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이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40일째 단식 농성 중인 고(故)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20일 청와대에 면담 신청서를 접수했다. 청와대로 가는 길을 막은 사복 경찰들과 한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어렵게 접수한 면담 신청서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하루 만에 거부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확연히 대조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중 수차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유가족들은 이런 교황의 모습에 위안을 얻었고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로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황이 떠나고 나니 유가족과 국민을 위로해 줄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교황이 방한 중에 했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인데, 박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을 외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었던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교황의 행보가 바로 '국민대통합'"이라며 "대통령은 이런 행보를 통해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선 이후 인수위원회 과정에서 이를 다 뒤집어버렸다"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됐고, 정권 차원에서 이를 치유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권 차원에서 힘들다면 야당이라도 사회의 치유와 통합에 나서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잇따라 패배하며 정국 주도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야당의 잇따른 패배에 대해 이 교수는 "야당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서 '서부활극'을 벌이지 않았나"라며 "차려 준 밥상도 걷어찬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와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보나 보수 같은 이념 논쟁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이 진보만 외쳐서는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평가다. 그는 그런 국민적 열망으로 이른바 '안철수 현상'도 나왔고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공약도 나왔지만, 지금은 안철수의 지도력도, 박근혜에 대한 기대도 끝나버린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럼 국민들의 열망을 현실정치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제 도입 등 제도 개혁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는 가운데 이 교수는 국회의원 선거에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받고 있는 중앙당의 공천권도 없애고 국민들의 의사도 더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박근혜, 대중을 피하고 있다
프레시안 :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교황 방문 일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상돈 : 우선 박근혜 정부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교황께서 방한 기간 동안 박근혜 정부의 아픈 부분을 많이 언급했고 실제 수행한 일정도 그런 부분이 많았다. 특히 교황이 쌍용차 노조, 밀양 송전탑 대책위 분들을 만나고 간 것들이 대통령한테는 굉장히 아프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선 이후 인수위원회 과정에서 이를 다 뒤집어버렸다. 후보 당시에는 본인이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대통령 역할은 교황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본다. 교황의 행보가 바로 '국민대통합'이다. 대통령은 이런 행보를 통해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교황과 같이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도 있고.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은 대중을 기피하고 있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교황이 외국사람이라면서 교황 방문과 만남의 의미를 폄하하려는 분위기도 있는데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분열됐을까 싶다. 교황의 메시지에도 한국의 분열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분열과 갈등이 굉장히 심화됐고, 정권 차원에서 이를 치유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씁쓸한 상황이다.
프레시안 : 교황이 보여준 리더십이 소통하고 공감하고 통합시키는 건데, 40여일 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이럴 때 대통령이 나서서 유가족을 어루만져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상돈 : 박 대통령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에게 그런 측면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지.
대통령이 필요 이상의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부터 시작해서 현재 세월호 특별법도 그렇고, 대통령으로서의 대범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경우는 각 소속기관에서만 책임 있다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주지 않았나?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세월호 침몰 관련 진상규명 역시 마찬가지다. 본인에게 정치적인 피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이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나올 수 있나 싶다.
물론 정부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뼈아픈 부분이 있다. 현장대응능력의 부재, 지휘부 공백 등 어떻게 이렇게 무능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는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나? 특별법으로 조사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특별히 더 나올까 싶은데, 이를 기피하니까 뭔가 있는데 숨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만 사고 있지 않은가?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은 혁신을 내세워서 당선됐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기도 했고. 그랬는데 지금의 행보와 2012년 대선에 임할 때의 자세가 너무 다르다.
이상돈 : 지금 섣불리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대선 본선이 박 대통령에게 순탄치 않았다. NLL 공방으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기도 했지만. 대선 본선을 치르면서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 박 대통령이 일관되게 가져왔던 정책적 방향이 흐트러졌다고 본다. 대통령 취임 후에 김용준 인수위원장, 윤창중 대변인 임명하는 것을 통해 더 이런 경향이 확실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았나? 후보 시절에만 해도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인수위 과정에서 이 공약들이 다 파기됐다.
프레시안 : 왜 그렇게 된 것인가?
프레시안 : 경제부문에서도 후보 때의 공약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7.30 재보선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투자활성화를 통해 민생 챙기겠다고 하는데, 후보 당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와는 딴판인 것 같다.
이상돈 : 전혀 다른 이야기다. 대통령 입에서 어떻게 카지노와 케이블카 설치가 오르내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정도의 사안은 지방자치단체와 이를 소관하는 중앙부처와의 문제지. 세계에 찾아봐라. 대통령이 카지노와 케이블카 설치하자는 국가가 어디 있나. 이런 문제를 대통령이 결론 내고 지시하는 것 자체가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 품위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고.
프레시안 : 대통령이 현재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철학이 있느냐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이상돈 : 박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 당내 경선에 나왔을 때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는 이른바 '줄푸세' 공약을 내세웠다. 이 공약도 비난만 할 것은 아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과잉규제 풀어야 할 필요 있고, 세금도 과도한 것은 낮출 필요 있다. 또 줄푸세를 한다고 해서 경제민주화 못하는 것 아니다.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경제 철학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데 있다. 창조경제도 허공에 떴고. 오죽하면 누가 농담 삼아 창조경제의 정체가 카지노라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나.
총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못 몰면 내려오면 되는데 대통령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대통령은 어떻게든 끝까지 배를 몰고 가야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여기에 대한 준비가 잘되지 않은 것 같다.
인사문제의 경우도 적어도 후보군이 3배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럼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것 아닌가? 대통령은 홀로 모든 국가 사안을 다루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큰 방향을 이끌어 가고 나머지는 장관들이 해결하는 거다. 대통령은 오히려 국가의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고 부처 간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한 자리다.
프레시안 : 교황이 오면서 다시 박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이 세월호 문제도 풀지 않고 나홀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나?
이상돈 : 당분간 그렇게 갈 것으로 본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단독 행동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세월호 진상조사위, 강제조사권을 갖는 것이 중요
프레시안 :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다. 하지만 현재 법안은 계속 표류 중이다. 특별법의 쟁점 중 하나로 조사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문제가 있는데, 법학자로서 소견은 어떤가?
이상돈 : 조사위원회가 기소권을 행사해야 하고 특검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좀 동의하기 어렵다. 조사위의 기소권 행사는 사리에 안 맞는다. 특검도 지금 이 단계에서 정말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특검은 범죄 의혹이 있어야 하지 않나? 물론 현장에서 임무를 게을리했고 이후 사고 수습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지만, 이것이 검찰에 기소할만한 '범죄'라고 보기 힘들다.
유족들이 원하는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조사위원회가 강제조사권, 출두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조사위가 강제적으로 증인을 출두시키고 증거에 관해서도 수집할 수 있는 권리인데, 수사권보다는 강제조사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여당과 맨 처음 합의한 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프레시안 : 정부는 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이 형사사법체계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돈 :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정부 속내는 조사하기 싫다는 것 아니겠나.
프레시안 : 유족들은 좀 더 오랜 기간 동안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상태에서 유족들이 참여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돈 : 불신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강제성을 갖고 있는 조사위가 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또 유족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조사위 위원장을 누가 맡을지, 물적 예산과 인력이 얼마나 투입될지도 중요하다. 박영선 대표가 타결한 합의안에 명분보다는 실질적인 것 위주로 이런 것들을 보완하는 방안은 어떨까 싶다. 정부나 유족이나 실질적인 것보다는 명분에 너무 얽매여 있는 것 같다.
물론 유족은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니까 힘든 측면이 있다. 유족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해한다. 다만 이를 그대로 명분으로 가져와 일을 추진하면 오히려 여권에 거부할 명분을 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갈 가능성도 농후하지 않나?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보·보수 이념 대결이 아닌 '개혁'
프레시안 : 세월호 특별법 문제부터 시작해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는 국정운영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지난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이상돈 : 그렇다. 특히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한 것이 크다.
프레시안 : 세월호 문제가 넉 달 이상 중요한 화두였고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져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는데도 야당이 참패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이상돈 : 야당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자멸했다. 일례로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서 '서부활극'을 벌이지 않았나. 야당이 차려 준 밥상도 걷어찬 것이다. 선거 전에는 야당이 8대 7정도로 승리할 수 있다는 예상도 있지 않았나?
프레시안 : 야당의 무능과 지도부의 부재는 끊임없이 지적되는 문제다. 그런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상돈 : 지난 2012년 4.11총선 때 초선의원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왔는데 여야 모두 초선의원 농사를 잘못 지은 것 같다. 우선 여당 쪽에는 앞으로 정치 쪽에서 계속 입지를 다져 나갈만한 초선의원이 없다. 야당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만 너무 많이 초선의원이 됐다. 야당, 특히 친노세력이 너무 자신하고 있던 것 같다. 2010년 지방선거 승리 이후 친노 인사들이 대거 현역 무대로 돌아오면서. 이후 자신들과 통합진보당이 연대해서 총선, 대선 다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오만이었던 것 같다.
새누리당의 경우 당내에 시민·학생운동 출신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야당에는 전문가 집단이 부족하니까 각계의 전문가들을 보충하면서 국민들에게 자신들도 집권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우리 국민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진보·보수 등 이념 문제가 아니라 개혁이라고 본다. 진보라는 패러다임에 묶여 있으면 안 된다. 사회 곳곳이 무능하고 부패한 세력들로 가득하지 않나? 거대한 관료주의, 재정파탄, 검찰, 공공노조 등등.
박 대통령이 이런 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 개혁을 기대했는데 이제는 기대할 수 없게 돼버렸다. 대선 본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고 기다려보자는 것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고, 혁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세월호였는데 그마저도 별다른 움직임 없이 끝나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 동안 공황상태 아니었나. 오죽하면 안대희 전 대법관까지 나섰겠는가.
프레시안 : 앞으로 20개월 동안 선거가 없다. 여당의 일방통행식 정치가 계속될까?
이상돈 : 그럴 것 같은데 뜻대로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지금보다 훨씬 의석이 많았는데 얼마나 시끄러웠나. 여권 입장에서 보면 그때보다 지금이 취약한 상황이다. 또 국회 선진화법도 있기 때문에 여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프레시안 : 여당은 어쨌든 이명박, 박근혜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반면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 이후 뚜렷한 구심점이 없는 것 같다.
이상돈 : 야당 내부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여당은 개개인이 의견을 크게 내지 않는다. 결정하면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고. 그런데 야당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다. 구성원에서 비롯되는 여당과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국민의 변화 열망,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프레시안 :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개혁이라고 했다. 실제로 2008년 광우병 파동, 올해 세월호 참사 등을 통해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상돈 : 그렇다. 그런 국민적 열망으로 이른바 '안철수 현상'도 나온 것 아닌가. 또 그 에너지로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안철수의 지도력도, 박근혜에 대한 기대도 어느샌가 끝나버렸다. 국민들의 열망을 안철수, 박근혜가 담보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프레시안 : 그래서 일부에서는 정치제도의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 결선투표제, 비례대표제 등을 도입해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상돈 : 제도 개혁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비례대표제의 경우 진보 쪽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건 사실 진보 정당이 의석을 획득하겠다는 의도라고 봐야 한다. 지역구 의원 2명에 비례의원 4~5석 얻는 정당이 존립할 수 있나. 또 비례대표 늘리면 우익정당도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1차대전 이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야 정권 심판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독일식의 정당 비례명부제는?
이상돈 : 정당에서 비례대표 잘 뽑고 있나? 비례의원 다 불러서 당신이 왜 됐는지 청문회 해보면 그거 답할 수 있겠나? 그것보다는 수도권이 인구에 비해 선출되는 국회의원 수가 적은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다. 동시에 인구가 적은데 과도하게 대표돼 있는 호남과 경북지역 의석도 줄여야 한다.
프레시안 :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이상돈 : 대통령선거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도 필요하다. 각 정당의 내부 경선이 굉장히 문제가 많다. 그 경선을 1차 투표 식으로 해서 선관위가 담당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결선투표를 하는데, 시장이나 주의회 선거를 하면 각 당에서 복수후보가 나온다. 이들을 놓고 1차 투표를 한 뒤 이 중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2명을 최종 후보로 올리고 결선투표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게 가장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중앙당의 공천권이 없어지기 때문에 중앙당을 없애고 원내대표만 있으면 된다.
투표를 2번 하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 양태를 봤을 때 오히려 선거 두 번 하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들어갈 수 있다. 공천을 놓고 거대 정당들이 부정부패 저지르는 것에 비하면, 세금으로 2차 투표 비용을 대는 것이 사회 전체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정당 내부 경선 방식도 도입하지만, 이것도 얼마든지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 경선의 경우엔 전화번호 100개만 확보하면 된다. 조사 기관이 부정 저지르면 얼마든지 결과 바꾸는 것 가능하다. 또 직접 투표를 통한 경선을 한다고 해도 국민경선을 하게 되면 일반 당원뿐만 아니라 선거인단으로 신청만 하면 누구든 투표할 수 있지 않나? 열혈 투표자를 누가 많이 동원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내부 경선은 부정한 방법이 동원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어떻게 보면 공천보다 더 나쁘다. 하다못해 공천은 공천위원회가 도덕성 등등을 기준으로 아예 기준이 안 되는 후보는 걸러버리기라도 하지 않나.
프레시안 : 통합의 정치 이야기가 요즘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나 남경필 경기지시가 야당과 함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이상돈 : 여야가 함께 잘 운영한다면 긍정적인 조치라고 보여진다. 이념 따라 정치하는 것은 아니니까. 고무적인 행동이라고 본다. 사실 지난 대선 때 여야 공약의 90%가 같았다. 이런 경우가 역대 어느 대선에서 있었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담아낸 결과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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