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제주도가 '보물섬'이 될 수 있는 비밀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제주도가 '보물섬'이 될 수 있는 비밀은?

[박진현의 제주살이] 대안학교 보물섬학교

각박한 도시생활을 떠나 제주도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경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살고자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연간 학비가 5000만 원에 달하는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 제주도로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제주도는 경쟁교육 토대가 강한 곳이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입시경쟁으로 아이들이 시달리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절반 정도만 인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제주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부끄러워서 각종 모임에 나가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사교육비도 전국 어느 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제주로 온다고 아이들이 미친 입시경쟁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제주도 역시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다. 섬이라는 특성으로 그 모순이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 비정상적인 입시경쟁에서 이탈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 속에서 만들어진 대안학교가 있다. 보물섬학교다. 제주 시내에서 차로 5분 거리지만, 한적한 시골 같은 오등동에 자리 잡고 있다. 한라산이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다. 37명이 다니는 9년제 대안학교다. 초등학생이 29명, 중등학생이 8명이다. 시골 분교 수준인 작은 학교다. 3년 전인 2011년에 학교 문을 열었다. 지난 10월말 보물섬학교를 찾아 정연일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보물섬학교는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을까?

“보물섬어린이집이 보물섬학교의 기반이다. 몇몇 교사들이 1995년부터 지역에서 대안적인 보육을 고민했다. 당시에는 민간어린이집이었지만 부모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나름대로 건강한 보육을 실현했다. 1999년부터 교사들끼리 공동육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자고 어린이집 부모들을 설득했다. 2001년 준비위원회를 거치고 2002년도에 정식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시작했다.”

▲정연일 교장선생님 ⓒ박진현

보통 공동육아협동조합하면 부모들이 모여서 만든다. 이에 비해 보물섬어린이집은 교사들이 고민을 먼저 시작했다. 드문 경우다. 첫째 아들 윤슬이가 올해 3월부터 보물섬어린이집에 다닌다. 요즘 어린이집을 보면 놀이기구가 꽤 화려하다. 이에 비해 보물섬은 흙마당과 모래놀이터만 있다. 보물섬에서는 흙과 모래, 자연이 놀이친구이다. 다섯 살 남자아이인 윤슬이는 매일 매일이 소풍이다. 들로, 숲으로, 오름으로.

“보물섬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니까 불안했다. 어린이집에서 나름 건강하게 컸는데 초등학교 들어가 경쟁적인 구조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했다. 그래서 2005년에 토요학교를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에 얘들을 데리고 오름과 들로 돌아다녔다. 풍물도 치고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다. 1년을 한 후 2006년부터 매일 진행하는 방과 후 굴렁쇠학교와 토요일에 열리는 어린이문화학교를 만들었다.”

정 선생님은 방과 후 교실과 토요일에 열리는 문화학교를 진행하면서 대안학교의 꿈을 키워갔다고 말했다. 그 결실이 2011년 보물섬학교다. 공동육아를 시작하고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어려움은 없었을까.

“아픔이 있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이 해산됐다. 공동육아를 처음 시작할 때 같이 했던 부모들은 교사를 신뢰했다. 같이 보물섬학교를 만들어왔으니까. 이 부모들이 빠지고 새로운 부모들이 들어오면서 교사와 갈등이 생겼다. 여기는 왜 교사들 입김이 세냐, 왜 교사 중심이어야 하느냐하면서 갈등이 생겼고, 이 갈등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서 조합이 해산됐다.”

▲보물섬학교 ⓒ박진현

지금은 보물섬교육공동체를 만들어 보물섬어린이집, 보물섬학교, 방과후 굴렁쇠학교, 토요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가족도 윤슬이를 보물섬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교육공동체 회원으로 가입했다. 조합이 해산되는 아픔이 있었지만 보물섬교육공동체를 만들어 교육을 통한 공동체 운동을 계속 벌여나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아동의 ‘삶의 만족도’가 OECD 내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고, 결핍지수는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 아동의 경우 여가활동 관련 항목에서 결여수준이 높았다. 우리사회는 도대체 아이들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이에 비해 보물섬학교 아이들은 신나게 논다!

“저학년 시기 아이들은 많이 놀아야 한다. 논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다.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한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갖는다. 놀이 안에 희노애락이 다 담겨져 있다. 그렇게 봤을 때 놀이는 인생의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다.”

보물섬학교 아이들은 각종 놀이를 섭렵한다. 물론 놀기만 하는 게 아니다. 여러 교과과정이 있다. 보물섬학교의 교과과정은 크게 △ 생활교과 △ 기본교과 △ 프로젝트수업 △ 자치회 활동 등이 있다.

“생활교육이라면 학교를 오면서 사람을 만나고, 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이런 모든 일상이 교육이다. 생활교과 안에는 여행과 나들이, 놀이도 들어간다. 기본교과에는 우리말 우리글, 아름다운 수, 생활과학이 들어가고 인물교과, 외국어 교과, 예능교과 등이 있다.”

보물섬학교에서는 교육과 아이 삶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일상이 교육이며, 교육이 바로 삶이다. 이런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보물섬학교는 교사와 부모들이 만든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만들었다.

“프로젝트 수업이 가장 많은 반별수업으로 차지한다. 학교를 개교하면서 스머프 마을 만들기를 했다. 스머프 마을은 태어나면서 이름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살면서 스머프 각자의 개성과 장기에 따라 이름이 정해진다. 무엇인가를 잘 만들면 뚝딱이가 되고, 늘 투덜거리면 투덜이가 되고. 아이들의 개성이 보물섬학교에서는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발현된다. 초창기 아이들과는 학교가 개교했으니까 학교를 같이 만들어가자고 했다.”

보물섬학교에 들어가면 바로 조그마한 나무집이 하나 보인다. 문 옆에는 북카페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북카페 바로 맞은 편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보인다. 자전거 거치대 너머에는 제법 큰 개집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북카페ⓒ박진현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자전거 거치대ⓒ박진현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 씨는 “손발을 놀려 일을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부모나 주변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경험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라고 강조했다. 보물섬학교의 프로젝트수업은 아이들이 일을 통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학교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체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품성을 기르는 교육이다.
기본교과 과정도 아이들에 따라 매년 다르게 구성된다. 일반학교가 학년마다 배워야할 것과 진도가 정해져 있다면 보물섬학교는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그해 교과과정이 정해진다. 초등 1학년 교과라도 매해 들어오는 아이들에 따라 교과과정과 목표가 달라진다. 정 선생님은 “각자에 맞는 지식습득과정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 5학년까지 수업도 안 듣고(!) 신나게 놀기만 하던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가 6학년이 되면서 “내가 수학을 못해 바보 같아. 수학을 배우고 싶어”라고 말했단다. 그래서 올해부터 수학공부를 시작했고, 10개월 만에 초등 6학년 과정을 거의 다 배웠다고 한다. 정 선생님은 “입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지식의 구축이 더뎌 보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어느 시점에 철학을, 과학을,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튀어나온다. 그 때 배우는 지식의 깊이와 구축 속도는 일반학교 아이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마지막 교과과정으로 어린이자치회가 있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관련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결정한다. 결정한 것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얘기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에게 도움도 주지만 벌칙도 준다. 물론 그 벌칙도 아이들이 정한 것이다. 자치회를 할 때는 모든 교사들도 아이와 같이 한 표를 행사한다.”

보물섬학교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 나는 민주주의와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제도권 교육 내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배웠다. 교육은 안정적인 삶의 수단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었다. 이런 경향이 지금은 훨씬 더 강해졌다. 모든 가정에서 교육을 계층 상승의 통로로 여겨 사활을 걸고 경쟁하는 구조가 출현했다. 대안학교는 비정상적인 과잉경쟁에서 적극적으로 이탈하는 용감한 행동이다. 스스로 비주류를 선택하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아이와 부모들이 가지는 두려움도 있다.

“부모교육, 부모모임을 많이 한다. 서로 고민을 나눈다. 내가 우리 사회 주류의 생각을 하면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면 끊임없이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부모 스스로 다른 삶을, 대안적인 삶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보물섬학교 부모들은 주택조합을 만들어 주택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고민하고 있단다. 교육공동체에서 삶의 공동체로까지 나가기 위한 노력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주도는 경쟁교육 토대가 어느 곳보다 강하다. 대안학교가 뿌리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러기에 대안학교가 더 절실해 보인다. 제주도에는 종교관련 대안학교, 일부 특권계층을 위한 대안학교를 제외하면 보물섬학교가 대안학교로 유일하다. 아직 제주지역사회의 관심은 적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대안학교의 실험의 영향에서 만들어졌듯이 제주 교육의 변화를 위해서도 보물섬학교는 소중하다. 제주도가 보물섬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풍광만이 아니라, 삶의 대안을 찾아가는 제주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박진현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