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미생> 장그래만 억울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미생> 장그래만 억울하다?

[박점규의 동행]<44> '비정규직 대책' 요구하니 '정규직 과보호론' 꺼내든 정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사내하청업체 소속 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양동운(53) 씨는 요즘 신이 납니다. 지난 9월 현대와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판결에 이어, 지난 4일 창원지방법원은 한국지엠(GM) 창원공장도 소송을 제기한 5명 모두에게 정규직 지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습니다.

같은 날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도 한전KPS의 사내하청 노동자 42명이 원청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한전KPS가 하청업체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휘, 관리해왔다며 합법적인 도급이 아니라 불법 파견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한전KPS는 전국의 수력 및 화력발전 설비의 시운전, 정비, 개보수 공사를 하는 한전 자회사입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사내하도급 등 소속 외 근로 인원이 415명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마트가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도급점포에서 일해 온 하도급업체 노동자 3명이 낸 해고무효 소송에서 본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에브리데이리테일 측은 재판 대상이 된 점포들은 당시 직영 사원이 없고 점장부터 말단 사원까지 모두 도급 사원이었던 점포이기 때문에 '도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유통업체 파견 근로자로 보고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자동차에서 공공기관, 유통업까지 불법파견 판결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인 양동운 씨는 1987년 광양제철소 사내하청업체인 삼화산업에 들어와 28년째 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천정기중기 자격증을 가진 그는 2열연공장 42, 43호기 11m 크레인에 올라 진행반과 라인운전실에서 근무하는 포스코 정규직의 지시에 따라 일합니다.

그런데 지난 1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16명의 조합원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지난 4일 창원지방법원은 한국지엠 판결에서 "간접생산 공정은 직접생산 공정들과는 달리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직접생산 공정에 비하여 컨베이어에 종속성이 덜하여 독립적인 운영의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일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도급계약의 목적이나 대상이 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의 '정규직 인정' 판결 뒤 기뻐하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 ⓒ연합뉴스
하지만 법원은 "간접생산 업무 또한 자동차 생산 업무의 중심인 컨베이어벨트의 생산속도 및 일정에 연동되어 이루어지게 된다"며 "간접생산 업무의 시작 및 종료시간, 연장·야간·휴일근무 시간 등이 한국지엠이 정한 시간에 구속되었던 것은 물론, 해당 공정의 작업량이나 투입 인원 또한 컨베이어벨트의 작동 속도 내지 생산량을 감안하여 책정되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양동운 지회장은 컨베이어를 타고 이동 중인 코일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야드와 다음 공정에 보급합니다. 제철소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고로에 철광석을 넣어 쇳물을 만들기 시작해 철강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컨베이어와 크레인이 연결된 자동흐름방식의 공정입니다.

현재 항소심 재판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회사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재판을 연기시켰고, 최근 대리인을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바꿨습니다. 오는 10일 변론이 종결되면 조만간 선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는 항소심 재판부가 불법파견을 인정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소송자들을 모아 추가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철소, 컨베이어와 크레인이 연결된 자동흐름방식

그런데 양동운 지회장은 얼마 전 신문에서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이 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발언을 보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대놓고 기업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관은 지난달 10일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판결에 대해 "원청이 협력업체 근로자의 복지와 안전, 직업훈련교육을 통한 능력 향상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번 판결의 영향으로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면 대한민국 협력업체의 근로조건 향상은 이뤄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25일에는 정형우 고용노동부 노동시장정책관이 경총 주체 토론회에서 "이미 존재하는 파견도 불법파견의 양태로 보는 건 안 맞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오히려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복지를 높여주는 쪽으로 장려해야 할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원청회사가 불법 파견업체에 돈 몇 푼 더 줘서 불법파견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라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고위 공무원들이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부정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감추는 일까지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28일 대법원은 한국지엠 대표이사와 6개 사내하청업체 대표를 불법파견으로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 확인 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을 지키는 것처럼 한국지엠 창원공장에 특별점검을 했습니다.

그해 12월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은 "2005년과 비교해 불법파견 요소가 많이 개선됐다"며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했습니다. 이랬던 고용노동부가, 4일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불법파견 판결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법원 판결 부정하는 고용노동부

지난 5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안에 사내하도급 노동자 보호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한국노동연구원에 연구용역 제안요청서를 보내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고용 안정 및 근로조건 개선, 기업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해 원사업주와 수급사업주 간 사내하도급 관계 개선 방안과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연말에 사내하도급 노동자 대책을 내놓으면 한국노동연구원은 외부에 맡긴 연구용역 결과를 내년 1~2월에 발표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말한 대책은 새누리당이 19대 국회 법안 1호로 제출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안'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대책'을 만들고 있었던 박근혜 정부가 깜빡하고 '사내하도급 보호법'을 빼먹었는 줄 알았는데, 혹시나 들킬까봐 몰래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요?

지난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5개월 넘게 언론을 통해서 흘렸던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허용 업종 확대 △직업소개소 대형화라는 '비정규직 양산대책 3종 세트'에 이어, 최근 정리해고 요건 완화와 임금 삭감을 쏟아내더니, 드디어 품 속에 감추고 있었던 사내하도급 대책을 꺼내려고 합니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박근혜 당시 의원이 19대 국회 개원일인 2012년 5월30일 민생 1호 법안으로 제출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정몽구 보호법'이라고 부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위장도급, 불법파견 노동자는 모두 합법 사내하도급 노동자가 되고, 10년 넘게 파견법을 위반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때문입니다.

불법파견 재판 과정에서 현대차의 변호사들은 일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전형적인 도급과 달리 '사내하도급'은 일부 근로자 파견과 비슷한 요소가 있어도 곧바로 파견으로 단정할 수 없고, 사내하도급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 내용이 그대로 담은 것이 사내하도급법입니다.

지난해 1월15일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사내하도급법이 최근 대법원이 불법으로 인정한 근로 형태를 합법화할 소지가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인권위는 "사내하도급 계약 시 원청업체가 위임한 내용까지 포함할 수 있게 돼 적법 도급과 불법 파견의 구분 기준을 불분명하게 만든다"며 "국제 기준과 헌법과 같은 국내 규범에서 천명하고 있는 직접 고용 의무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무덤에 들어간 줄 알았던 사내하도급법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최근 잇따르고 있는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한방에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종합대책'이 사내하도급법이기 때문이다.

2010년 7월22일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시작으로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까지 전 법원에서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쌍용차에 대해 총 9번의 판결을 통해 자동차 사내하청은 합법적인 사내하도급이 아니라고 확인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종합대책 중 55세 이상 고령자에 한해 제조업까지 모든 업종의 파견을 하용하는 것으로는 한국의 재벌들이 전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내하도급(사내하청)의 불법파견 논란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사내하도급법을 꺼내든 것입니다.

사내하도급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즉시 전환해야 할 대상입니다. 사내하도급은 차별을 없애고 직접 고용을 유도하는 대상이 아니라 없어져야 할 대상입니다. 법원이 십여 차례에 걸쳐 '불법 강도짓'이라고 확정해 줬는데도 중단시키지 않고, 도리어 합법화시켜 준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입니다.

불법파견 판결 한방에 날릴 사내하도급 대책

지난 6일 대전에서 불법파견 판결의 주역들이 모였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를 비롯해 완성차 4사,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포스코, 동희오토 등 전국에서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사내하도급법을 비롯해 정부의 '비정규직 양산대책'을 막아내고 사내하청 제도를 없애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결의했습니다.

정부는 드라마 <미생>이나 영화 <카트>로 인해 커진 사회적 분노를 정규직으로 향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과보호론'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정규직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은 것은 자본과 권력입니다.

▲정부는 <미생>이나 <카트>로 인해 커진 사회적 분노를 정규직으로 향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과보호론'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은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tvN
사내하도급법을 비롯해 정부 대책은 정규직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규직노조는 아직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날 토론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양산대책과 함께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막아내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원이 불법이라고 판결한 사내하도급을 폐지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비정규직 양산대책을 막아내기 위해 2015년 봄 총파업을 벌이자는 '사내하청 총파업 추진 전국모임'을 결성했습니다.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한 노조는 파업으로, 그렇지 못한 노동자는 연월차를 써서 함께 거리로 나오자는 것입니다.

양동운 지회장은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앞장서고, 공공 서비스 유통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손을 잡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어깨를 걸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최근 비정규직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정부 대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압도적입니다.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자동차는 한 대도 만들 수 없습니다.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출근하지 않으면 전국의 공장이 멈춥니다. 공항과 철도와 지하철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을 중단하면 세상이 멈춥니다.

비정규직이 얼마나 억울한지 정부는 알지 못합니다. 하청 인생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자본은 관심이 없습니다.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지 국민들은 잘 모릅니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