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자 감세' 비판을 받는 이명박 정부의 2008년 대대적인 세법 개정 이후 실제로는 부자 감세가 아니라 15조 원 규모의 '부자 증세'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야당에서는 기획재정부의 세수 효과 계산 방식이 '엉터리'라며 "부자 감세를 숨기기 위해 대국민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는 맹공격을 퍼부었다. 아울러 '부자 증세'란 주장을 펼치기에는 지나치게 허술한 자료를 기재부가 내놓아 '논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경환 "2008년 감세 맞지만 이후 계속 보완…결과적으로 15조 부자 증세"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최 부총리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번의 세법 개정을 통해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해 15조1000억 원 규모의 증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위주로 42조5000억 원 감세가 이루어져, 2008년 세법에 따른 실제 감세 효과는 25조4000억 원밖에 남아있지 않다고도 그는 말했다. '부자 감세'가 아니라 '서민 감세'였다는 주장이다.
기재부는 그 이유로 2009년 이후, 과표 8800만 원 이하 구간은 소득세 세율을 경감했고 3억 원 초과 구간은 세율을 3%포인트 인상했단 점을 들었다. 또 2013년엔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 구간을 3억 원에서 1억5000만 원으로 조정하고 저소득층의 대한 세제 지원을 강화한 점 또한 부자 증세와 서민 감세 효과를 끌어냈다고 봤다.
법인세에 있어서도 기재부는 부자 증세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세율을 인하한 것은 사실이나, 최저한세율을 14%에서 17%로 올렸고,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를 축소하는 등 주로 대기업을 상대로 취해졌던 비과세·감면 조치를 정비했단 것이다.
기재부의 이 같은 주장은 13일 언론에 배포된 '2008년 이후 세법개정 세수효과'란 보도 참고자료에도 담겼으며 이는 배포 당시에도 작지 않은 논란이 됐다. 이명박 정부가 '부자 감세'를 했다는 통상 관념과는 정반대의 설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문제의 보도자료는 A4 1장 반 분량이다. 2008년에서 2013년 사이의 세수 효과 및 세부담 귀착을 연도별로 보이는 표 한 개와 이런 결과를 끌어낸 세법 개정 내용만이 간략히 담겨 있다. 예컨대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연도별 감세 인하 규모 결과나 비과세·감면 조치에 따른 연도별 감세 인하 결과, 그리고 각각의 조치들이 취해진 결과 변한 실효세율 등 구체적인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구 분
’08년
개정
’09년
개정
’10년
개정
’11년
개정
’12년
개정
’13년
개정
합계
세수효과
△88.7
+36.1
+4.6
+5.7
+7.7
+9.2
△25.4
귀착효과
중산
서민층
△21.2
+2.1
+1.3
△2.7
△1.7
△8.4
△30.6
중소기업
△15.1
+4.5
+0.2
△2.3
△0.1
+0.9
△11.9
대기업
△23.7
+14.9
+1.9
+5.1
+5.5
+7.2
+10.9
고소득층
△28.3
+14.6
+0.5
+5.6
+2.8
+9.0
+4.2
기타
△0.4
-
+0.7
-
+1.2
+0.5
+2.0
▲ 기획재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2008년~2013년 세수 효과 및 세부담 귀착' (5년간 누적 기준, 조 원)
野 "'팩트' 아닌 '추정치'의 합산일 뿐…계산한 자료 가져와라"
이 같은 기재부의 '부자 증세' 주장에 대해 야당은 '말도 안 되는 세수 추계 방식'이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기재부의 계산 방식은 세법 개정에 따른 결과, 즉 '실적'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각 연도 세수 '전망'을 합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세법 개정에 따른 효과를 2008년부터 2013년까지를 토막 내 단순 합산한 것도 '트릭'이란 비난이 나왔다.
윤호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실제로 국민이 부담한 세금의 증감을 명확히 반영해 계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세수 추계에 근거해 계산한 것"이라며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도 "지난 5년 간의 사후 실적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해당 연도의 세수 전망을 합친 것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다.
최재성 의원과 홍종학 의원은 기재부의 추계 방식을 '허위', '트릭', '대국민 사기극' 등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홍 의원은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효과를 그대로 인정하고, 국제 기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넓은 중산층 기준을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라며 "핵심은 각 년도에 발표된 향후 5년간 세수 효과를 단순 합산해 전체적인 세수 효과를 알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2008년 감세 조치로 인한 세수 효과가 이후 5년간 100조 원 발생하고 2009년 증세 조치로 이후 5년간 100조 원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할 때, 이를 기재부 방식대로 계산하면 세수효과가 0원이 된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2008년 세제 개편에 따라 2009년엔 20조 원의 감세 효과가 발생하고 2010년 이후엔 2008년과 2009년 조치를 모두 적용받아 0원의 세수효과가 발생한다. 종합하면 영구적인 세수효과 20조 원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4 1장 반짜리 자료로 '부자 증세' 주장…"착시 유도"
야당과 최 부총리는 이 같은 추계 방식에 대한 공방에 오전 오후 국감의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부자 증세'라는 주장을 펼치기에는 지나치게 허술한 자료를 기재부가 내놓은 탓이 크다.
이와 관련, 박영선 의원은 "착시를 부르는 통계를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기재부가 참으로 한심하다'며 "이 자료는 2008년 세제 개편이 잘못됐단 걸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008년 세제 개편 주도한 사람들 이 자리에 다 앉아있다"며 "반성하라"고 질타했다.
김관영 의원 또한 국감 현장에 있던 세제실장을 향해 "각 연도별로 정확하게 추계한 자료가 있어 합산 자료를 만든 것 아니냐"며 "어떤 법이 언제 어떻게 개정되어 어떤 항목에 얼마큼 영향을 미쳤다고 본 건지 계산한 자료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느닷없는 '부자 증세' 주장…"정부가 '팩트' 없이 논란만 키워"
이처럼 이날 국감장에서 벌어진 '부자 감세냐 증세냐'란 논란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많은 우려에도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적자 재정을 편성했고, 동시에 담뱃세·주민세·자동차세 인상 카드를 꺼냈다. 이로 인해 '서민 증세' 논란에 휩싸였고 일각에서 '부자 감세 철회 먼저'란 주장이 나왔다. 그러자 부자 감세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다급히 '감세 혜택을 받은 건 서민'이란 주장을 내놓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홍헌호 시민사회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17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정부 추계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세수 효과를 도출할 수 없다"며 "실효세율을 통한 계산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인세의 경우 실효세율이 2008년 20%에서 2013년 16%로 낮아진 결과 2008년 이후 5년간 33조 원가량의 감세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계산된다"며 "기재부에서 생색내는 최저한세율 인상에 따른 효과는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5000억 원가량에 불과하다"고도 설명했다.
이어 "법인세 외에 종부세 등 다른 항목에서의 감세 정책까지 포함하면 50조 원가량 부자 감세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재정 전문가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소득세 세율 철회가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고 법인세가 (2008년 세법 개정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단 정부 설명도 사실"이라며 "부자 감세 규모가 일각의 주장만큼 90~100조 원 규모는 아닐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6번의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효과를 합산한 정부 자료만으로는 "아무도 실제 세수 효과를 계산해낼 수 없다"며 "부자 증세라는 민감한 주장을 내놓으면서 상세한 '팩트'를 밝히지 않아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 예산정책처와 기재부가 전문가들과 함께 부자 감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대로는 소모적 공방만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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