참고인 등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시설이 있을까? 있다. 특수조사실이 있는 그곳에서 조사받는 처지의 피의자 또는 참고인 신분의 시민은 물론 그 바깥에서 오가는 시민들에게조차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알게 되는 순간부터 위협적인 조사 시설로 다가오는 곳이 우리나라에 몇 군데 있다. 대성공사, 중앙합동신문센터(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국가정보원 조사동, 경찰청 보안분실(구 치안본부 대공분실) 등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자마자 간첩 혐의에 대하여 사실상 피의자 신문 조사를 받는 중앙합동신문센터는 위치를 알기도 힘들었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탈북자들은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면서 그곳에 대하여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계기로 그곳 위치를 물어물어 수소문한 끝에 3일 걸려 겨우 알아냈다. 알려준 사람은 누가 들을까 귓속말로 조심스레 알려주며, 자기가 알려주었다는 것을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

위치를 알고 나서 그곳에 변호인 접견을 시도하는 것조차도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그렇지만 특수 독방과 특수 조사실에 갇혀 거의 6개월 가까이 오빠와 자신의 간첩 혐의에 대하여 조사를 받았던 여동생 유가려 씨를 만나 달라는 오빠 유우성 씨의 부탁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인권 옹호라는 변호인의 사명감을 되새겨보았지만, 막상 변호인 접견을 시도하려 하니 떨리는 마음이 잘 진정되지 않았다. 처음 가보는 곳이고 겁도 나고 해서 여럿이 함께 변호인 접견을 갔다. 높은 담벼락과 철조망, 그리고 선글라스를 쓰고 총기류를 허리띠에 차고 있는 제복 입은 사나이들을 보면서 간담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피의자나 참고인이 조사를 받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보안분실은 시설 출입부터 조사실에 들어서기까지 불안감, 위압감을 준다. 오죽했으면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사람조차 겁부터 나고, 그곳에 다시 가기 두려울 정도가 될까. 비명 소리 가득한 중앙정보부 지하 고문 수사실이 떠오르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한 남영동 대공분실의 기억이 스친다.

국정원의 경우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바깥에 있는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출입구부터 보안 시설이라며 그곳에서 보고 들은 사항을 외부에 일체 누설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는 각서 작성을 강요한다. 출입 절차부터 신경전이 벌어진다. 대통령도 그 각서를 쓰고서야 출입한다는 말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각서를 쓰고 말았다. 나중에 각서를 쓰지 않고 출입한 변호사의 소식을 듣고 참으로 부끄러웠다. 앞으로 다시는 각서를 쓰지 않을 것이다. 만약 각서를 써야 출입할 수 있다고 하면 반드시 그 법적 책임을 물을 작정이다.

국정원 출입문에서 조사실이 있는 조사동까지 가는 과정도 신경전의 연속이다. 국정원이 제공하는 차량의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 뒷좌석 창문 모두 밖을 볼 수 없도록 차단한 상태로 이동한다. 심지어 출입문에서 조사동까지 피의자와 변호인을 각각 다른 차량에 태워 이동하도록 강요한다. 피의자는 변호사와 동승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수사관들을 보며 심장이 마구 뛸 수밖에 없다. 이렇게 피의자의 불안감을 야기하고 조장하는 수사관의 간계를 꿰뚫어 보고 맞서 싸워야 한다. 조사동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와 변호인의 차량 동승을 막는 것에 대해 준항고를 제기해 다투기도 하였다. 국정원이 법정에 제출한 대답이 걸작이다. 변호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피의자가 타고 가는 차량보다 더 좋은 차량을 준비해 따로 모신 것이란다.

경찰청 보안분실은 어떤가. 그곳에는 따로 간판이 없다. 보안 부서는 으슥한 곳(음지)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무언가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곳이 분명하다. 시내에 버젓이 있는 시설을 왜 비밀스럽게 간판도 달지 않고 위장하는가, 이 말이다. 음침한 느낌이 절로 든다. 외부의 눈길이 닿지 않고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격리된 밀실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그곳에 들어서는 피의자에게 겁을 주기 위한 의도임이 분명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안분실의 출입문 초인종을 누르면 사복을 입은 젊은 전투경찰이 나타났다. 전투경찰이 폐지된 요즘은 보안분실 경비를 개에게 맡겼는지, 사나운 개가 위협적으로 짖는 보안분실을 경험하였다. 피의자 신문을 받기 위해 보안분실 초인종을 누르기 무섭게 사나운 개가 달려들며 짖어댔다. 놀란 가슴에,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개가 무서워 움찔하는 우리 모습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피의자와 변호인을 위협하는 사나운 개를 단속해 달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갈 때마다 개가 짖었다. 움찔하지 않으려 해도, 개를 피해 보안분실 마당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청 청문관에게 그 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경찰청 청문관도 보안분실에 다녀오고 나서 하는 말이, 그곳 개가 무섭더란다. 보안수사대 수사관이 '그깟 개가 뭐 무섭냐'고 하면 이제는 바로 이렇게 쏘아붙인다. 가족을 데려와 초인종을 눌러보게 하고 나서 이곳이 당신이 근무하는 직장이라고 얘기해 보라고. 그 말에 아무 소리 못한다.

▲ 대성공사. ⓒ프레시안(최형락)


민주 시민이라면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당당히 자존심을 지켜야

시국 사건에서는 피의자 신문을 받기 위해 조사실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이런 치졸한 저질 계략에 맞서 노심초사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변호인의 '촉'이 좋아야 한다. 피의자를 얼리는 수사관들의 다양한 수사 기법이 현실에서 활용되고 있기에, 피의자의 불안을 야기하는 수사관들의 계략을 꿰뚫어 보고 이에 맞서야 한다.

국정원 조사동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려 조사동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복도의 불빛이 지나치게 어둡다. 전기를 아끼는 것도 좋지만, 환하게 밝혀 두면 어때서 그 따위 수법을 쓰는지 모르겠다. 옛날처럼 옆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지는 않으니 많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출석하기 전이나 수사기관에 들어설 때부터 졸아드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사실에 들어가 피의자 신문을 받게 된다. 피의자 신문은 어떻게 진행될까? 조사실 안에서 피의자 신문 과정은 인정 신문, 진술거부권 고지, 신문의 단계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조서가 작성된다. 그곳에서 행여나 일부 수사관의 저질 수사와 계략에 농락당하며, 바보같이 당하는 일은 없을까?

민주 시민이라면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당당히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일부 수사관의 저질 수사와 계략에 농락을 당하고서야 민주 시민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해법이 있다. 민주 시민에게는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만능의 보검이 있다.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의 수사 관행에서 미란다 권리 행사는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란다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란다 권리를 이해하고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스스로 우리의 형사 사법 구조의 발전을 선도하는 민주 시민을 자처할 수 있지 않겠나. 다음 글에서는 민주 시민의 미란다 권리 행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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