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포인트나 급락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같은 기간 18%포인트 줄었습니다. 대기업의 실적부진에 계열사와 협력업체까지 경영난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다가올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수만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다면?
지난 13일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회사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간단한 숫자놀음으로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해도 괜찮고, 해고 규모를 사용자 마음대로 정해도 상관없다는 선고였습니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법원에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지난 2월7일 서울고등법원이 정리해고의 근거가 된 회계보고서의 오류를 인정해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25명의 목숨을 앗아간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정리해고 요건 강화가 여야 모두의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 이후 대법원 판결에 분노하는 여론이 높습니다. 주심 대법관에 대한 비난도 쇄도합니다. 법률 적용의 잘잘못만을 판단해야 하는 법률심인 대법원이 사실 인정 문제까지 개입했고, 사회 정치적 쟁점이 된 사안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 보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정리해고의 첫 번째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넓게 해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회사 전체로 흑자였던 악기제조회사 콜텍이 적자가 난 대전공장 노동자 40명을 정리해고 한 사건에 대해 "기업 전체의 경영이 악화될 우려가 있으면 잉여인력 감축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며 정리해고를 무효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이어 법원이 지정한 회계법인이 콜텍의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수익성이 양호하다는 감정보고서를 냈지만,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올해 6월12일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다시 반복합니다. 지난해에도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기업의 잉여인력 중 적정 인원이 몇 명인지는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근 대법원의 판결로 정리해고의 4대 요건 가운데 첫 번째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경영진의 필요'가 되었습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경영진'의 필요로 바뀐 정리해고 요건
지난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확대간부회의에서 우윤근 원내대표는 "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습니다. 박지원 비대위원은 "쌍용차 해고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고 했습니다.
한정애 새정치연합 대변인 또한 "대법원이 이제까지 정리해고의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보수적으로 해석해온 데 대해 국회가 입법적 개선을 하지 못했다"며 "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반성했습니다.
하지만 정세균 비대위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세균 비대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리해고법을 만들 때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를 지냈던 인물이며 쌍용차가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된 직후부터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사람입니다.
근로기준법 24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의 4대 요건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 △노동자 대표와 성실한 협의입니다. 김대중 정권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무분별한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경영상 해고의 제한'은 '해고의 무제한'이 되었습니다.
이 법안이 만들어지기 전인 1989년 대법원은 '경영상의 해고'는 "기업의 존폐위기에 직면하는 급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을 경우", 즉 도산을 막기 위한 경우에만 한정해 인정했습니다. 만약 김대중 정권이 정리해고 조항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기업 편을 드는 대법원이라고 하더라도 콜텍, 동서공업, 쌍용차 노동자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법원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작 정리해고법을 찬성하고 만든 당사자들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도 듣지 못했습니다. 정리해고제에 찬성했던 국회의원 중에 노동자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한 의원은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노동문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아킬레스건
지난 11일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문재인 비대위원,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위원장 등 20명의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카트>를 관람했습니다. 문희상 위원장은 "이번 영화가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비대위원은 "참여정부 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자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는데, 막상 사용자들이 사내하청 등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며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참여정부가 서민들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고 반성했습니다.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위원장은 "비정규직의 슬픈 현실이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느꼈다"면서 "우리가 앞으로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대표를 맡은 국회 비정규직차별개선포럼은 14일 오후 7시 국회에서 <카트>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새누리당이 600만 명이 넘는 비정규 근로자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특단의 의지를 갖겠다는 의미에서 상영하게 됐다"며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 불합리한 차별과 불평등의 삼중고를 겪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널리 알려 해결책을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야가 앞 다투어 비정규직 해결한다고?
그러나 2007년 당시 이랜드노조 사무국장으로 영화 <카트>의 주인공이었던 홍윤경 씨는 이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2006년 가을 홍윤경 씨가 이랜드, 뉴코아, 까르푸노조 공동투쟁을 벌이며 중계동 까르푸 앞 천막에서 농성을 하고 있을 때, 열린우리당 우원식 국회의원이 천막농성장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원식 의원은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홍 전 국장의 지적에 "부족하더라도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어놓아야 그 법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생기고, 법이 부족하면 조금씩 수정하면 된다"고 강변했습니다.
<카트>의 실제 주인공인 홍윤경 전 사무국장 등 당사자들은 우원식 의원을 비롯한 책임 당사자들에게 아직 사과의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비정규직법에 찬성했던 국회의원 중에 노동자들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한 의원은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비정규직 양산법 만든 여야 정당
페이스북에 영화 <카트>를 맨 먼저 볼 것이라고 밝힌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지난 10일 한 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문제에 대해 "노사단체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당사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인 듯해서 옛날 자료를 찾았습니다. 2005년 1월26일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비정규직법과 파견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은 "비정규직보호법안의 내용이 국제적 기준에 맞고 국민적 지지가 있다면, 노사 어느 쪽이 반대하더라도 경제활성화와 따뜻한 복지를 위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추진했던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사용기간 3년의 기간제법을 제정하고, 파견허용 대상 업종을 26개에서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는 한편 파견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확산법'이라며 2005~2006년까지 10여 차례의 파업을 벌였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법안을 막기 위해 국회 타워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가족처럼 끈끈했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일사천리로 비정규직법을 강행처리했습니다.
7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보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비정규직 사용기간 3년 연장 △고령자 파견 전면 허용 △직업소개소 대기업화라는 '박근혜표 비정규직 양산법안 3종 세트'의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인기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처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마치 으르렁대며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17년 동안 재벌을 위해 가족처럼 마음을 모았던 것입니다.
재벌의 이해 앞에서 가족의 '정' 나눴던 여, 그리고 야
한국의 노동자들은 일제 치하 농민들처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소용돌이 속에서 정리해고, 구조조정, 임금삭감, 외주 용역화, 비정규직화라는 온갖 수탈과 수난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국은 1997년 12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2001년 8월 차입금 전액을 조기 상환하며 IMF를 벗어납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이유로 만들어진 정리해고제, 파견법, 비정규직법은 17년이 지난 2014년에는 점점 괴물이 되어 커져만 갑니다.
왼손으로 만든 김대중 정권의 정리해고제가 쌍용차 살인진압 무기가 되어 이명박 정권 오른손에 들려졌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가로 질러 만들어진 파견법, 비정규직법은 박근혜 정권에서 1000만 비정규직 시대에 삶을 세로 질러버렸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 새정치연합이 진정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면 지금 쌍용자동차 앞으로 달려가 정리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자본 앞에 먼지보다 가벼운 의원 배지를 걸고 정리해고제 폐지를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영화 <카트>의 주범인 비정규직법에 대해 새정치연합이 정말로 "참여정부가 서민들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는 발언이 수사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현대자동차로 달려가 사내하청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당의 존망을 걸고 파견법과 비정규직법 폐지를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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