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한 번 제대로 안 해보고 식량주권을 내주겠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말 이 땅에 농부가 사라지는 '농사의 종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대중 정부 당시 최장수 농림부 장관을 지낸 노교수의 경고는 매서웠다. 정부가 18일 수입 쌀에 적용할 관세율 513%를 확정지었다. 내년 1월1일로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예고하고 본격적인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애초의 관측보다 높은 수준의 관세율이라지만, 그것도 쌀 수출 당사국들과 끈질긴 협상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된다. 어쨌든 지금까지 지켜왔던 쌀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20년의 유예 끝에 목전에 다가온 셈이다.
"농업은 시장논리에 맡길 수 없다. 직접 챙기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언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중앙대 명예교수)은 "쌀 시장 개방은 결국 의지의 문제였다"고 일갈했다. "국내 시장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도, 정부는 협상 한 번 해보지 않고 식량주권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세운 '불가피한 선택'이란 논리에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개방을 이번에 유예할 경우 의무수입량을 2배 이상 늘려줘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평생을 농업경제 통상 분야에 투신해온 전직 장관은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문 어디에도 그런 조항은 없다"고 일침을 놨다.
정부가 국내 쌀 시장의 보호 조치라며 내놓은 513%의 관세율에 대해서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회의적으로 평했다. "513%를 방어하기 위해선 다른 무언가를 내줘야 하며,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FTA 등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이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얻어낸 '관세화 유예' 조건을 지켰어야 했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정부의 전면 개방 결정으로 그나마 우리 농업을 지켜왔던 '둑'이 허물어질 것을 염려했다. 이러다 '농사의 종언'이 도래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그 피해는 농민생산자보다 국민소비자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 기능도 사라질 것이다.
"정부가 앞으로 고율 관세화를 관철하는데 실패해 수입 쌀이 국내시장에 홍수처럼 밀려오고, 지금처럼 농업 및 식량문제에 대한 홀대가 계속된다면, 이 땅에 농부와 농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가능한가?"
김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정부의 관세율 발표 하루 뒤인 1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커피숍에서 박인규 프레시안협동조합 이사장과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개방 유예하면 의무수입량 2배? 협정문 어디에도 없는 내용"
프레시안 : 정부에선 쌀 관세화를 하지 않으면 의무 수입량을 현재의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정부가 내세우는 쌀 시장 전면 개방의 명분이 되고 있다. 한 마디로 이제는 전면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김성훈 : 협상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그런 얘기를 하는데,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1993년 12월15일 타결되고, 1995년 1월에 WTO(세계무역기구)가 발족했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 농업 협정문 어디에도 "유예 기간이 끝나면 자동 관세화 한다"라는 조항은 없다. WTO 회원국 중 쌀 수출 관련 당사국들과의 협상 결과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 여름 인도는 WTO 보조금 규정을 어겼음에도 회원국들이 양해한다고 협의해줌으로써 자유로워졌다. 마찬가지로, 필리핀이 2년 반이나 관세화 유예 협상 기한을 넘기면서까지 협상해 자신들 사정에 맞게 유예 조건을 얻어냈다. 정부가 당시 협정문 어디에도 없는, 근거 없는 주장(결정론)을 하면서 전면 개방을 합리화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다.
당시 '예외 없는 관세화' UR 협상 과정에서 전 품목을 시장 개방하면서 유일하계 예외를 인정받은 것이 쌀이다. 원래는 영화도 있었는데, 프랑스 총리가 "영화 산업을 개방하라는 것은 프랑스의 영혼을 팔라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아예 최종 협상 항목에서 빠졌다.
사실 당시 우리의 협상력은 미약한 편이었고, 일본이 미국과 일종의 '밀약'을 통해 우리도 일본 덕을 본 것이다. 당시 일본에게 쌀 개방의 예외를 인정해주되, 3~5년 후 완전히 개방을 하면 그 때는 국내가격과 수입가격 차이에 따른 관세율을 부과하기로 미일 간에 합의했었다. 일본은 우루과이라운드 이전에 쌀을 수입한 적이 있었으니 그런 식의 협상이 가능했으나, 우리는 그전까지는 전혀 수입한 적이 없었다. 아무튼 한국 역시 당시 일본과 함께 쌀 관세화 개방의 예외로 남았다. 관세화가 유예되고, 그 대신 1986~1988 기준 연도의 쌀 소비량의 4%를 2004년까지 10년간 단계적으로 의무 수입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최소시장개방(MMA) 방식이었다.
이후 일본은 관세화 유예 조건을 지키다가 1998년 800~1200%에 가까운 높은 관세율로 개방을 했다. 대만도 뒤늦게 가입한 이후 일본의 길(560%)을 따랐다. 남은 국가가 이제 필리핀과 한국인데, 두 나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필리핀이 관세화 유예 및 의무수입 쪽을 택한 반면, 한국은 완전 개방, 즉 관세화를 택했다.
프레시안 : 그렇게 정해진 4%의 의무 수입량이 2004년 재협상에서 8%로 두 배로 늘어났다.
김성훈 : 이 대목에서 참 쓰라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10년의 유예 기간이 끝난 뒤 진보적이라는 노무현 정부가 2004년 재협상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개인적으로 보수 못지않게 진보를 불신하는 이유가, 진보가 어떤 '주의'나 '이념', '비전'은 강해도, 그것을 실행하는 지식이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다.
2004년 협상 당시 노무현 정부는 아무런 전략 없이 쌀 의무수입량을 덜컥 4%에서 8%로 두 배 올려줬다. 또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 이 수입량의 30%를 밥쌀용으로 들여오도록 양보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1994년 타결된 모든 우루과이라운드 이행계획이 2004년에 만료되고 다시 제2의 우루과이라운드에 해당되는 DDA(도하개발의제)가 성립돼 자유무역협정 프레임이 바뀌었어야 했지만, DDA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모든 회원국들이 1993년에 타결된 이행 기준을 2004년 이후까지 계속 유지하는 이른바 '스탠드 스틸(stand still, 현상 유지)'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그런데 정부의 협상전략과 지식, 기술 등이 부재하다보니, '이번에 의무수입량을 늘리지 않으면 관세화 전면 개방을 해야 한다'는 식의 착각을 그때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는 8%로 의무수입량을 두 배 늘려준 것이다. 게다가 UR협상 이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의무수입의 기준년도를 여전히 1986-88년으로 고정했다. 그래서 말이 8%이지, 실제 당시 국내소비량의 12% 이상이나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했다. 정말 잘못된 협상이었으나, 그래도 완전 개방만은 막아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관세화'로 개방하려 해도 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전엔 쌀을 수입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관세율을 매길 근거가 없다. 그럼, 유일한 방법이 인접 국가의 관세율을 참고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중국의 수입 가격을 원용해서 513%로 정했다. 그런 근거로 513%의 관세율을 쌀 수출국들, 즉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상을 거쳐 확정해 WTO에 통고하면 된다.
현재 협상 당사국으로 2004년 당시는 회원국이 아니던 중국이 기존의 쌀 수출국들인 미국, 호주, 태국, 동남아시아 국가 등과 함께 참여할 것 같다. 이들 국가들과 관세 유예가 됐든 관세화가 됐든 일단 협상의 결과가 합의되면, WTO는 오케이 한다. 당사자국들과의 협상에 전적으로 달린 문제인 셈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주식인 쌀을 지키기 위한 이렇다 할 협상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항복을 선언 한 것이다.
"정부, 협상 한 번 안 해보고 투항…협상 의지 있긴 했나"
프레시안 : 다시 10년이 지나 재협상을 할 때가 됐다.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김성훈 : 2014년 현재 우리가 연간 의무수입량으로 들여오는 쌀이 40만9000톤이다.
국내 소비량의 8%라는 이 수치도, 기준연도가 1986~1988년이다. 지금은 국내 소비량이 훨씬 줄어들어 40만9000톤이면 전체의 15% 수준이다. 한 나라의 쌀 소비량의 15%를, 가마니로는 80kg 짜리 513만 가마니를 수입쌀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감당 못하겠으니 이 상태에서 '스탠드 스틸'하겠다고 선언했어야 한다.
그리고 먼저 협상을 했어야 했다. 쌀 수출국들과 개별적으로 협상을 해서, 예컨대 미국 대표를 불러내 "의무수입량 중의 대미 수입 쿼터(quarter)를 늘려주겠으니 2004년의 '쌀 관세화 유예조건의 현상유지'를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라도 일종의 '딜(deal)'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중국과는 WTO 체제 내에서 쌀 협상은 처음이다. 먼저 중국의 WTO 가입 당시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무조건부로 적극 지지했었음을 상기시킨 다음, 세계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지정학적으로 역사문화적으로 가장 이해가 깊은 관계임을 바탕으로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 협상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여러 개의 카드를 가지고 주고받아야 하며, 안 되면 수시로 변통해야 하는데, 아예 협상 자체를 안 한 것이 문제다.
우리 정부가 쌀 시장만은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카드는 많이 있는데, 이 정부는 과거 기라성 같은 농업협상 관료들을 포함해 누구의 자문도, 농민들의 울부짖음도 경청하지 않고 무조건 "관세화가 불가피하다"고만 한다. 그러면서 주장하는 게, 관세화를 또 미루면 의무수입량을 두 배 이상 늘려줘야 하니, 그게 더 손해가 아니냐고 농민들을 윽박지른다. 아까도 강조했지만, 그런 규칙은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문 어디에도 없다. 전적으로 협상 여하에 달렸다.
프레시안 : 정부가 그런 주장을 하면서 필리핀 사례를 근거로 내세운다. 필리핀이 '웨이버(예외적 상황에서 협정상 의무를 일시적으로 면제받는 것)'를 선택해 관세화를 미루면서 의무수입량을 두 배 가까이 늘렸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번에 전면 개방을 하지 않으면, 결국 의무수입량을 두 배로 늘려 농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김성훈 : 정부가 필리핀 사례를 그렇게 되풀이 해 써먹다가 망신을 당했다. 필리핀은 우리보다 먼저 웨이버 협상을 통해 관세화를 미뤘는데, 그걸 우리 정부는 "봐라, 필리핀도 관세화 미뤄서 의무수입량을 두 배나 늘려줬다", 그리고 "40% 관세율을 35%로 내려줬다"고 선전했다. 필리핀 사례를 우리 정부의 쌀 시장 전면 개방론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정부의 말과 그 뜻이 완전히 다르게 인용되었음이 드러났다. 필리핀 대표가 국회에서의 토론회에 참석해 우리 정부의 인용이 진실을 호도한 것이라고 까발려 버린 것이다. 필리핀은 쌀이 부족하다. WTO 쌀 수출국들의 압력 때문에 두 배 이상 늘려준 것이 아니란 얘기다. 필리핀은 해마다 태풍 등으로 최근 쌀 수입량이 연간 최소 100만 톤에서 150만 톤에 이른다. 이번에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의무수입량을 35만 톤에서 80만 톤으로 늘린 것도, 자신들이 필요한 범위 내에서 확대해준 것이다.
거기다 단서도 달았다. 향후 예전처럼 생산이 호전되어, 쌀 시장을 완전 개방을 할 때는 의무수입량을 원래의 35만 톤으로 되돌리고 관세율도 다시 40%로 되돌리기로 한 것이다. 필리핀 정부 입장에선 성공한 협상을 이끌어낸 셈이다.
최근 우리 국회 공청회에 참석한 필리핀 대표가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 필리핀의 경우 협상의 전 과정에 농민 대표가 참가했다고 밝혔다. 더구나 의무수입량을 늘린 것이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얘기해, 우리 정부의 그동안의 해석이 엉터리였음이 밝혀져 망신을 당했다. 그런데 자꾸 필리핀 사례를 정부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매년 40만9000톤을 5% 관세로 수입하고 있는 주제에, 필리핀이 40% 관세를 당분간 35%로 내려준 사례라든지 의무수입을 80만 톤으로 늘려준 사례를 밑도 끝도 없이 우리 편리할대로 인용하고 얘기할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국격이 구겨지는 현장이다.
프레시안 : 우리의 경우에도 쌀 자급률이 80%대 수준이다.
김성훈 : 그렇다. 현재 86% 수준인데, 사실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완전한 자급이 가능하다. 사실 86%대로 떨어진 것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의무수입량이 늘어나니까 정부가 쌀 생산 억제 정책을 편 결과다. 오히려 정부에서 농민들에게 돈을 주면서 다른 농사를 지으라고 장려해 왔다. 그렇지만 쌀 생산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일시적으로 생산량은 줄었지만, 농지 면적은 크게 줄지 않았다. 14%포인트 정도 늘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오히려 쌀 소비가 줄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도 정부의 잘못된 식품정책 때문이다.
"쌀 시장 전면 개방, 누구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았나?"
프레시안 : 정부에선 513%의 고율 관세를 매기면 우리 쌀 시장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성훈 : 우리는 쌀 관세율 책정에 관한 한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정상 근거가 가장 박약한 나라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전에 쌀을 수입한 적이 없기 때문에, 기준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만(약 560%)보다 더 낮은 513%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에 관세율을 산정할 때도 인접국인 중국이 수입했던 가격과 국내 도매시장 가격과의 차이를 산정 기준으로 삼았는데, 얼마든지 회원국들이 반발할 수 있다.
결국 쌀 시장 전면 개방은 의지의 문제였다. 국내 시장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협상 한 번 안 해보고 포기했다. 협상이라는 게 결렬되더라도 계속 새로운 카드를 들이대면 재개할 수 있는 것이다.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이상, 기한을 넘겼다고 패널티를 받는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 :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가 '자발적으로' 쌀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는 얘긴가?
김성훈 : 결과적으로 그렇다. WTO 사무총장도 쌀 시장 개방 문제는 쌀 수출국과 수입국, 즉 당사국끼리 합의하면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쌀 관세화와 관세율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도 그렇고, 2004년도 협상 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몇 년 전 청주시 옥산면 소로리에서 1만3000년~1만5000년 된 화석 볍씨들이 발굴됐다. 그전까지는 고양시 가와지의 4000년 된 볍씨가 가장 오래된 쌀로 알려졌는데, 그보다도 1만 년 앞선 것이다. 그러니까 1만5000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쌀 농사가 행해졌다는 얘기다. 쌀은 한민족의 피이자 살(肉)이요, 혼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1만5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구한 쌀 농업을 완전히 개방할 권리를 이 정부는 누구한테서 부여받았나? 국민과 소통을 했나, 아니면 이해 당사자인 농민으로부터 동의를 받았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로부터 동의를 받았나? 그도 아니라면, 개방에 대해선 확고한 입장이었던 부친 박정희 정부로부터 부여받았나? 박근혜 정부에선 그런 과정이 아예 생략되었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쌀 시장 개방 발표에 즈음해 떡볶이 수출로 재미를 본 어떤 기업을 예로 들었다. 연간 200만 달러를 벌었다고 했다. 쌀 시장이 완전히 개방 되더라도 농식품 수출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삼으면 된다는 얘기다. 묻고 싶다. 그 떡볶이는 어느 나라의 쌀로 만들어진 것인가? 누가 만든 것이며, 수출을 많이 하면 누가 재미를 보나?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우리 농민이 아니라 일부 대기업 식품 제조업자들뿐이다. 그리고 대규모 식품 제조업자들이 사용하는 원료의 70%가 미국을 비롯한 외국산 농산물이다. 외국 농민들이 재미를 본다.
"513% 관세율 못 지킬 것…'둑' 무너지면 대책 없다"
프레시안 : 앞으로 협상을 통해 513%의 관세율을 지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김성훈 :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그런 관세율을 주장할 근거가 미약하다. 513%를 방어하기 위해선 다른 무언가를 내줘야 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유일하게 얻어낸 '관세화 유예' 조건을 고수해야 했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관세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미국이나 중국 등 외국의 압력 때문인가?
김성훈 : 일단 통상 협상의 베테랑으로 불리던 이들이 대부분 농림부를 떠났다. 지금은 기술관료들, 협상의 초보자들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무지의 결과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국내외의 정치경제적 목적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는 경제 발전의 '희생양'이었는데, 농업을 경제 발전의 골칫덩어리, 걸림돌로 여기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 언제였던가. 모 전경련 회장이 말한 바 있다. "논밭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반도체공장이나 상업 휴양시설을 지어 돈을 벌면 된다. 쌀은 거기서 번 돈으로 수입해 사다 먹으면 된다". 그런 식의 발상이 현재도 우리나라 지배 세력들 사이에 만연한 것 같다.
"쌀 전면 개방 현실화…'농사의 종언'이 온다"
프레시안 : 어쨌든 이번 정부의 결정으로 완전 개방의 수순에 들어갔다. 우리 농업엔 어떤 영향이 있을 거라고 보나?
김성훈 : 중국 흑룡강성에 가면 과거 '북대황(北大荒)'이라고 불리던 거대한 황무지가 있었다. 남한보다 더 큰 거대한 땅이다. 몇십 년에 걸쳐 대대적인 개간 작업이 이뤄지면서, 이제는 북측의 거대한 창고라는 뜻의 '북대창(北大倉)'으로 불린다. 쌀과 콩, 옥수수가 엄청나게 생산된다. 또 이 지역은 전 농림부 장관 장덕진 씨의 애환과 자산 전부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생산된 쌀 중 남아도는 고미(古米)들이, 한 때 '찐쌀'이라며 우리나라에 수입이 됐었다. 3~4년 묵은 노래진 고미를 표백제를 뿌려 수출한 것이다. 80kg 한 가마당 2만4000원 정도에 수입됐다.
또 세계 각국에서 남아도는 싸래기, 즉 파쇄미들이 쌀가루 형태 등으로 공식, 비공식으로 수입돼 일종의 골치 덩어리였다. 상품성이 없기 때문인데, 한국의 각종 쌀 가공업자들이 헐값에 사들여 가마당 2만 원 정도로 국내에서 거래됐다. 떡볶이 만들고 막걸리 만드는 식이었다.
이런 쌀들이 수입된다면 제 아무리 513% 관세를 매겨 들여온다 해도 12~13만 원대 안팎이다. 쌀 유통업자들이 그런 쌀을 들여오는데 유혹을 누군들 받지 않겠나? 더군다나 그런 쌀은 관세율 자체가 다르다. 마찬가지로, 마늘과 냉동마늘 또는 다진 마늘은 관세 차이가 크게 나는데, 마늘로 들어올 때의 5분의1 수준이다.
결국 513%라는 관세율은, 협상에서 승인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쌀의 수입을 원천적으로 막는 항구적인 수단이 되지 못한다. 결국 둑이 허물어져 국내 쌀값과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고, 마침내 생산이 정체돼 버릴 것이다. 그 사이 우리 농민들은 쌀 농사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일단 쌀 시장이 뚫려버린다면, 농민들이 더 이상 쌀 농사를 짓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국내 쌀 생산량이 부족하게 되면, 이 513%는 오히려 모자란 쌀의 원활한 수입에 질곡이 될 수도 있다.
그 즈음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나 WTO에서 관세를 내리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말 그대로 '고소원이나 불감청이라(固所愿而不敢请)'. 바라고 바라는데 감히 청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 때 가선 결국 지금 정권이 아닌 다른 정부가 자진하여 관세를 내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제(18일) 513%의 관세율을 결정하는 국회의 당정회의 장소에 농민들이 찾아가 달걀을 던지고 고춧가루를 뿌리며 항의를 했다고 한다. 농민들이 회의 장소에 쳐들어가, "이렇게 해놓고도 밥이 넘어가느냐"라고 절규한 모습이 뉴스에 나오더라. "이 판국에 밥이 넘어가느냐?" 가슴을 울리는 말이었다. 농민들의 그 행위 자체에 동의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케이블채널 티비엔(TVN)에서 <농부가 사라졌다>라는 가상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6년 후인 2020년의 어느 시점, 농부들이 일시에 사라졌다는 가정 하에 만든 가상 다큐이다. 저도 어쩌다 보니 카메오로 출연됐는데, 제가 8년 전 평택의 쌀 농민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 내용을 TVN PD가 저에게 와서 얘기하더라. 사실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당시 제가 이런 강연을 했다고 한다.
"농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숭례문이 불타 없어지고 난 뒤에 그 소중함을 알게 된 것처럼, 농업이 망해봐야, 농부가 사라져봐야 농업이 중요한 것을 아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바로 국민 농업시대이다."
GMO 식품이 몰려온다…먹을거리 안전 외면한 '몬산토의 장학생'들
프레시안 : 정부와 국내에선 경각심이 덜한 편이지만 무분별하게 수입되는 유전자조작(GMO) 식품 역시 우리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김성훈 : 심각한 문제다. 유전자 조작 콩과 옥수수, 카놀라 등이 매년 794만 톤 씩 국내에 들어온다. 이 중 식용이 약 185만 톤이다. 우리가 세계 2위의 GMO 농산물 수입국이다. 가장 많이 수입하는 곳이 일본인데, 일본은 식용이 아니라 대부분 사료용이다. EU, 러시아 등은 아예 GMO 수입이 '제로(zero)'다.
우리 상황은 이런데, 세계적으로는 몬산토(미국에 기지를 둔 다국적 농업기업이자 세계 최대의 GMO·제초제 생산 업체-편집자)와 여러 국가들의 'GMO 국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EU의 완강한 식용 GMO 반대 입장에 더해, 최근 독일 정부는 사료용으로도 GMO를 사용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경우 아예 입법으로 GMO 식품을 생산도, 판매도, 수입도 못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도 벌써 몇 차례 트집을 잡아 GMO 옥수수와 콩 수입을 반려했다. 일본도 미국 오레곤주 GMO 밀 사건 때 수입을 거부했다.
GMO의 위해성은 이미 선진 각국의 각종 연구 결과 속속 증명이 되고 있다. 재작년에 프랑스 파리대학의 셀라리니 교수팀이 2년 동안, 즉 사람으로 치면 약 10년 정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실험용 쥐 2000마리에 GMO 콩과 옥수수를 먹였다. 실험 결과 유방암 등 각종 종양이 생기고, 위와 장이 비틀어져 죽었다. 죽은 쥐의 70%가 암컷이었다. 동물실험 결과로 볼 때 여성이 훨씬 GMO에 취약한 것이다. 특히 2세들의 경우 자폐증과 불임이 높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GMO 식품 회사들이 GMO 종자들을 모두 불임이 되도록 만들어 놓는다. 그래야 해마다 종자를 계속 새로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비자가 GMO 식품, 예를 들어 콩이나 콩나물, 두부, 두유 등을 구입하면서도 이것이 유전자조작 식품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조차 부정되고 있는 기업 우위 현실이다. 오늘(19일) 경실련 등 25개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의 모임인 'MOP7 한국시민네트워크'가 GMO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자의 86.4%가 식품에 GMO 원료 사용 여부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몬산토사는 물론, 연간 7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식품제조회사들은 절대 GMO 표시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비용이 높아져서 소비자에게 오히려 손해라는 논리로 정부와 정치권, 언론계, 학계에 로비를 한다. 포장지에 GMO 원료 사용 여부를 표시한다고 무슨 단가가 높아지나? 그들도 방어 논리에 궁하긴 되게 궁해진 모양이다.
결국 이걸 강제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과 국회 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권이 전반적으로 의지도, 관심도 없다. 국회의원들 중엔 그나마 홍종학, 남윤인순, 김제남 등 NGO 출신 의원들이 GMO 표시제를 하자고 입법안을 냈는데, 야당 지도부조차 관심이 없다. 그런데 여당은 오죽하겠나.
학자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 '몬산토의 장학생'이 되었나. 국내 바이오 또는 영양학자나 농업관료들 중 몬산토의 장학금 주사를 맞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인지 궁금하다. 최소한 수입 가공식품들이야말로 표시제가 있었으면 좋겠다. GMO 식품이 유해하다고 EU, 러시아, 중국, 심지어 아프리카 각 곳에서 다 알고 거부하고, 얼마 전엔 터키도 우리의 수출 라면에 GMO 성분이 포함됐다고 수입을 거절한 일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어떤 연구기관이나 정부기관도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동물 생체실험을 해본 적이 없이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데도, 귀를 닫는다. 그리고 무조건 안전하단다. 표시제도는 식약처 자의로는 절대 못한다. 그나마 대한민국의 똑똑한 여성 소비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각성하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무너지는 농사, 무너지는 생명‥'좀비 공화국'에서 탈출하려면
프레시안 : 2008년의 광우병 소고기, 그리고 최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생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고 보는데, 그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줄인 농업, 쌀 문제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과거보다 줄어든 것 같다.
김성훈 : 질문을 던지고 싶다. 만약 지금처럼 GMO 식품이 마구잡이로 수입돼 우리 밥상을 완전히 장악한다면, 우리나라 국민 건강은 어떻게 될까? 이건 가상이 아니라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또 정부가 고율 관세율을 유지하는데 실패해 완전히 쌀 시장이 개방되고, 지금처럼 농업에 대한 폄훼와 무시행위가 계속된다면, 이 땅에 농부와 농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가능한가? 그러면 국민들의 식생활 안전과 식량 주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쌀농업, 논농사가 보이지 않게 수행해 오던 홍수 예방과 저수지 기능 등, 환경 생태계 보전 기능과 식품안전, 식량주권, 전통문화 및 경관 유지, 그리고 지역사회의 균형적인 발전 등 다원적인 공익 기능은 어쩔 것인가?
세상이 어두워지면 좀비(또는 강시)들이 판을 친다. 좀비는 영혼이 없다. 그리고 피(생명)를 생산하는 심장이 멈춰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독설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땅의 우리 사회는 좀비들의 세상과 얼마나 다른가? 영혼이 없는 정치인, 영혼이 없는 관료와 기업인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지 않나? 그들에게 영혼이 없으니 따뜻한 심장이 있을 리 없다.
좀비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좀비나 강시(僵屍)는 상대방의 호흡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피를 빨아 먹는다. 그렇다면 좀비가 나타났을 때 숨을 쉬지 않고 납작 엎드리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맞서 세게 가격을 가하며 싸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런다고 좀비는 줄지 않는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좀비가 버틸 수 없도록 햇빛을, 광명(光明)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과연 셋 중에 어느 방법이 현명할까? 어떤 방법이 '좀비 공화국'에서 탈출하는 방법일까?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치가 광명의 세계로 나와야 한다. 햇볕을 쬐어야 한다.
이제 정치권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의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제1장 '부임'조에 이르기를, "가로 막혀 고통받는 이들을 먼저 만나 경청하고 그들의 고통을 해소"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음에 주목했으면 싶다. 세월호 참사 해법도 마찬가지이다.
'통색의(通塞議)'에서는 막힌 곳을 뚫어 소통을 한 뒤에야 인재를 제대로 고른다고 했다. 출신지역, 가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을 버리면, 인재들의 9할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100% 국민대통합'을 주장했다. 그 말에 이제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 제발 막힌 것부터 뚫어 제대로 된 소통부터 하길 바란다. 난세를 맞아 삼가 '광명의 세계'를 대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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