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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후 10년…"단식 아니라 10년 싸움 끝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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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후 10년…"단식 아니라 10년 싸움 끝내야"

[박점규의 동행]<45> 단식 37일 맞은 코오롱 정리해고자 최일배 씨

과천 정부종합청사역 4번 출구 코오롱 본사. 오는 17일은 고(故) 이동찬 회장이 60년 전인 1954년 12월17일 코오롱의 전신인 개명상사를 설립해 국내 최초의 나일론 섬유산업을 시작한 날이다. 코오롱 나일론은 최첨단 등산복으로 진화했다. 풍력발전기가 달려 등산복의 온도를 올리고, 동영상을 찍는 블랙박스 기능도 한다. 태양열 충전시스템이 달린 재킷도 개발했다.

코오롱의 역사와 미래를 함께 기뻐해야 할 노동자가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36일째 단식농성(10일 기준)을 하고 있다.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 투쟁위원회 최일배 위원장이다. 농성장 앞에는 "정리해고 10년, 코오롱 너무 한 거 아냐?"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정부청사 대로 곳곳에 지역 시민단체가 걸어놓은 현수막이 휘날린다.

코오롱 본사 앞을 질주하는 차 소리가 천막을 흔든다. 과천 시민 이화영 씨가 천막에 들어와 최 위원장에게 이제 더 큰 싸움을 위해서라도 단식을 중단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그가 호소한다. 10년의 마지막 싸움인데,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주저앉지는 않겠다고 한다.

최일배 위원장은 23년 전인 1991년 12월부터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했고 소심했던 그는 불평 한마디 없이 일만 했다. 통근버스가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내렸지만 8년 동안 한 번도 노조 사무실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한 번만 살려달라는 반장의 애원에 노조 파업 찬반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최일배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그가 노조 부위원장을 맡은 2000년이었다. 그는 "8년 동안 조합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조차 하지 못한 지난 과거가 너무 부끄러워 미친듯이 조합 활동에 빠져들었다"고 회고한다. 17일간 파업을 벌여 고용 안정을 합의하고 신규 투자를 끌어냈다.

그가 노조 활동을 그만두고 평조합원으로 돌아간 4년 동안, 코오롱은 노조를 무너뜨렸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최 위원장을 포함해 78명을 정리해고 했다. 2015년 2월 21일은 그가 해고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인 최일배 위원장.ⓒ박점규
핼쑥해진 얼굴, 그의 눈가에 10년의 시간이 흘러간다. 노조위원장 당선과 단식과 송전탑 농성, 이웅열 회장 집을 찾아갔다가 경찰에 끌려나오며 동맥을 끊어 의식을 잃었던 순간, 두 번의 감옥 생활과 청와대 고공농성…. 그렇게 8년의 시간을 보내고, 2012년 5월 21일 코오롱 본사 앞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서부터 쌍용차까지, 가슴아픈 노동의 현장에 온 몸으로 함께 했던 최일배. 단식을 만류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페이스북에 "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단식 중단시켜야 된다는 말을 하는 걸 너무 잘 압니다. (중략) 조금만 더 힘내고 올해는 반드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10년! 힘들어서 또 다시 단식투쟁 할 엄두가 안 나니까요. 저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썼다. 다음은 10일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최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박점규 : 가족들이 단식하는 걸 알고 있나

최일배 : 단식 들어가기 전에 아내에게 얘기했다. 처음에는 숨기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것보다 나한테 직접 듣는 게 낫다고 생각해 얘기했다. 얼마 전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몸 상하지 않고 가족들도 생각하면서 하라는 얘기에 가슴이 저렸다. 고2 딸과 중3 아들에게는 차마 얘기를 하지 못했다.

박점규 :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

최일배 : 30일이 지나면서 몸이 많이 힘들다는 걸 느낀다. 기운이 빠지고 울렁거림이 심해서 새벽에 계속 깨고, 이 상태가 아침까지 계속 된다. 30일 전에는 하루에 잠깐 정도 그러다가 없어졌는데, 지금은 2~3시간마다 그런 증세가 나타난다. 어지럽고 움직이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재판이 두 번 있었는데 힘들어서 그것도 미뤘다. 가능한 한 천막에서 안 나가려고 하고 있다.

박점규 : 차량 소음이 심하다.

최일배 : 3년 동안 천막생활 하면서 귀에 익어서 그런지 차량 소음보다는 오히려 냄새가 더 힘들다. 단식이 길어지면서 점점 예민해진다. 어떤 때는 늘 듣던 노동가요도 소음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말 시키는 것도 힘들고,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박점규 : 단식이 길어지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페이스북에 글을 썼는데.

최일배 : 처음에는 걱정 해주는 거니까 그냥 말리고 했는데, 2~3일 동안 계속 다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단식 중단 얘기를 하니까 그게 나를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 같아서 뭔가 더 이상 얘기가 안 나오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단식이 힘든 것만 생각했지, 10년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모르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단식이 일상적인 투쟁으로 치부되지 않았나. 단식을 하다가 적당히 그만두는 것처럼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게 속상했다. 10년 싸움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단순히 건강만 바라보는 것이 아쉽고 서운하기도 했다.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마우면서도 정말 힘든 게 뭔지 몰라주는 것 같아 그런 글을 남기게 됐다. 어쨌든 고맙게도 오해하지 않고 이해해줘서 글을 잘 올렸다 싶은 생각이 든다.

박점규 : 과천시민들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최일배 : 과천이 낯선 곳인데, 10년을 싸우는 동안 굉장히 편안한 동네로 느껴질 정도다. 과천 시민들이 없었다면 외롭고 힘들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단순히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처럼 함께 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천막농성 3년 동안, 집회 때 잠깐 오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줬다.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뭔지를 알게 해 준 사람들이다.

박점규 : 함께 해고된 동료들은 생계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데.

최일배 : 12월 3일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생계를 나간 조합원들이 전부 올라왔다. 정말 오랜만에 정리해고 투쟁을 하고 있는 12명이 다 모여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우리 10년 투쟁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내려갔다. 싸움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워온 것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자고 한 달에 한 번 회의할 때마다 소통했는데, 그걸 3일 집회에서 느꼈던 것 같다. 그게 정말 좋았다.

박점규 : 13일 '정리해고 10년, 3650인의 화답'이라는 이름으로 큰 집회가 열린다.

최일배 :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10년 투쟁 하면서 2000명 이상 집회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3650명의 화답이니까 처음으로 2000명을 넘기는 집회를 해 보는가, 이런 기대감과 설렘이 있다. 대책위원회에서 20일과 27일 집회를 잡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박점규 : 단식하기 전까지 회사가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최일배 : 자본은 서로 철저하게 연결되어 있다. 코오롱만의 문제였다면 이렇게까지 하겠나 싶다. 법적으로도 정당하다고 판결났는데 왜 회사가 굽히느냐에 대한 대외적인 체면도 있다. 해고자들이 현장에 들어가면 민주노조를 복원할지 모른다는 것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점규 : 얼마 전 회사를 만났을 때 반응은 어땠나?

최일배 : 그렇게 쉽게 교섭이 진행될 것 같았으면 10년을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동안 면담을 거부했던 코오롱이 처음 문을 열었다는 의미 외에는 없다. 대화 내용에 특별한 것도 없고, 이후에 정기적으로 만나자는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

박점규 : 코오롱 불매 운동이 벌어졌는데.

최일배 : 불매운동을 해야만 대화가 열리고 물꼬가 트인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평화적으로 대화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회사에 대해 불매 운동과 단식은 마지막 선택이었다.

박점규 : 얼마 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조합원 단체 운동복으로 코오롱 제품을 선택해 노동계로부터 원성을 샀다.

최일배 :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두 차례나 결의했던 내용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속상하고 화도 나고 민주노총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우리 문제를 잘 알 정도로 발로 뛰었느냐, 그런 반성이 됐다. 사업장을 발로 뛰지 않고 민주노총에서 잘 할 거야, 이렇게 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노총이 산하 노조에 코오롱 문제가 해결될 때가지 조합원 단체 선물로 코오롱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공문을 코오롱에 보내기로 했다. 우리가 더 노력한다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서도 함께 할 것이라고 본다.

박점규 : 법원에서는 다가올 위기에 대비한 정리해고도 정당하다고 하고, 정부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한다.

최일배 : 사실 이 싸움을 시작한 것은 개인적인 자존심 때문이었다. 내가 코오롱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정리해고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노동자들이 그렇게까지 양보했는데 정리해고를 한 것에 대해 용서할 수 없었다. 코오롱 같은 대기업이 78명을 해고해서 경영 여건이 나아졌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리해고 제도를 바꿔내지 않는 한 우리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되면서 개인의 복직을 넘어 정리해고를 알려내는 투쟁을 진행했다. 그런데 정부가 또 다시 정리해고법을 완화한다고 하니까 너무 자괴감이 든다. 우리 딴에는 정말 치열하게 싸운다고 했는데…. 좀 더 큰 싸움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이 뭘까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있다. 정리해고 싸움이 해고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코오롱 해고자들의 싸움이 작은 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점규 : 코오롱 이웅열 회장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최일배 : 2001년 6월로 기억된다. 처음 노조 간부를 할 때 노동조합 사무실로 찾아온 이웅열 회장을 처음 만났다. 새벽 4시에 <겅호>라는 책을 보다가 전달해주고 싶어서 서울에서 바로 출발했다고 했다. 대단히 열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 소통이고 공유라고 생각한다. 이웅열 회장에 대한 첫 인상이 그렇다. 회장에 대한 마지막 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나자 의사 두 분이 천막을 찾았다. 혈압이 아직 위험 수위는 아니지만 단식이 계속되면 내장 기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걱정한다. 최일배 위원장은 10년 싸움을 끝내기 위해 내년까지 단식을 이어가겠다고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누구보다 코오롱을 사랑했던 노동자와 함께 새해를 맞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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