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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간 빼먹는 '꼼수 증세', 당신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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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간 빼먹는 '꼼수 증세', 당신 선택은?

[김윤태 칼럼] 세금의 정치학: 부의 재분배와 조세정치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평등이다. 불평등은 단지 낮은 수입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이 지적한대로 불평등은 우리의 건강, 자존감,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자원,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손상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불평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불평등에 관한 사고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8세기 영국의 중상주의 사상을 계승한 현대 주류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긴다. 반면에 공산주의 사상은 기계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유토피아를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복지국가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불평등을 바로 잡기 위한 조세정책의 유용성을 강조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불평등에 관한 3가지 사고

18세기 영국의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은 사회의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빈곤도 ‘필요악’으로 간주했다. 빈곤이 있어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고대 이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도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등적 분배를 당연하게 간주한다. 대표적으로 ‘인적자본’ 이론은 개인의 교육과 기술 수준의 차이에 따라 소득 차이를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불평등의 원인이 사회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다고 떠넘긴다. 

19세기에 유럽에서 등장한 공산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을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갈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개인의 재산 소유 상한을 못 가진 자의 4배 한도로 허용하고, 나머지는 국가에 헌납하자고 제안했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를 1대 4로 정하자는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은 모든 산업을 국유화하는 한편, 공장 노동자와 경영자의 임금 차이를 1대 6 수준으로 제한했다. 위험한 일을 하는 탄광노동자의 수입은 대학 교수보다 높았다. 중국 공산당 마오쩌뚱은 문화대혁명 당시 소득 격차를 3배 이내로 제한했다. 그러나 기계적 평등을 추구한 공산주의 국가는 유토피아주의의 오류에 빠졌다. 사유재산의 철폐를 통한 기계적 평등은 시민의 모든 생활을 통제하는 공산당 관료의 독재를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부의 재분배를 위한 최고의 발명은?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누진적 조세 제도를 선택한다. 누진소득세가 처음 제안된 것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었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인권선언’에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납세하는” 원칙이 정치적 선언으로 등장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능력에 따라 소득이 불평등이 생기는 만큼 고소득자가 더 높은 세율을 부담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영국 공리주의자들에게도 나타난다. 이들은 같은 금액이라도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효용’이 더 크기 때문에 사회의 ‘총 효용’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믿었다. 누진적 소득세는 20세기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효과적인 제도가 되었으며, 계급타협과 사회통합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평화로운 합의보다 전쟁의 시기에 주로 이루어졌다. 1909년 영국 자유당은 “빈곤의 참상을 근절하기 위한 전쟁 비용”이라고 주장하며 ‘인민예산’으로 불리는 예산안을 추진했다. 노령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동시에 독일의 부상에 대비한 군비 경쟁을 위해 거액의 예산이 편성했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자유당은 급진적으로 소득세율과 상속세율을 인상하고, 누진과세를 강화했다. 귀족들이 소유하는 토지에도 거액을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보수당과 토지 귀족이 많은 상원에선 ‘부자들의 피를 빨아 먹는 부당한 예산’, ‘토지 국유화를 노린 사회주의’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자유당의 인민예산은 아일랜드 국민당과 노동당의 지원을 얻어 간신히 통과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소득세율은 무려 80%까지 치솟았다. 

소득세율이 90%가 넘어도 자본주의 황금기

20세기 전반기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세계 각국의 소득세율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최고 한계세율을 94%로 인상했다. 모든 기업에 이윤을 부과하는 초과이윤세를 도입하고, 법인세는 40%로 상승했다. 이러한 전면적인 누진세 강화와 함께 전쟁의 파괴,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1914-45년 시기 동안 유럽과 미국의 불평등은 감소했다. 세금은 정부의 재정을 늘리는 정책 수단일 뿐 아니라 사회의 통합을 이룩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누진세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70%로 하락하였고, 1986년 레이건 행정부의 시기에 28%로 크게 낮아졌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 최고한계세율은 39.6%까지 인상했지만, 부시 행정부의 시기에 다시 35%로 인하되었다. 자본소득세는 더 낮아졌다. 1960년대 25%였던 최고자본소득세율은 1970년대 35%까지 인상했으나,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시기에 28%로 하락한 뒤 점차 인하하여, 2010년에는 15%에 머물고 있었다. 이처럼 누진세율이 낮아지는 한편, 스스로 연봉을 결정하는 최고경영자들은 보수를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 시티은행 최고경영자는 1천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대기업에는 수백억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이에 미국 최고 부자 워렌 버핏은 “자신의 세금이 자신의 비서가 내는 세금보다 낮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는 동시에 상속세 폐지에 적극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세금이 경제를 망친다고?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국가는 조세나 재정지출을 통해 복지제도를 운영한다. 이를 통해 소득 재분배를 추구하여 불평등을 완화하고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으로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는 완전고용과 보편적 사회보장을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복지를 달성하려는 이상을 표현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자본주의 경제는 완전고용과 사회보장을 위한 복지국가 건설과 노사타협의 제도적 장치를 형성했다. 20세기 초반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스웨덴은 1938년 '살트세바텐 협약'을 통해 노사정 3자가 모여 임금 억제와 복지 확대를 동시에 추구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점에서 세금은 산업평화와 계급연합의 핵심적 의제가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석유파동이 발생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복지국가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자유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우파는 복지국가가 근로동기를 약화시키고 ‘의존의 문화’를 강화하여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비판했다.  1979년 영국의 대처 정부와 1980년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등장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하여 통화량을 억제하고 정부 재정을 축소해야 한다고 통화주의 경제정책이 확산되었다. 보수적 정치인과 학자들은 조세 감면을 통해 기업과 개인의 투자를 유도하는 대신 복지재정은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유층의 세금을 감면하는 한편, 보편주의 복지제도는 약화되는 반면, 자산조사를 통한 선별주의 복지제도가 확산되었다. 

공급중시 경제학의 파산

그러면 레이건 정부 이후 공화당 정부가 추진했던 부자 감세는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었을까? 공급 중시(supply side) 경제학자들은 부자와 기업의 세금을 감면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낙수 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레퍼 곡선’을 내세우며 세금이 오르면 경제성장이 악화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막대한 부자 감세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증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커지면서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윤리가 사라졌다. 

한국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아직도 미국식 경제학에 경도되어 낮은 세금이 경제 성장에 좋다는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다.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증세는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고 주장했다. 아직도 한국의 조세부담율(19.8%)과 국민부담율(25.9%)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당연히 복지와 사회보장 지출 비율도 가장 낮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약 8% 수준으로 미국의 2분의 1, 북유럽 국가의 4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득재분배 효과가 낮아 빈부격차가 크다. 2010년의 경우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중에서 조세부담률이 높은 10개국의 빈곤율은 8.3%에 그친 반면, 그것이 한국을 포함하여 조세부담율이 낮은 10개국의 빈곤율은 14.7%에 달했다. 이는 빈곤률을 낮추려면 조세부담율을 높여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의 보수적 학자들은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가 지나친 복지 때문에 발생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20%에 그친다. 오히려 복지가 경제를 망친다면 독일, 스웨덴, 덴마크가 가장 먼저 망해야 한다. 이 나라들의 복지 지출은 30%가 넘는다. 그러나 독일, 스웨덴, 덴마크는 유럽에서 가장 경제가 건실한 국가들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도 산업 생산성과 고부가가치 제조업의 경쟁력이 매우 높다. 미국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위해 직원을 해고하지만, 독일과 스웨덴은 숙련기술자를 위한 관대한 복지 수당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다. 당연히 기업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파업으로 인한 근무손실일수는 적다. 보편적 복지제도와 산업평화가 경제 생산성을 높이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결국 조세부담율이 높아도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진보정치에서 세금 논쟁이 중요한 이유

지난 대선에서 연거푸 ‘경제’가 최대의 이슈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낙수경제 이론을 추종한 이명박 정부의 ‘엠비노믹스’ 5년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장밋빛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권의 경제 대국)’ 공약이 실패로 끝나고 거품경제가 잔뜩 키웠다. 이제 다시 박근혜 정부가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기반 마련)’ 공약으로 그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공약을 내걸었지만, 집권 후에는 노골적으로 자유시장 접근법으로 회귀하고 ‘경제 활성화’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공약했다가, 이제는 담배값 인상, 주민세, 영업용 자동차세 인상 등을 발표하여 ‘꼼수증세’, ‘서민증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탈규제와 서민증세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더 큰 불평등과 빈곤을 만들 것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문제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도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했다. 대신 ‘부자감세 철회’를 주장했지만, 이미 2012년 국세 감면율이 낮아져 실효 없는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박근혜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에 맞서 건전재정을 주장하며 스스로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대안 제시를 포기하고 있다. 따라서 ‘대안 없는 야당’이라는 공격을 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지금이라도 진보정치는 보수정부의 부자 감세와 재벌 편향 정책을 극복하고 중산층과 빈곤층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보편적 보육복지, 기초연금 등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면서 재정 기반을 강화하려면 단계적인 증세는 불가피하다.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 조세부담율(25%)과 국민부담율(34.1%)을 높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변칙적인 간접세 위주의 증세는 재정 적자를 서민과 중산층에 떠넘기는 편법에 불과하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조세정책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조세개혁의 방향

지금 어떤 조세개혁이 필요한가? 최근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21세기 자본>의 저자 피케티는 자본에 대해 ‘세계세(global tax)’를 부과하고 최고 75% 수준으로 소득세와 상속세 세율을 제안했다. 하지만 급격한 소득세 인상은 정치적 합의 없이 불가능하다. 유권자들은 복지확대를 위해 세금인상을 찬성하다가도 막상 증세를 논의하면 반대로 돌아서곤 한다. 이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고 자신이 원하는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득세 인상이 반드시 정치인의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득세 인상이 소득세 최고세율을 5-10% 인상하는 조세개혁은 강력한 저항 없이도 가능하다. 실제로 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독일, 스웨덴 등 주요 중도우파 연정에서도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을 단행했다. 

내가 <프레시안>의 기고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지만, 예일대학교의 로버트 쉴러 교수, 부르킹스 연구소의 레너드 버먼과 제프리 로핼리 연구원이 제안한 ‘밀물 조세(rising tide tax) 제도’도 고려해볼 만하다.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면 최고 소득자에 대한 한계 세율을 의회에서 자동으로 인상하자는 방안이다. 실제로 누진적 소득세의 세율을 정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일정 수준의 빈곤율 또는 지니계수가 넘으면, 이에 따라 의회에서 조세 인상율을 검토해야 한다. 증가하는 세수는 교육과 직업훈련 등 기회의 평등을 강화하는 정책과 기술개발 및 미래 투자를 위해 지출할 수 있다. 결국 불평등을 해결할 조세와 예산에 관한 정치적 합의가 중요하다.

경제 친화적 재분배 정치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조세와 예산 논쟁은 양극화되어 있다. 보수정치가 주장하는 시장 경쟁과 무책임한 능력주의는 사회통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자유시장의 힘으로 소득 재분배가 충분하게 일어나기는 어렵다. 정교한 조세제도와 복지제도를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진보정치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다양한 실증 분석에 따르면,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오히려 사회보장, 공공서비스, 보조금 등 정부 재정을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 조세를 통한 정부 부담의 사회보장 지원 비율을 높여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의 공공부조 사회보장 제도에서도 빈곤이 발생한 이후 현금 급여 지원보다 사전에 개인의 능력을 키워 빈곤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치는 빈곤과 사회적 배제를 없애고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동시에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여 사회적 위험을 분산시키는 적극적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재분배 장치를 축소하자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예방하는 복지제도를 강화하지는 것이다.  

다른 한편, 불평등 논쟁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복지 지출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커지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재분배 장치가 미흡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커지는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 조세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의 결합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동자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축소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을 향한 이동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청년세대의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기업의 조세감면과 사회보험 기여금 지원을 도입해야 한다. 세입구조 뿐 아니라 세출구조가 중요하다. 

세금은 정치다

조세와 복지는 단순히 정부의 정책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이 벌이는 정치투쟁의 장이다. 그러나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지배하면서 조세와 복지 정책이 선거 쟁점이 된 적이 거의 없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최대 쟁점이 된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국가가 부상했지만, 재원 문제에 부딪히자 모든 복지논쟁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담뱃세, 주민세를 제기하면서 증세 논란이 다시 불거졌지만, 복지재정 확대와 조세개혁을 위한 정치적 논쟁으로 전개될지 미지수이다. 

그래도 작은 긍정적 신호가 커지고 있다. 2012년 경향신문 조사에 따르면,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55.2%가 동의하고, 44.3%가 반대했다. 국민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복지 확대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상승하면서 증세 논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정당과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조직화된 힘이 없다면 조세개혁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조세형평과 조세정의는 책 속에 있거나 정치인의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정치적 행동에 달려있다. 한마디로 세금은 정치다. 

이 칼럼은 2014년 11월에 출간된 <노동사회> 제179호에 게재된 글을 축소하여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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