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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고 질긴 악연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상지대는 지금‧②] 상지대는 사학의 파부침주(破釜沈舟)

또다시 상지대가 내홍에 휩싸였다. 2014년 3월 31일 김문기 아들 김길남 씨가 이사장이 되면서 본격화됐다. 학내 구성원들은 현 이사회를 해체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레시안>에서는 상지대가 또다시 혼돈 사태로 가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편집자


교수를 파면하고 학생회 간부 4명에게 무기정학을 내렸다. 이사 정수가 9명인데 정상적인 이사는 단 한 명도 없다. 총장은 대학을 사학비리종합선물세트로 만든 사학비리 주범이다. 그 총장은 사학비리 외에도 정치자금비리로 중앙선관위가 고발하고, 저축은행비리로 금감원이 고발하고, 국회 청문회 불출석으로 국회가 형사고발하고, 학생매수와 불법도청으로 시민단체가 고발한 인물이다. 국회에서는 두 차례나 국정감사 청문회가 개최되었고 결국 관할청인 교육부가 5명의 이사 승인 신청을 거부하고 3주간의 특별종합감사를 실시했다.

유명한 상지대 이야기다. 상지대는 지난 20년간 사학비리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중이다. 우리나라 사학 중에서 상지대만큼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 대학이 또 있을까 싶다. 1993년에는 김문기가 문민정부 사정개혁 1호로 구속되어 비리 전모가 드러나면서 몇 달간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퇴출된 김문기 구재단을 복귀시킨 2010년의 사분위 정상화 과정에서 상지대 이름이 또 언론에 오르내렸다. 2014년 8월 이후에는 비리 주범 김문기의 총장 복귀로 또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어디 이것뿐이랴, 1974년 김문기가 상지대를 강제로 인수하여 이사장이 된 이후 퇴출될 때까지도 끊임없이 언론을 탔다. 40년이 넘었으니 이제 그만할 법도 하건만 언론은 여전히 상지대를 주목하고 있다.

하나의 작은 지방대학이 이렇게도 오랫동안 국민들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자기가 설립한 대학도 아니고 자기가 사재를 출연한 대학이 아닌데도 복귀를 향한 불타는 집념이 놀랍고 제법 규모가 큰 대학을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운영하려는 사고방식이 놀랍다. 옛날 재임용탈락을 무기로 교수를 겁박하면서 “하버드 박사학위가 열 개라도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전설이 실감난다. 문제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한참 지나 세상이 상전벽해로 변했는데도 대학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 그 시야에 학생과 교수가 무엇으로 보일지 궁금하다. 아마도 학생은 등록금 납부자로 보이고 교수와 직원은 일꾼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연합뉴스

구재단의 파부침주는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가

일전에 권부의 실력자가 ‘파부침주’라는 고사성어를 사용하여 세상에 회자되었다가 그 광경이 영화 <명량>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 초패왕 항우는 10만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의 50만 대군과 일전을 겨루게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 의하면 이 절대 세불리의 전투에서 항우는 장강을 건너자마자 타고 온 배를 침몰시키고 밥 지을 솥을 부수고 잠잘 막사를 불태운 다음 군사들에게 오직 사흘치 식량만을 휴대하도록 했다. 이미 돌아갈 길이 없으니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는 결의였고 결국 아홉 번의 싸움 끝에 승리했다. 거록성 전투로 알려진 이 역사적인 장면은 그 후 젊은 항우의 용맹함과 탁월한 군사전략의 사례로 즐겨 인용되고 있다.

항우의 파부침주는 민심에서 멀어진 폭압적인 진나라를 멸하고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진나라의 폭정이 영웅호걸의 등장을 재촉했고 기존 질서가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대결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양상도 바뀌었다. 항우가 솥을 깨뜨린 것은 먹지 말자는 뜻이 아니었고 배를 침몰시킨 것은 돌아가지 말자는 의도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면 진나라의 솥으로 밥을 지어먹을 수 있고 승리한 다음에는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 솥과 새 배와 새로운 막사가 예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항우의 파부침주는 소극적인 배수진이 아니라 요즘 말로 창조적 파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김문기 구재단의 파부침주는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가? 교수를 파면하고 학생을 징계하는 것은 어떤 승리를 위한 것인가? 교육기관에서 교수를 파면하고 학생을 징계하면 누가 남나? 교수와 학생이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김문기의 나홀로 독단과 전횡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수천수만 명의 교육공동체로 움직이는 대학에서 독단과 전횡은 공동묘지의 죽음과 같다. 대학에서 학문과 예술, 자유의지와 창조성을 제거하고 나면 무엇이 남나? 돈으로 환산되는 부동산 가치를 남길 생각인가? 김문기는 도대체 누구와 싸우는 것인가? 대학 민주화를 추구하는 구성원과 싸우나, 사퇴를 요구하는 교육부와 싸우나, 청문회를 실시한 국회와 싸우나, 아니면 본인이 설립자라는 것을 부정한 대법원과 싸우는 것인가?

아주 오랜 옛날에는 독재와 전횡이 존재하기도 했고 비합리와 부정의가 더러 묵인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것을 시대의 한계로 간주하거나 성장통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시간이 흘러 그 상황이 개선되고 발전될 것이라는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1970~1980년대의 상지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과거지사로 묻어둘 수도 있다. 더구나 그 경험은 1993년의 사학비리 퇴출로 단죄되었고 상지대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굳이 과거의 아픈 기억에 사로잡혀 연연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로 묻어두었던 가슴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디지털과 모바일이 일상화된 첨단정보화 시대에 족벌체제와 전횡이라는 석기시대의 유물이 강요되는 것이 가능할까? 세상 전부가 변했는데 상지대만 그 시절의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김문기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네 개의 공익적인 힘과 싸우고 있다. 그는 교육 주체인 구성원과 싸우고, 관할청인 교육부와 싸우고, 국민주권기관인 국회와 싸우고, 사법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대법원과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의 무대는 국민과 언론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싸움의 상대방으로 변할 수 있으므로 김문기는 여섯 개의 힘과 싸우게 될 수도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과 사학재단은 아직은 관객의 위치에 머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문기를 도왔는데 지금은 돕지 않고 있다. 김문기가 금도를 넘었다고 보아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앞으로 전투가 더욱 치열해지고 사학비리 커넥션이 문제가 되면 더 멀리 물러날 수밖에 없다.

김문기, 자신의 드넓은 부동산 한가운데 홀로 버려진 고독한 사람

김문기에게는 아직도 많은 부동산과 큰돈이 있다. 얼마 전에도 350억 원 규모의 강남구 대치동 금싸라기 부동산을 팔았다. 현금동원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권력을 살 것인가 언론을 살 것인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는 부패한 권력과 타락한 양심뿐이다. 그나마도 비공식과 불합리가 판치는 세상에서나 통하는 낡은 재래식 무기이다. 김문기는 구성원과 교육부와 국회와 사법부를 대상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사방에서 김문기 퇴진, 사학비리 척결의 노랫소리가 합창으로 들려온다. 항우에게는 그가 남긴 시 한 수, 그를 위하여 울어준 애첩 우미인이 있고,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한 수백의 군사와 적토마라도 있었지만 김문기에게는 누가 남았는가? 김문기는 자신의 드넓은 부동산 한가운데 홀로 버려진 고독한 사람이다.

상지대 구성원들은 김문기가 안된다고 했다. 국회는 그를 비난하면서 고발했다. 대법원은 그가 상지대 설립자가 아니라고 했다. 모든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비난하고 있고 언론도 한목소리로 그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므로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교육부의 결자해지성 결단뿐이다. 김문기가 총장직을 고집하는 한 상지대 사태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교육부도 안다. 김문기의 하수인들이 장악한 이사회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총장직에서 사퇴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대학 정상화 방안을 제출하라고 했지만 제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대학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개편하는 방법뿐이다. 이미 일부 이사를 교육부가 거부했고 지금은 이사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분규의 상지대를 고품질 대학으로 재개발할 조건이 제법 잘 갖추어진 셈이다.

올해는 상지대 건학 60년이 되는 해이다. 60갑자의 그 긴 세월의 40년간 상지대는 김문기와 고통스러운 인연을 맺었고 그 4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싸웠다. 그 사이에 상지대는 환갑의 해를 맞았고 40대 초반에 상지대에 왔던 젊은 사업가 김문기는 온갖 영욕을 겪고 이제 84살의 노인이 되었다. 그 사이에 수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상지대를 거쳐 갔고 김문기는 일선에서 물러날 나이를 한참 지났다.

상지대는 작은 시골 대학교에서 중부권의 중심대학으로 발전했다.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자연으로 돌아가고 코끼리도 때가 되면 제 무덤자리를 찾아간다는데 이제 상지대와 김문기가 맺었던 그 질기고 질긴 악연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이것만이 상지대가 고등교육기관으로 살아남고 김문기도 인생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어 여생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의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더 이상 부서지고 망가지기 전에 바로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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