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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에서 해방된 세월호 유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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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에서 해방된 세월호 유가족들

[주간 프레시안 뷰] '자발적 복종'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 우리도 고민해야

근본적인 이야기

새해부터는 간간이라도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나 유가족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을 근본부터 되짚어보게 합니다. 참사가 구조적 문제의 가장 슬픈 귀결이었지만, 단지 구조적 문제만을 짚고 넘어가기에는 차지 않는 다양한 측면들이 참사에 내재해 있어요. 예를 들자면, 우리의 '자발적 복종'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면도 없지 않습니다. 구조적 문제의 주범인 권력의 문제도 미시 권력의 문제 그리고 정신세계까지 작동하는 권력 장치의 문제까지 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유가족들의 활동은 제한적으로밖에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활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회나 행사의 성과와는 별도로 그들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4.16 이후 명확하게 변화한 것은 가족들의 삶의 태도와 실천뿐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 지경입니다. 세상도 우리도 사실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고 우리 스스로 또 어떻게 변화해가야 하는지를 짚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세월호 특별법과 진상 규명 같은 과제와 더불어, 길게 그리고 근본에서 해결할 과제를 논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오늘은 그중 하나로 권력의 작동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삶을 살던 유가족들이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변혁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프레시안(손문상)

농성에서 전국 순회 간담회까지

2014년 내내 유가족들은 '노숙자'였습니다. 검게 그을린 엄마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모두 가슴을 저몄지요.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서도 그을린 얼굴빛이 두드러져 미안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 그러면서도 '이 권력을 기필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투쟁의 마음이 동시에 일곤 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을 거리로 내몬 권력이 그리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들었지요. 해서 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긴 싸움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서 거둔 투쟁의 성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 국민과 함께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회, 광화문 광장,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힘겨운 농성을 이어갔음에도 겨우 특별법 하나만 통과시켰습니다. 가슴을 치며 참고 참아 동의해준 제한된 의미의 법이지요. 게다가 얼마 전 통과된 다른 특별법은 보상과 지원 문제에 가족들이 개입할 수 없도록 만든 아쉬운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유가족들이 거둔 성과는 다른 데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며 문제를 풀어 가는 소중한 경험을 했고, 또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각성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의 산물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두 힘을 합해 싸워가야 정상적인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계속 진행되고 있는 전국 간담회는 또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참으로 대단합니다. 가족들이 일주일에 많게는 20개, 적게는 10개소를 함께 돕니다. 개최 요청 단체도 노동조합, 지역 운동 단체, 대안 학교, 종교 기관, 대학, 협동조합, 예술 단체 등 다양한데 20~30여 명의 유가족들이 팀을 짜서 이에 응하고 있어요. 가족들은 간담회는 시위나 대형 행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솔직한 생각을 교환하니, 좀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20명에서 70~80명이 모여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감동의 정도도 다르겠지요. 게다가 대부분의 간담회에서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 변혁하는 일에 각자가 꾸준히 무엇을 해갈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긴 호흡에서 미래의 운동을 기대하고 그려보는 그런 자리가 바로 간담회라는 것이지요. 간담회의 성과야말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이끌어낼 씨앗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거리에만 나선 것이 아니다

이런 성과의 원동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하며 가족들을 살펴보니, 정말 중요한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일단 가족들은 사회적 삶의 의미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기억과 사회적 삶'에 대해 다루면서 이야기한 대로, 사회적 실천을 충분히 하지 않아 이런 나라에 아이들을 살게 했다는 후회, 그리고 지금이라도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떳떳한 부모가 되겠다는 의지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해서 가족들이야말로 사회 변혁을 위한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유가족들이 실천의 장으로 마을 공동체를 택하기 시작한 것도 뜻깊습니다. 가족들은 중앙 권력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중층적으로 존재하는 미시 권력들을 현장에서 몸으로 감지하고 있어요. 또 이런 존재들이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왜곡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해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소규모의 협동사회경제, 공동 교육, 문화적 공동성 등을 형성해 기존의 권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를 아래로부터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움직임이야말로 긴 호흡으로 변혁 운동을 이끌어 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거리로 나서서 법을 만들고 진상을 규명하는 일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을 바꿔가는 일에 가족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사고에 이른 것입니다.
'자발적 복종'으로부터 해방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 더 일찍 적극적으로 세상에 대응하며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권력자들이 하라는 대로만 해왔던 것이 억울하고 후회되어 미치겠어요."

많은 가족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하늘로 보낸 후회가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후회로 바뀌고 있는 것이지요. 권력이 제도를 통해 외부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내부, 정신세계까지 작동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자각한 겁니다. 그 자각에 이르러 가족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생각의 방식과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니체나 푸코 같은 철학자들이 근대 이후의 '인간 길들이기'를 극도로 혐오한 이유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권력 측의 문제이자, 곧 이에 길든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확인하지요. 당연히 운동의 방향도 권력과 맞대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변혁에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권력 장치의 실체, 마치 생체처럼 미세한 영역까지 짜인 장치에 대한 분석까지 완결적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단순히 중앙 정치 뒤집기의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 전체적이고 지속적인 사회 변혁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해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만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길들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며 생긴 습성에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해방되겠다는 의지, 그것이 바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근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이 과제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인간 해방의 과제입니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절실한 과제라는 말입니다.

하나씩 실천해가는 가족들의 아름다움

'자발적 복종'으로부터 해방이 쉬운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가 훈육된 것이고 과연 어느 것이 우리의 본성적 속성인지를 구별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를 권력 체제와 사회 체제를 대상으로 사고해 개개인의 근본적 변혁과 사회 운동적 실천 전략을 세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해서 현대 철학 모두 아직도 실천 전략을 수립하는 차원에 제대로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실천을 관찰해보면, 작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입니다.

"왜 돈, 돈 하며 살았는지 이제 알겠어요. 청해진해운처럼 나쁜 권력이 우리를 그렇게 세뇌시켰고 우리는 습관처럼 돈, 돈 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필요한 만큼 당당하게 벌고 더 많은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우리 아이에게 제대로 주지 못한 사랑을…."

훈육된 우리의 습성, 왜곡된 가치관에서 해방되는 모습의 하나입니다. 물질주의와 금전만능주의에 물들었던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 그 자체라 할 수 있어요. 말로는 쉬울지 모르나, 실제로 이런 문제를 철저하게 자기화하고 실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들은 누구보다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보다는 사람을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또 생활의 작은 행복들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 주 전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서 교육 공동체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공동 육아, 돌봄, 인문학 및 인성 프로그램, 비교과 예술 프로그램, 아이들 카페 등 계획을 소개하자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교육 공동체에서 어떤 일을 할지는 아이들이 정해야 해요. 우리가 아무리 좋은 걸 제공하려 해도 아이들은 어른이 해준 걸 반기지 않을 거예요. 지켜보고 도와주고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프로그램 제안자가 잠시 머쓱해지는 상황이었지만, 모두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학교 등을 통해 권력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한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가르치듯 설계하는 프로그램이 일단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그들의 발언으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전문가'들이 크게 한 수 배웠어요. 무엇이 훈육된 생각이고, 무엇이 우리의 본질적 속성인지를 가족들은 하늘로 간 아이들을 연상하며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행정기관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가족들의 입장은 선명합니다. 고잔동 공동체가 동장·자치위원장 등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 행자부나 경기도·경기도 교육청·안산시 등의 지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했습니다. 가족들은 행정기관이 권력 기관의 하나이자, 권력 장치가 작동하는 주요 지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믿을 수 없어요.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지만 우리 자신의 힘으로 꾸려가는 걸 원칙으로 했으면 해요."

고잔동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행정기관으로부터 공간 영구 임대 방식의 지원은 적극적으로 받되, 운영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 지원은 받지 않는 선에서 쉽게 마무리됐습니다. 가족들 스스로 이미 반(反)권력적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왜 그렇게 비판적이냐?"고 반 농담처럼 물으면, 가족들은 "그들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잖아요?"라며 간결하게 답합니다. 가족들은 권력에 의한 규율, 훈육, 간섭을 모두 거부하는 입장에 이미 서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15년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아이들을 잃은 희생자 가족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그저 그들을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에 빠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 장치의 작동은 우리에게나 유가족들에게나 동일하게 미칩니다. 자본과 정치권력이 "떠들썩한 과시에서 은밀한 영역으로까지 숨어" 우리를 규율하고 있습니다. 훈육되어 습성화된 우리의 '자발적 복종'은 우리 사회를 점점 더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침몰하는 배에 아이들을 떠밀어 넣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 우리가 유가족들과 다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정작 우리는 유가족들처럼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4월·5월을 눈물로 지새우기는 했지만, 그 후 우리는 과연 '자발적 복종'의 상황에 있던 자신을 성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들에 대해 고민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돈을 좇는 삶, 경쟁에 찌든 삶, 불의에 눈감는 삶, 참여하지 않는 삶, 고립하는 삶, 사랑보다는 배타하는 삶, 아이의 '성공'에 욕심내는 삶, 기계처럼 노동하는 삶 등을 전면적으로 성찰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꺼번에 변하기는 쉽지 않지만 소통하며 함께 하나씩 바꿔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17일 서울대에서 '4.16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재난 인문학'이라는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4.16 기억저장소'에 대해 발표를 한 직후, 한 사람이 기억에 남는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 교수들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경험에 비추어 말씀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개개인의 변화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세 가지는 좀 해봤으면 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가치관, 일하는 방식, 사회 참여의 방식과 관련된 자기 변혁입니다. 둘은 일상의 시간 배분의 변화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화요일부터 수요일 오전까지를 안산에서 지내기로 했지요. 셋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딱 전공에 맞지 않아도 조금 공부해서 혹은 물어서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실제로 많지 않답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개입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소통과 개입의 폭을 좁히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권력 장치는 인간을 규율하고 구분 짓고 구분된 대상을 다시 규율함과 동시에 원자화하는 특징을 지니지요. 그렇게 길든 우리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 참사와도 거리를 두게 되는 것 아닐까요? 참사를 잊지 않고 유가족들의 고난에 찬 싸움에 동참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변혁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더 이상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세월호가 침몰하면 우리 모두 침몰합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이하 '뷰)가 새 단장을 합니다.

'뷰'는 그동안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과 프레시앙(유료 회원)에게 우선 제공됐으나, 오는 2월 5일부터는 모든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관점이 있는 칼럼'으로 전환합니다.

분야별 필진은 '정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경제' 정태인 칼폴라니 연구소 창립 준비위원(前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 박인규 프레시안 발행인(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 '생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세월호'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대학원 교수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2월 5일부터 바뀌는 '뷰', 많이 기대해 주세요. ('주간 프레시안 뷰' 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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