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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기독교 강화조약'으로 본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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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기독교 강화조약'으로 본 한반도 평화

[단비칼럼] 상호 존중과 인정·평화의지 실행한 살라딘-리처드의 지혜 배워야

1192년 9월 2일 중동에서 제3차 십자군 전쟁을 끝내는 강화조약이 성립했다. 강화 문서의 서명자는 이슬람 쪽은 살라딘, 기독교 쪽은 리처드였다. 1096년에 시작되어 약 180년 동안 진행된 십자군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들이다.

살라딘은 분열되었던 이슬람권을 통일한 후 예루살렘을 다시 이슬람 지배로 확보한 걸출한 영웅이었다. 리처드는 이슬람 쪽에서 사자의 심장을 가진 왕으로 부른 기독교 쪽의 영웅. 이 둘은 3년을 끌어온 제3차 십자군 전쟁의 주역이었다. 사자왕 리처드의 몇 차례 승리 후 이 둘은 전쟁을 끝내는 강화 조약을 체결한다.

상황은 막혀있었고 처리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리처드는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살라딘은 강화 체결 후, 6개월 만에 숨을 거두었다. 양측 모두 미래를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살라딘-리처드의 강화조약 이후 26년 동안 유지된 중동의 평화

▲ 살라딘을 소재로 한 19세기 동판화.
십자군 전쟁 이후 이 강화조약으로 중동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애초 강화조약은 3년 8개월이었지만 26년 동안 이어졌다. 26년은 중동의 역사에서 결코 짧지 않다. 최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72시간의 휴전도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 8월 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인도적인 이유로 겨우 72시간의 휴전에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흘 후 다시 가자지구 공격을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고 한다. 지금 중동에서 26년의 휴전도 아닌 평화는 거의 무기한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살라딘과 리처드의 강화조약 당시에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체결한 강화조약은 제5차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무려 26년 동안 유지되었다. 몇 차례 사고는 있었지만 평화가 유지된 것은 평화 그 자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영토에 속했지만 기독교 쪽의 예루살렘 순례는 허용되었고 안전은 보장받았다. 국경은 확정되었고 경제교류에 한해 자유로운 왕래가 허용되었다. 평화를 바탕으로 중동은 안정을 찾아갔다.

폭력적인 지도자들은 전쟁을 일으키지만 민중은 평화를 원한다. 평화 속에서 안전을 확인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는 평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평화를 통하여 무엇을 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화 자체가 인간의 생존 조건이기 때문이다. 모든 지도자들에게 평화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슬람 vs 기독교의 不信에도 '상대방 인정'이 강화조약 가능케 해

상식적으로 이슬람 쪽과 기독교 쪽의 강화조약은 불가능해 보였다. 서로 불신자로 부르면서 경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처드와 살라딘은 달랐다. 중세 종교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서로를 존중했다고 한다. 이들이 보여준 리더십과 성과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충분했다. 상대방에 대한 인정은 대화의 전제이다. 각 진영의 리더로서 다른 진영의 리더를 인정하고 존중할 정도의 인품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체된 상황을 돌파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었다. 서로가 버티고 있는 한 전쟁으로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었다. 그리고 전쟁은 너무나 큰 희생을 요구했다.
이로써 교섭의 전제는 마련되었다. 교섭은 난항을 겪었지만 서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다. 사자왕 리처드는 자신의 누이와 살라딘의 동생인 알 아딜을 결혼시킬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슬람 술탄의 동생과 기독교 왕의 동생이 결혼한 다음 이슬람 술탄의 동생인 알 아딜이 개종하여 예루살렘의 왕이 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제안이고 어떻게 보면 모욕적인 것이었지만 알 아딜과 살라딘은 크게 웃고 불문에 부치고 말았다고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리처드의 행동이다. 리처드는 알 아딜의 아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날 리처드는 협상에 동행한 소년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했다. 소년은 순순히 따랐다. 리처드는 칼을 빼 소년의 어깨 위에 올리며 말했다. "너를 기사에 봉하노라." 소년은 웃었다고 한다. 이 소년이 나중에 이슬람 술탄이 된 알 카밀이다.

물론 알 카밀은 기독교로 개종하지도 않았고 리처드에게 충성을 바치지도 않았다. 그는 37년 후 제6차 십자군전쟁에서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2세와 강화조약을 체결한다. 알 카밀이 리처드로부터 받은 영향이 조금은 남아 강화조약을 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더 위험해지는 한반도, 지도자가 상대방 인정하고 평화정착 의지 보여야

평화는 상호존중의 분위기,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생겨난다. 서로 불신자로 불렀고 종교상 인정조차 하지 않았던 진영 사이에도 평화조약은 성립했다. 그것도 26년간의 평화조약이다.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이 정도의 평화조약을 성사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를 포함한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차원의 평화도 절실하다. 핵 문제, 미사일 문제, 일본의 재무장 문제, 군비경쟁 문제 등 평화를 위협하는 수많은 문제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6자회담이 계속되던 시대보다 훨씬 위험해졌다.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나 동아시아 차원에서 평화를 정착시킨다면 그 인물 역시 노벨 평화상 감이 될 것이다.

평화는 평화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인간 생존과 안전, 존엄과 가치의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정착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지도자들은 행동해야 한다. 평화정착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 최근 터져 나오는 군 비리, 군인 폭행 문제 역시 평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종국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열강 사이에 낀 대한민국만으로 평화를 정착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험악했던 중세시대에도 서로 불신자로 불렀던 인물들 사이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사시킨 동력은 지도자들의 상대방 존중과 자신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내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가 절실한 지금 살라딘과 리처드의 지혜가 필요하다.

김인회 교수의 <단비칼럼>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비칼럼'은 '단숨에 읽는 비평 칼럼'의 줄임말입니다. 필자인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낸 김인회 교수는 <단비칼럼>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와 사법제도의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올곧은 해법을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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