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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치수' 전화에 우는 그들, 박원순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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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치수' 전화에 우는 그들, 박원순은 왜?

[박점규의 동행]<38> 다산콜센터 상담사들, 생활임금 도입서 제외된 까닭은?

추석을 앞둔 9월 2일, 서울시는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내년부터 '생활임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평균 생활비, 주거비, 사교육비 등을 고려해 내년 법정최저임금인 5580원보다 1002원 많은 6582원을 생활임금으로 정했습니다.

서울시는 올해 조례를 제정해 내년부터 서울시와 투자출연기관에 직접 고용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적용한다고 밝혔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비정규직 600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데 이어 생활임금 도입에도 앞장선다는 소식에 노동자들의 관심이 높았습니다.

2009년부터 6년째 120 다산콜센터에서 일하는 김단희(39) 상담사는 서울시의 발표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다산콜센터는 서울시 행정업무를 안내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서울시 소속도, 서울시 투자기관도 출연기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365일 24시간 상담을 하는 400여 명의 상담사들은 서울시의 위탁을 받은 3개 민간위탁업체 소속입니다.

노원구는 9월부터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도 생활임금을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용역·민간위탁업체 소속 노동자를 생활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간접고용 노동자를 빼니까 적용 대상은 고작 120명 수준입니다.

서울시 생활임금 도입? 다산콜센터 직원들에겐 '남의 일'

처음으로 대체휴일이 적용되면서 평소보다 길었던 추석 연휴, 서울시는 환자들을 위해 연휴기간 동안 응급과 당직의료기관 2116곳과 휴일지킴이약국 3751곳을 지정해 운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시의 발표 때문에 김단희 상담사와 동료들은 추석 연휴 동안 병원과 약국을 찾는 서울시민들의 수많은 전화를 받아 안내했습니다.

서울시는 고향에 갔다가 늦은 밤 서울에 도착하는 시민들을 위해 지하철과 버스를 새벽 2시까지 운행하는 '추석연휴 특별교통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서울시는 120번만 누르면 친절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서울시의 홍보 때문에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은 긴 추석 연휴 동안 시민들의 수많은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연휴에 성질 급한 사람들의 짜증과 술 취한 시민들의 욕설을 말 한마디 못하고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특히 저녁 야간 상담사들은 명절 연휴가 되어도 무조건 스케줄에 따라 근무를 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명절에 쉬는 것은 남의 나라 얘기입니다. 추석연휴 때 근무했지만 다른 요일에 쉬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수당으로 돈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정책 발표는 서울시, 상담은 하청노동자

김단희 상담사는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보건소, 수도, 교통 등 서울시 공공서비스의 민원·접수·처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한 구청에서 보통 3만6000개의 업무를 합니다. 김단희 상담사가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업무가 수십만 가지입니다. 서울시 행정 전반에 걸쳐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면 업무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다산콜센터는 2010년 영어 중국어 등 5개 외국어 상담서비스, 청각장애인 화상 수화서비스를 시작했고, 2012년부터는 SNS상담서비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업무는 서울시의 '입'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시민에게 친절하고 정확하게 안내해 서울시를 빛내기 때문입니다. 그의 업무는 서울시의 '귀'이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불편을 가장 먼저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서울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을 괴롭히는 '나쁜' 시민들이 있습니다. 만취한 상태에서 전화를 해서 택시기사를 잡아달라거나 버스가 언제 오냐는 전화를 걸며 욕설을 퍼붓습니다. 여자 친구 선물을 고른다면서 속옷 치수를 물어보거나 자신이 공무원인데 운전 중이라면서 병원을 찾아달라는 진상 시민들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진상 시민들의 성희롱과 욕설

서울시 다산콜센터는 하루 평균 3만5100통의 전화를 받아 서울시민의 생활 길잡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선전합니다. 콜센터 출범 전 41.6점이던 만족도가 만점에 가까운 95.7점으로 치솟았다고 자랑합니다. 현재 다산콜센터 상담사 1인당 하루 평균 105.1건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사들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상담사들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아도 편안하게 들어주고 친절하고 정확하게 안내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위탁업체의 관심은 오직 민원 전화의 처리 건수인 '콜수'입니다.

민간위탁업체는 시간당 평균 콜수 15건을 기준으로 주간에는 16건, 야간 18건 이상 받으면 가산점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불만이 제기되면 점수가 깎여 인사고과나 성과급에 불이익을 받고 부서 강제 배치나 벌칙을 받기도 합니다.

위탁업체의 평가리스트에는 미소 띤 음성이나 마무리 멘트도 있지만 핵심은 '콜수'입니다. 얼마나 많은 전화를 받아 처리했느냐는 겁니다. 상담사들은 서울시에 대해 물어보거나 서울시정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경청하지 말고 중국집 전화번호 알려주듯 상담을 빨리 끝내야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개그콘서트 '닭치고'의 '후다닭' 양호선생님처럼 하라는 겁니다.

"예전에 어떤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는데, 이렇게 한 번에 연결되어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하나 더 물어봐도 되냐고 해서 된다고 했더니 너무너무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하는데 위탁업체에서는 '콜수'로 상담사를 평가하니까 적당히 알려주고 다른 전화를 받게 되는 거죠."

김단희 상담사는 서울시의 핵심 업무를 민간위탁 업체가 대행하고 있는 한 '더 많은 콜수'를 위해 뛰어다니는 '후다닭' 상담선생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사협상이 결렬돼 쟁의행위에 돌입한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은 지금 '적정콜 받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400여 명의 상담사 중에서 노조에 가입한 300여 명의 조합원들이 '후다닭 상담'이 아니라 편안하고 친절한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김단희 상담사와 조합원들은 평가도 나쁘고 월급도 줄어들지만 서울시와 시민을 위해 행복한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콜'을 위해 뛰어다니는 '후다닭' 상담 선생님

지난 2월 5일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다산콜센터의 상담업무는 서울시의 상시․지속 업무로서 서울시가 실질적인 사용자임에도 민간위탁이라는 간접고용 방식을 취함으로써 다산콜센터 상담사의 인권침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직접고용 등 고용구조를 개선해 상담사의 노동인권을 보장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서울시 인권위는 "민간위탁은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업체 간 재위탁을 위한 경쟁 과열을 유발한다"며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 겪는 인권침해의 근본 원인이 민간위탁에 있기 때문에 서울시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서울시 인권위는 "시정 및 구정과 관계없는 문의나 상담은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악성 민원인은 1회 경고 후 종결하도록 규정을 마련해 상담사의 방어권을 보장해주는 등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인한 다산콜센터 상담사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고,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는 노조사무실에서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복지는?"이라는 스티커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업무환경 개선을 위한 복지방안 중 '악성민원이라 판단될 시 상담사들이 직접 전화를 끊을 권리'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 인권위 권고 7개월이 지나도록 직접고용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고, 여전히 상담사들은 '더 많은 콜수'를 강요당하고 있으며, 민원인들의 욕설과 성희롱을 듣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한 일은 악성 민원인 몇 명을 고소한 것이 전부입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9월 초부터 두 차례 4시간 경고파업을 진행했고, 앞으로 파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입니다.

ⓒ박점규

서울시 인권위도 다산콜센터 직접고용 권고

2012년 12월 작성된 <서울시 '좋은 일자리' 만들기 기본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10월 31일 현재 서울시 민간위탁은 382건이고 1만3085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민간위탁 종사자 중에서 정규직은 9958명(76.1%), 비정규직은 3127명(23.9%)입니다.

이들 중 비정규직 비율이 75% 이상이 57개, 50% 이상이 99개(25.9%)였습니다. 수탁업체 선정 방식별로 비정규직 사용 비중을 보면 수의계약이 48.2%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서울시의 민간위탁은 시설 위탁을 중심으로 65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매년 15~30여건의 새로운 민간위탁이 이루어졌고, 2009년 한해에만 44건이 추가되는 등 382건으로 급증하게 됐습니다. 업무의 성격과 무관하게 마구잡이 민간위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조사되지 않았지만 다산콜센터의 예에서 보듯이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금까지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점규
9월 12일 서울 신설동 다산콜센터 1층 로비에서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2주년 결성식이 열렸습니다. 노조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이 기념식이 끝나자 떡과 과일을 들고 2~4층 사무실로 종종걸음으로 갑니다.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 '닭장'처럼 도서관보다 좁은 자리에 빽빽하게 앉아 헤드폰을 꽂고 열심히 서울 시정을 설명합니다. 중앙에는 달걀을 낳은 숫자를 표시하는 것처럼 처리한 콜수와 기다리는 콜수를 표시하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광판이 '후다닭' 상담을 하라고 재촉하는 듯합니다.

서울시청 직원들이 모두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휴일, 주말반인 김단희 상담사는 '행정 전문 상담사'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서울시민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민원과 불만을 친절하게 처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들어선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1만3000명이 넘는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박원순 시장에게 다산콜센터 상담사를 직접 고용하라고 권고한 지도 7개월이 넘었습니다.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은 전국적으로 확산된 간접고용 민간위탁의 물길을 되돌리는 데 대단히 중요한 교두보입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박원순 노동정책의 진정성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친절한 원순 씨,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 서울시를 '후다닭' 알리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정확하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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