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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두 가지 딜레마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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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두 가지 딜레마에 빠졌다

[이수훈의 동북아시대] 박근혜, 말로만 안보, 말로만 통일이었다

2014년은 1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갑오년이었다. 그리고 1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동북아는 열강들의 각축장인 상황이다.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놓고 연초부터 많은 논의들이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 난관을 뚫고 나가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안보 딜레마와 통일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고 진단했다. 말로는 안보와 통일을 강조하고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안보와 통일 모두 진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문제로 북한을 압박해 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 교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며 "지원과 교류가 병행될 때 북한이 좀 더 심각하게 인권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잘못됐다"고만 이야기할 뿐 북한 인권문제 개선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남북관계 개선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북한은 대체로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수미일관하게 올해를 보낸 것" 같지만 "우리는 대통령이 말로 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실질적인 실행 의지가 상당히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국내 정치적인 난관이 생길 때마다 북한을 끌어들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대선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이어 정윤회 국정 농단 의혹을 덮기 위한 통합진보당 해산 조치까지 북한이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벌금형을 받았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가 일방적으로 이른바 '종북몰이'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저간에 쌓여있는 사회적 역량을 통해 이런 행위들을 거스르는 흐름이 발휘될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지금은 사회 전반에 보수화의 흐름이 있는데,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흐름을 읽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잘 궁리해야 한다"며 "상당히 복합적인 정치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한 여러 전술적·구체적 실행 계획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이 교수의 연구실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이수훈 경남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연초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이라는 메시지를 발표하며 통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런데 정작 올 한해 통일·외교·안보 사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는 전시작전권 환수 무기한 연기였다. 이것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한미일과 북중러의 신(新)냉전 구도가 공고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올 한해 동아시아 정세를 진단해본다면?

이수훈 : 올해 동아시아의 갈등 상황은 미국 중심적인 동북아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지역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한 지점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기존에 미국이 동아시아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측면이 크게 위축됐다. 즉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동아시아 지역 질서가 동요하면서 해체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미국을 대체할 마땅한 대안이 확실히 나왔다고 보기도 힘들다. 미국과 일본은 군사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의 기존 지역질서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한국은 여기에 끌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프레시안 : 2008년 일본에서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들고 나왔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여 국제무대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자는 주장인데 허망하게 무너졌다. 구상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미국이 반발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미국도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동아시아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 불가피한데, 그러려면 우리도 이에 대한 청사진이 있어야 하고 한중일, 심지어는 북한까지 포함한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름대로 미국까지 포함한 보다 건강한 동아시아 질서가 무엇인지에 대해 큰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수훈 : 우선 하토아먀 유키오 총리의 동아시아 구상, 미·일 동맹의 평등화와 더불어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공동체 구상, 한미동맹 조정 등이 큰 흐름 속에서 일어났다고 본다. 또 미국의 재균형 정책이 군사적으로는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적으로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을 밀어붙이겠다는 건데 사실 이런 것들이 담론적 특성들이 강하다. 즉, 실천적 의미가 강하다기보다는 정치적인 레토릭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한 것 이상의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한 것이 없다.

이러한 흐름을 잘 읽고 대처해나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는 올해 두 가지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안보 딜레마와 통일 딜레마다. 박근혜 정부는 튼튼한 안보를 갖추겠다며 요란하게 준비했지만 정작 실제 안보를 강화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안보는 더욱더 취약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 조치가 나온 이유는 북한이 새로운 위협으로 무장하고 있고 여기에 우리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전작권을 가져오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건 정말 군사적인 안보만을 생각하는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좀 더 종합적이고 전략적으로 안보를 접근한다면 전작권은 가져왔어야 했다. 군사든 외교든 간에 독자적으로 분석하고 판단을 내려서 행동을 해야 하고 그래야 남북 간 군사 관계도 정상적인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중 간 전략대화를 한다고 해보자. 여기에는 안보와 군사문제가 들어가는데, 상대방이 우리를 볼 때 '정말 중요할 때 작전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대와 무슨 전략대화를 하느냐'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북 간 정전협정에서 벗어나서 평화협정을 맺고, 최종적으로 평화체제로 가는 수순을 생각해보더라도 반드시 우리가 전작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전작권을 환수하자고 결정한 것이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현 정부에서 연기 결정을 내리는데 일조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10년 전 실무를 맡았던 사람들이다. 안보 상황이 변한 측면도 있지만 지금에 와서 180도 입장을 바꾼 것은 대단히 비열하고 염치없는 행위 아닌가. 특히 군 수뇌부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거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같다.

통일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을 강조했지만 정작 남북관계는 멀어졌다. 대북 포용정책 당시 남북관계 접근 방식은 점진적이었다. 남북관계가 교류협력이라는 단계를 거치고 그러면서 국가연합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통일대박론은 앞에 있어야 할 남북 간 교류협력은 없이, 뒤에 있어야 할 통일만이 앞에 나와서 논의되고 있는 꼴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통일대박론이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없고, 교류협력을 하지 않는 것을 위장하기 위해서 나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통일대박 이야기는 엄청나게 많이 하는데 교류협력 개선은 없고 정작 상대방인 북한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이 일방통행 식으로 나가니까 통일 딜레마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프레시안 : 통일 딜레마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가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조치는 하지 않고 있는데, 뜻이 있는데 못하는 것이라고 보나? 아니면 북한을 이용하기 위해서 나온 정치적인 언어라고 보나?

이수훈 :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년에 정부가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권 3년 차가 그냥 지나가버리는 건데, 만약에 내년에도 정부가 머뭇거리면 그건 남북관계 개선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정부에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라는 압박을 계속 가할 필요는 있다.

북한 인권문제, 압박하면 해결 가능한가?

프레시안 :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구축하려면 전작권을 가져야 하는데 정부가 사실상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는 남북관계나 대외정책의 많은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올해 특히 많은 주목을 받았던 북한 인권문제가 정말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보다는 일종의 체제 압박용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안보리에도 이 문제가 정식 의제로 채택되면서 국제사회의 압력이 강해지는 것 같은데,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의도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파장을 가져오게 될까?

이수훈 :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강하게 다뤄지는 것은 두 가지 성격이 있는데 이것들이 혼재돼있다. 하나는 정치적인 차원에서의 대북 제재 압박 성격이다. 그런데 이런 성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현재 북한 인권문제 제기는 '북한 목조르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유럽연합이 이 문제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인권이라는 것이 보편적 가치로서 지켜져야 한다는 성격이 북한 인권문제에도 가미돼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런 부분을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북한 내의 인권 침해는 분명히 있다. 수용소 문제도 있고. 그렇다면 이것은 개선돼야 하는 것이 맞다. 남북관계를 잘 가져가기 위해서 민감한 문제는 건드리지 말자며 회피하고 국제사회에서도 인권 결의안 채택이 안건에 오를 때 기권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성격을 고려했을 때도 그렇고, 역사적인 사례들을 봤을 때도 이러한 접근이 인권개선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 구 사회주의권에 대한 인권문제제기, 또 미국이 주도한 우리나라 독재 시대의 인권문제제기 이후 상황을 좀 살펴보면 문제제기를 했을 때 인권이 개선됐던 것 또한 사실이다. 북한 인권문제가 북한이라는 체제를 없애기 위해 사용됐던 측면이 있는 것도 유의 깊게 살펴봐야 하지만, 한편으로 북한 인권문제가 우리가 건드리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 지난 18일(현지시각) 유엔총회 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그런데 우리가 북한과 대화나 교류협력을 거의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권 문제만 내세우게 되면 북한으로서는 체제 압박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예전에 유럽연합이 그랬듯이 지원과 교류도 같이 가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정부의 현재 접근이 부족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수훈 : 과거 미·중 데탕트를 보더라도 개입을 하면서 이런 것들이 이뤄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 개선하고 북한 인권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북한이 경제적 숨통이 트여서 전체주의적인 시스템이 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지원과 교류가 병행될 때 효과도 있고 그럴 때 북한이 좀 더 심각하게 인권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

프레시안 :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개입정책이 경제적인 교류인데, 5.24조치가 가로막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 고위당국자로부터 5.24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내년에는 전향적으로 풀릴 가능성이 있을까?

이수훈 : 사실 5.24조치는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미 5.24조치에 위배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정부가 주도해서 하고 있지 않나. 게다가 5.24조치 이후 남북관계나 경제교류가 사실상 단절됐음에도 북한 경제는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5.24조치를 통한 제재 효과가 거의 없는 것이다.

결국 아무런 쓸모도 없는 유령인 5.24조치를 붙잡고 해제하자 말자, 뭐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데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해제하려면 애초에 했어야 했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 해제했다면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는 진정성이 읽힐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김이 다 빠져버렸다.

다만 5.24조치 해제가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활성화라는 좋은 출발의 계기가 되는 측면은 있을 수 있다. 또 우리 사회 안에 분단적 사고, 냉전적 사고 등이 많이 퍼져있는데 이를 제어하고 돌리는데도 5.24조치 해제가 상징적 의미가 있는 측면도 있다.

프레시안 : 미국 CIA가 테러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고문을 자행했다는 의회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가 발표되기 전에 이미 많이 보도가 되긴 했지만 미국 의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처음이라 화제가 됐다.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인권침해를 벌인 것인데, 북한 인권 문제에 이 보고서가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을까?

이수훈 : 미국은 냉전기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자기들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판단 기준이 있다. 북한이 저지른 행태는 인권문제가 되고 자기들이 저지르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일종의 힘을 가진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이 좀 달라져서 지금은 그런 일들이 더 이상 묻혀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드러나는 세상에서 미국이 도덕적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최근에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관계 정상화를 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국내에서는 다음은 북한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퇴임 전에 외교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측면도 있고. 북·미 간 관계 정상화는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이수훈 :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보고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미국이 쿠바와 관계 정상화를 했기 때문에 북한과는 더욱더 하기 힘들어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쿠바의 경우엔 관계 정상화를 위해 굉장히 많은 채널들이 돌아갔다. 쿠바 사람들이 이민을 통해 미국 사회 여러 분야에 많이 퍼져있는데 이 역시 긍정적인 요소로 가동됐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봐야겠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사람들에게 쿠바와 북한은 완전히 다른 국가다. 미국인에게 북한은 저 멀리 있는 곳, 일상세계와는 다른 곳에 있는 이상한 국가다. 하지만 쿠바는 다르다. 쿠바는 미국 사람들이 어지간하면 가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상당히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은 여러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 핵도 있고 미국과 적대관계도 아주 깊다. 미국 의회가 공화당이 장악한 상황인 데다가 매스미디어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 역시 대단히 좋지 않다. 그럼 우리라도 나서서 "북한은 우리와 관계 개선을 하는 파트너다" 라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되는데 그것도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에 제재나 압박을 가하는 선봉에 서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는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답답한 생각도 든다.

불리한 정치적 국면 때마다 '북한 카드' 꺼내 드는 박근혜 정부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지만 이 말을 행동으로 옮기진 않은 것 같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을 이야기했고 지난 10월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측근들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되다 보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은 행동을 좀 보인 것 같지만, 박근혜 정부는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올해 남북관계가 별다른 진전이 없었는데, 남북 중에 어느 쪽이 더 책임이 크다고 보나?

이수훈 :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북한은 대체로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수미일관하게 올해를 보낸 것 같다. 국제적으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이 말로 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실질적인 실행 의지가 상당히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안게임 때 북한 응원단 방문이 무산되지 않았나? 남북관계 개선에 둘도 없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본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부산에는 북한 응원단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었다. 부산, 영남 지방에 있는 일반 시민들이 직접 북한 사람들과 접촉해보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됐다.

스포츠는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정치회담도 아니고, 체육·문화적인 교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놓쳐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 전적인 책임이 우리한테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통령 의지가 있었다면 잘 활용했어야 했다.

폐막식에 3인방이 내려와서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고 갔는데 그 뒤에 NLL 침범, 대북전단 향한 포격 등의 사건들이 나오면서 남북 고위급접촉 분위기가 죽어버렸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 우리 정부가 의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대북정책을 지지할 수 있는 정부 내의 거버넌스, 즉 청와대와 정부부처 등 주변에서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점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남북 간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럴 때 유연성과 탄력성이 없으면 대체로 경직되고 대결적인 반응들이 나오는데 이명박 정부 때 이런 식의 대응을 보였다.

한반도에 대결적 구도가 상존한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이 올라갈 때는 항상 나쁜 상황이 발생하게 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정책을 설계하고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반도 내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이를 잘 관리해서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끌고 가야겠다는 계획까지 설계돼있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엔 이게 부족했던 측면도 있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번에 통진당 해산 결정에 국민의 60%정도가 잘했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분단적인 인식이 강화된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정권 안보에 앞장섰던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선뜻 나설 수 있을까 싶다. 통진당 해산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남북교류협력을 했던 민간단체들도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 지난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이 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이수훈 : 현재 분위기가 냉전적이니까 그런 법적 판결이 나오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분단으로 조성된 우리 사회의 정치 환경이 대단히 거칠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난 대선 때 선거 구도가 NLL과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등이었는데, 무엇이라도 동원해서 선거에 이겨야 하는 거니까 북한이 동원되는데 그 결과가 우리 정치 환경을 대단히 이분법적으로 만들고 있다. 피아의 구분이 선명하고, 반대파를 완전히 적으로 만들어서 이 사람들을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 사고로까지 가는 것이다.

물론 통합진보당이 문제가 있는 정당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원직을, 더군다나 지역구 의원을 헌법재판소에서 상실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번 판결이 현재 남북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남북관계가 경직돼있고 적대적인 상황에서 이런 것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것이 국내 정치적 환경을 순화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념에 따른 담론 정치는 20세기의 냉전 시대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가 침해받고 있다는 것은 냉전 때 담론이다. 이미 지난 대선 때 사회민주주의 담론인 보편적 복지 이야기가 나왔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성취했고 이제 어떻게 이것의 깊이를 더하느냐는 고민이 나온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정당을 해산한다는 것은 뒤로 가도 한참 뒤로 간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문제는 대선 과정에서도 NLL 가지고 재미를 봤고 이번에도 정윤회 문건을 통진당으로 덮으면서 재미를 봤다. 박근혜 정권이 북한을 끌어들이면서 당장은 이득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식이라면 박근혜 정부가 큰 차원에서의 남북관계를 하겠느냐 라는 우려가 든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가 해온 정책들을 보면 필요할 때 북한을 끌어들여서 국내 정치의 난관을 헤쳐 나가려고 할 것 같다.

이수훈 : 정문헌 의원이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로 1000만 원 벌금형을 받았다. 대법원까지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법원 판단을 보면 어쨌든 우리 사회가 일방적으로 이른바 '종북몰이'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간에 쌓여있는 사회적 역량을 통해 이런 행위들을 거스르는 흐름이 발휘될 것이라고 본다.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냉전기를 거쳤기 때문에 정부 지분이 압도적으로 높다. 정부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회 전반에 보수화의 흐름이 있는데,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흐름을 읽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잘 궁리해야 한다. 상당히 복합적인 정치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한 여러 전술적·구체적 실행 계획까지 마련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동안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나름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북·미 관계, 6자회담 재개까지를 생각했던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올해 이게 잘 안됐다. 그리고 과거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려면 강경도발을 해야 한다는 식의 일종의 프로토콜이 있었는데, 이번에 온건한 방식을 택했는데도 북·미 관계 개선이나 6자회담 재개가 되지 않았으니까 내년에는 미국의 반응과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있다. 물론 지금 핵실험을 실시하기에는 중국이나 국제사회의 반발이 심하니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내년에 핵실험 가능성이 있을까?

이수훈 : 예측하기 어려운 일인데 핵실험을 예측하는 것보다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예방적인 조치를 취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본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하지 않으면서 핵실험만을 예측하고 있으면 남북관계 개선이 가능하겠나. 또 핵문제를 이렇게 두고서는 북·미, 북·중 관계 아무것도 진척시킬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핵문제를 엄중한 이슈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이건 골치 아프니까 일단 좀 둬도 된다, 설마 쟤들(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공격하겠나 등등의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언했던 동북아 평화 협력구상,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가 핵문제를 절박하게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즉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을 설득하고 끌어들여야 하고, 북한과 남북대화를 통해 입장을 조율하고,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런 노력 없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가면 핵문제가 해결되기는 힘들다.

이번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의 빌미도 북핵 위협이었다. 정부는 북핵 위협을 대칭적인 전력을 강화해서 대응하겠다는 방침인데, 이는 대단히 안보적인 발상이다.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것보다는 정치와 협상, 외교를 통해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핵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북한은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다. 수틀리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다고 해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이미 핵 실험을 세 번이나 한 국가가 네 번은 못하겠나. 물론 한 번 더 실험해서 기술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볼 수도 있겠지만, 이미 3차 핵실험에서 자기들이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하지 않았나? 한 번 더 하는 것이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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