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동안 국내 산림정책은 전란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복원하려는 녹화사업이나 자원화사업 등 가시적이거나 물질경제적인 1차원적인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일상에는 숲, 생태, 둘레길, 올레길, 등반, 산악이벤트, 가족캠핑, 주말농장, 전원생활, 귀농 등 산림이 주는 무형의 가치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산림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 산림복지 개념이다. 그런데 복지하면 비용 문제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산림복지는 최소비용으로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최상의 복지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도시숲을 비롯해 산림복지 서비스를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이 산림청 주도로 시작됐지만, 아직 초기단계다. 이에 따라 산림복지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참고할 산림복지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기획은 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가깝게는 일본, 멀리는 유럽의 프랑스, 스위스, 영국, 독일 등 해외 5개국과 국내 산림복지 현장 취재로 이뤄졌다. 총 7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스위스는 "도시 자체가 숲 속에 있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들이 많다. 원래 숲이었던 곳에 도시가 곁들여진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시민들에게 숲은 "삶의 일부로서 누리는 공간"으로서 마치 공기같은 '공공재'처럼 당연한 존재처럼 되어 있다. 숲을 즐기고 있는 한 시민은 "숲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숲은 늘 아끼고 함께 숨쉬는 또다른 이웃처럼 우리 삶에 녹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가는 시민조차 이런 답변을 하는 곳이라면, 스위스는 인공적인 산림정책을 배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았다. 스위스의 숲을 보면, 천혜의 조건을 갖춘 환경에서 이를 소중한 자원으로 세심하게 개발하고 관리해온 오랜 역사가 묻어났기 때문이다.
나아가 스위스는 국가적으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으로서 적극 개발하면서 보존하는 '개발형 보존'이 스위스의 산림복지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스위스는 아름다운 천혜 자연유산에 철도, 케이블카, 산악열차 등이 거미줄처럼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도 스위스관광청은 "환경 친화형 관광인프라가 스위스를 관광대국으로 만든 주역"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인터라켄의 숲속 전망대로 유명한 하더클룸의 산악열차는 일부 구간이 아예 산기슭에 터널을 만들어 땅강아지처럼 파고 올라간다. 터널이라는 게 산을 수평으로 관통하는 것도 생태계 파괴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의 나라'라는 스위스에서 산에 오르는 교통수단을 위해 산기슭을 따라 터널을 파는 개발을 한다는 게 충격적일 것이다.
전국을 촘촘히 연결한 철도는 기본이고, 해발 4000미터에 이르는 험준한 산 꼭대기까지 케이블카와 산악 철도를 운영하는 스위스의 '자연 개발'은 "돈만 있으면, 당신의 신체적인 한계는 교통수단이 책임진다"는 원칙이 관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에 맡겨진 도시숲의 생태계
하지만 전세계를 상대로 한 관광자원과 달리, 스위스의 도시숲은 격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취리히의 도시숲 '실발트'를 중심으로 한 '야생자연공원'은 면적이 무려 1200헥타르에 달한다. 취리히 도시숲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당국의 규제가 산림경영의 기준을 독립적인 기구 '산림관리위원회'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실발트'을 중심으로 한 일대의 명칭이 '야생자연공원'이라는 것에서 보듯 사실 이 숲은 도시숲이라기보다는 취리히 외곽에 있는 거대한 원시림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숲 안에는 도시숲의 기능을 위한 다양한 인공적인 조경과 시설들이 갖춰졌다. 말을 타고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을 비롯해 산책로가 무려 253킬로미터에 달한다. 스위스 환경청은 "실발트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자연 공원"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환경청에 따르면, 실발트는 지난 2009년부터 '자연탐험공원'으로 지정됐다. 자연이 무엇인지를 체감할 수 있는 공원으로서 이런 지위를 부여받는 숲은 실발트가 유일하다. 그만큼 숲의 생태계 보존이 모범적으로 이뤄지는 숲이라는 뜻이다.
놀라운 것은 지난 2000년 이후 인위적인 벌목이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간섭을 일체 받지 않고 이 숲에서는 생태계의 발생과 성장과 쇠락의 모든 과정을 자연에 맡겨두고 있다.
실발트 숲을 관리하는 취리히 야생공원재단은 지난 2009년에 설립됐다. 이 재단은 취리히 시 등 지자체와 공공기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재단의 기금은 재단운영 참여기관들의 지원과 시민들의 후원, 그리고 취리히 시가 속한 취리히 주의 주립은행이 상당한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야생자연공원재단 만다나 루즈파이커는 "취리히 야생자연공원에 대한 각계 각층의 후원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재정적 자립도가 탄탄하다"고 자랑했다.
실발트는 산림교육이 시작된 원조이기도 하다. 1986년 탄생한 실발트의 산림학교에서는 겨울철을 제외한 연중 내내 각급 학교에서 산림교육을 의뢰하는 산림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루즈파이커는 "산림학교의 학습 지향점은 자연과 함께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기쁨을 주는 것인지 체험하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실발트에는 아침부터 사냥개 같은 덩치 큰 개들을 몰고 다니며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는 사람과 숲 속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훈련이 잘 된 개들을 구호 하나로 불러 모은 빌 토머스 씨는 "이 숲처럼 도시 가까이에서 원시림에 온 듯한 착각을 주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평일인데 어떻게 이렇게 숲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을까?
'지나'라는 예쁘장한 암캐 한 마리와 여유있는 산책길에 나선 루시아 모키아 씨가 답을 해주었다. "숲이 가까이 있어도, 숲을 자주 찾아오고 싶은 마음과 여유가 없으면 어려울 것"이라면서 "숲이 얼마나 사람과 교감하는 존재인지를 체득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숲 정책이 남다르다는 것은 "스위스 공원 네트워크"라는 시스템이 잘 보여준다. 실발트를 비롯한 자연공원 19개를 함께 묶어 국가적으로 관리를 하는 것이다. 스위스 산림청의 리자 니코드는 "이 시스템이 지향하는 3대 목적은 '가장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보존하고, 점검하고 발전시킨다', '환경교육을 증진시킨다', 지속가능한 산림경영과 산림산업의 진흥을 강화한다'라고 소개했다.
스위스 공원 네트워크의 티나 뮐러는 스위스의 자연공원'을 '자연문화유산'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자연문화유산이 시민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주민의 참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고, 운영 주체에도 지역사회의 참여가 상당한 수준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와 주민이 합심해 일궈내는 산림복지
스위스는 도시숲의 모델 정도가 있는 나라가 아니다. 치유의 기능을 가진 산림복지 시설이 자연문화유산으로서 자리잡은 곳이라고 할 만하다. 예를 들어 인구 6000명의 체르마트는 알프스 산의 신비한 암석 봉우리 마테호른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마테호른 하나로 한 해에 13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관광지가 된 것이 아니다.
일대의 청정 자연을 보존하는 데 지자체와 주민이 똘똘 뭉쳐 노력을 하고 있다.1961년부터 주민투표를 통해 마을 내에서 휘발유를 사용하는 차량이 운행될 수 없도록 했다. 전기로 운영되는 소형 자동차만 허용된다. 전세계 관광객이 몰리면서 체르마트가 오염이 되어가자 지난 2002년부터 체계적인 '환경 보존' 계획이 수립되고 철저하게 실천되고 있다. 이 마을에 있는 건물들 상당수가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조달하고 있다.
융프라우로 가는 길목으로 유명한 인터라켄 역시 도시 전체가 숲과 호수가 어울어진 휴양도시로서 잘 가꿔지고 보존되어 있다. 인터라켄을 기점으로 한국인들이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는 융프라우요흐의 수천 미터 산봉우리보다, 그 주변에 펼쳐진 장대한 숲과 계곡, 하이킹 코스 등이 훨씬 '산림복지 휴양'의 개념에 어울린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은 도시 전체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자연과 인공물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도시 전체를 감싸고 도는 아레 강과 숲 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물과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도시 자체가 휴양지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연 도시'라는 감동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곳의 장미공원에는 숲 속에 촘촘하게 잔디가 박힌 넓은 잔디밭에 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맘껏 뛰어놀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손수 만든 도시락을 먹으며 자녀들이 뛰노는 모습을 한가롭게 지켜보고 있는 엘리자베스 리카리 씨는 "한국에서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곳이 많다"며 말을 건네자 놀라워 하면서 "숲은 늘 자유스럽게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 아니냐"고 의아해 했다. 호수의 도시로 유명한 루체른 역시, 거대한 루체른 호수를 중심으로 사방이 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휴양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수목장 선진국' 스위스스위스는 숲을 자연문화유산처럼 생활 속에서 누리고 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런 문화를 반영한 것을 보여주듯, 죽어서도 숲으로 돌아가겠다는 발상이 '수목장' 분야에서도 스위스를 선진국으로 만들었다.스위스의 수목장은 독일로도 수출돼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스위스 수목장은 한 개인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우엘리 자우터 씨가 개인 사업으로 시작한 수목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최대 100년을 보장하는 수목장림 관리에 대한 신뢰였다. 이에 대해 자우터 씨는 스위스 정부에게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정부가 관리하는 수목을 100년간 임대해 쓰는 방식으로 이 난관을 돌파했다.21년 전인 1993년 자우터 씨가 수목장 사업에 뛰어든 사업 초기에는 수목장림 관리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아 호응이 낮았지만, 정부가 관리를 맡게 되면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해 현재는 스위스 전역 26개 주 70여 곳의 수목장림으로 확대됐다.자우터 씨가 대표로 있는 프리트발트(평화로운 숲이라는 의미) 사는 사업 영역을 독일까지 확장해 수목장림을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알려진 것처럼 누구나 수목장 계약 시점으로 "100년 관리"를 보장받는 게 아니다. 해당 수목장림이 설립된 후부터 100년이 보장되는 것이다. 프리드발트 사의 사비네 웨버 씨는 "만일 30년이 지난 수목장림에서 어떤 나무를 지정해 수목장림을 한다면, 그 나무의 보장기간은 70년"이라고 설명했다.프리드발트 사의 수목장림 판매방식에 따르면, 어떤 집안에서 한 개의 나무를 사면 그 나무에 10번째까지 가족의 수목장을 치를 수 있다. 문제는 나중에 묻힐 가족의 경우 이 나무의 관리가 보장되는 기간은 매우 짧거나 기간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수목장 가격도 싼 편이 아니다. 기본적인 수목장 나무 구입비는 4900 스위스프랑(약 540만 원)이다. 비싼 것은 한 개에 1000만 원이 넘는다. 프리드발트 사가 운영하는 최초의 수목장림은 스위스 동북쪽 보덴호를 바라보는 마메른이라는 조그만 마을 뒷산에 있다. 그런데 수목장림이라는 것도, 그리고 수목장 나무라는 것이 특별히 거창한 모습이 아니다.그냥 2~3헥타르의 숲에 소비자가 한 나무를 사면, 그 나무 뿌리 주변에 죽은 이의 골분을 묻고 나무에 일정한 표식만 물감으로 칠해놓을 뿐이다. 인위적인 시설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국내 수목장림처럼 식재한 나무가 아니라 숲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자란 자연목이라는 점이 무게감을 더해줄 뿐이다.웨버 씨는 "수목장의 개념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정신의 실천"이라면서 "일부 여유있는 소비자들은 좀 더 멋있는 나무를 사고, 좀 더 꾸며진 수목장림을 택할 뿐"이라고 말헀다.국내에서는 2004년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장례식이 경기도 양평의 고려대 연습림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진 것을 계기로 사회적인 주목을 받고, 이후 지방자치단체나 사설업체가 운영하는 수목장림들이 생기면서 현재 50 여곳이 생겼다. 그 중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곳은 2009년 개원한 경기도 양평의 하늘숲추모원이 유일하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수목장림이 20여 곳이다. 하늘숲추모원의 경우, 가족목은 1년 사용료와 연간 관리비를 포함해 15년 기준으로 232만5000원의 비용이 든다. 산림청은 수목장림을 2017년까지 23곳(국립 5곳, 공립 18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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