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오후 1시30분, 울산지방법원 101호 법정으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비정규직노조 전·현직 지회장, 간부들, 해고자들까지 무려 54명입니다. 변호인석부터 방청석까지 모든 자리를 꽉 채웠습니다.
현대자동차는 2012~2013년 공장 안팎에서 벌어진 파업, 집회, 농성을 폭력과 업무방해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검찰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기소했습니다.
9월 22일 검찰은 현대차비정규직 박현제 전 지회장과 강성용 전 수석부지회장에게 징역 5년, 대법원 판결 당사자 최병승 조합원에게 징역 3년 구형 등 54명에게 총 69년 10월형을 구형했습니다. 현대차의 모든 사내하청 공정이 불법파견이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이 있는 지 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징역 3년 이상 구형받은 조합원들 중에 혹시라도 법정 구속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구속자가 생긴다면 법원 판결 이후 급증하고 있는 노조 가입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54명 재판
울산지방법원 형사3부(재판장 정계선)는 박현제 전 지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강성용 전 수석부지회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등 8명에게 집행유예를, 46명에게는 50만원~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첫째,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근로하고 그 근로의 내용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으면서도 근로조건은 열악하며 고용이 불안한 불합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각 범행들을 저지른 것으로서 그 범행 동기에 참작할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한 사회적 갈등이 입법적, 정책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범행이 반복된 측면도 있는데, 이처럼 선진적인 고용제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야기된 문제에 대한 책임을 피고인들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셋째, 현대자동차 주식회사와 비정규직지회 사이의 분쟁 핵심은 대법원 판결의 취지가 같은 조건에 있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피고인 최병승 1인에 한하여만 적용되는 것인지 여부라 할 것인데, 최근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이 현대자동차의 근로자임을 확인하거나 그들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고용의무가 인정된다는 내용의 민사판결이 선고되었다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투쟁 "불합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
법원을 나온 노동자들이 모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비록 무죄를 선고받지는 못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정당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불합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이었고, 대법원 판결이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받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보다 검찰에게 더 화가 납니다. 10년 전인 2004년 9월과 12월 국가기관인 노동부가 현대차 9234개 공정 1만 명의 노동자가 모두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하고 검찰에 기소의견을 냈습니다. 그러나 울산지검부터 대검찰청까지 모두 현대차 정몽구 회장과 사용자들을 '혐의 없음’이라며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9월 13일 대검찰청 공안부는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 수사와 관련해 울산지검에서 수사회의를 열어 연말까지 수사를 완료하겠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도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에는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인권을 보호하며, 피해를 구제하는 국가기관"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검찰은 불법파견이라는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지 않았고, 사회정의를 외면했으며,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았고, 피해를 구제하지 않았습니다.
불법파견이라는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지 않은 검찰
오후 4시, 울산 북구 오토밸리복지센터 교육장에 1직 근무를 마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듭니다. 10월 13일부터 비정규직지회에서 비조합원을 상대로 법원 판결을 알리고 노조 가입을 받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9월 18~19일 현대차의 모든 공정이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 이후 울산공장을 중심으로 노조 가입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무임승차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이 컸지만, 비정규직노조는 비조합원들에게 손을 내밀기로 결정하고, 2주간 노조가입 설명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현대자동차는 10월 13일 자유롭게 보장했던 노조 간부들의 출입을 막고, 신규채용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대법원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니, 노조에 가입하지 말고 신규채용에 응시해 하루라도 빨리 정규직이 되라고 유혹합니다. 국내 최대 재벌이 법을 지키기는커녕 치졸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함께 가는 길>에서 대법원 소송 결과가 나오면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노조 가입을 막습니까? 왜 건물 아래에 하청업체 관리자들이 와 있습니까? 우리가 10년을 싸워서 받아낸 판결입니다. 한 명 한 명 힘이 부족하다면 같이 싸우면 됩니다. 당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함께 손을 잡읍시다."
현대차 비정규직 김성욱 지회장이 설명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향해 연대의 손을 내밉니다. 노동법률원 정기호 변호사에게 소송에 대한 질문이 쏟아집니다. 6시가 다 되어 끝났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궁금한 것을 물어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빛이 빛납니다.
노조 가입을 둘러싼 노사 간의 전쟁
늦은 저녁 식사 시간, 기아자동차 합의에 대해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이 분통을 터뜨립니다. 10월 15일 기아차 노사는 '특별교섭 관련 회의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법파견 특별교섭에 대해 합의했습니다.
기아차 노사는 △노사는 사내협력사 인원에 대해서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14년 임단협 종료 후 특별교섭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논의하여 진행한다. △회사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대해 법원의 최종심 확정 판결 결과에 따른다. △회사는 사내협력사 인원의 처우개선을 위해 지속 노력한다에 서명했습니다.
기아자동차도 지난 9월 25일 모든 사내하청 공정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판결은 단순히 1심 판결이 아니라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나온 판결입니다. 모든 법원이 자동차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고 판결한 것이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대법원 판결 전까지 노조 스스로 비정규직이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10년 째 회사와 줄다리기 시합을 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심판이어야 할 정부와 검찰은 현대차 회사 쪽에서 줄을 당깁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어린 아이와 조폭의 경기입니다.
비정규직노조에는 10년 동안 줄을 당긴 동지도 있고,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 줄다리기에 참여한 조합원도 있습니다. 함께 줄다리기를 하다가 신규채용으로 떠나간 동료도 있고, 노조의 정보를 팔아넘겨 정규직이 된 배신자도 있습니다.
9.18 법원 판결을 계기로 줄다리기 시합은 비정규직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새로 노조에 가입해 줄다리기에 힘을 보태려는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법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판결을 받으면 줄다리기에 더 힘이 납니다.
하지만 울산공장 50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서 아직 4000여 명이 줄다리기 시합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신규채용에 응시해 회사의 줄을 잡을지, 노조에 가입하고 소송을 제기해 비정규직지회와 함께 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줄다리기는 언젠가는 끝납니다. 대법원 최종심을 받고 끝날 수도 있고, 그 전에 노사 간의 합의로 마무리될 수도 있습니다. 힘껏 줄다리기에 함께 한 노동자의 보람과 자긍심이 줄다리기에 손끝 하나 대지 않은 사람과 같은 수는 없습니다. 가족들과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식, 자랑스러운 부모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레디앙>, <오마이뉴스>, <참세상>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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