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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다니면 결혼도 못 한다"는데…

[김윤태 칼럼] 노동시장 이중화와 사회의 분열

최근 한국 노동시장의 임금 격차가 심각하게 커지고 있다. 1980년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100대 80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거의 100대 60 수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대기업의 후생복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을 감안하면, 거의 100대 5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니 10% 수준에 불과한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대기업 취업의 관문인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사교육 경쟁도 치열해졌다. 

내가 아는 중소기업 사장은 “아무리 노력해도 대기업의 50% 수준을 맞추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다른 중소기업 임원은 “직원을 잘 가르쳐 놓으면 곧 바로 대기업으로 가버린다”는 볼멘소리도 터트린다. 중소기업은 상대적 임금과 고용 안정이 낮아 기피 대상이 되었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결혼을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지만, 계약기간도 다르고, 옷도 다르고, 밥도 다른 곳에서 먹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는 두 개의 집단으로 분열되고 있다. 

이중화의 정치적 결과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 시절 ‘양극화’라는 용어가 유행어가 되었다. 양극화라는 개념은 주로 소득 불평등의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양극화는 고임금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과 저임금 서비스 직업이 양산되는 반면에 중간소득 직업이 창출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이중화’는 정치적 차원을 강조한다. 서로 다른 고용 조건을 가진 노동자들이 상이한 정치적 태도를 표현한다. 이중화는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선호를 반영한 정치적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정규직의 고임금과 고용이 보장되는 대신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유지된다. 정규직이 주축이 되는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이 배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덴마크 사회학자 패트릭 에머네거는 <이중화의 시대>라는 책에서 이중화의 개념을 이중노동시장 이론과 내부자-외부자 이론을 활용해 설명한다. 이중노동시장 이론은 근로 조건, 임금 수준, 고용 안정성과 승진 가능성이 보장된 1차 노동시장과 그렇지 못한 2차 노동시장의 존재를 가정한다. 내부자-외부자 이론은 1차 노동시장에 속한 ‘내부자’와 2차 노동시장에 속한 ‘외부자’ 및 사용자 사이의 전략적 선택에 따른 결과를 강조한다. 주로 정규직 노동자인 내부자는 외부자의 고용 안정성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내부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외부자를 경기 침체기의 방패로 간주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동일한 노동계급에서도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에 실망한 비정규직은 투표하지 않거나 극좌 또는 극우 정당에 투표하기도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비극

1960년대 이후 오랫동안 한국 노동자는 일본 노동자처럼 한 기업에 평생고용으로 일했다. 남성 1인 생계부양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발전주의 복지국가에서 남성 생계부양자의 고용 안정성이 중시되었다. 반면 국가 복지는 미약했고, 여성에게 돌봄의 책임이 전적으로 떠넘겨졌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핵심 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 노동자는 심각한 고용 불안과 일자리의 질 악화에 시달렸다.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했다.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무 연수와 평균 임금은 점점 격차가 커졌다.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들은 풍부한 기업 복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보험이 비정규직에게 가입 문턱이 높아 핵심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종신고용 시대에 설계된 한국의 연공급 임금체계는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격차를 확대함으로써 이중화 현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연공급 임금체계 하에서는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근로자는 처음부터 계약 기간이 정해지므로 근속 연수가 짧아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는 <한국 고용체제론>에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고용체제의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노동시장 분절도 심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상여금과 수당의 적용에도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본급 비중이 낮은 대신 각종 상여금과 수당의 비중이 높은 임금체계에서 소득 불평등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능력주의 임금체계가 부분적으로 도입되면서 성과급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과 복지 수준의 커다란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2013년 정부 통계를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 근로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며, 비정규직 근로자의 절반은 시간당 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의 임금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이다. 정규직 근로자의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가입률은 각각 97%, 84%에 달하지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가입률은 각각 46%, 37%에 불과하다. 또한 대부분의 정규직 근로자는 퇴직금과 상여금의 적용을 받지만, 비정규직의 퇴직금과 상여금 적용률은 각각 31%, 38%에 불과하다. 

정부가 사회적 분열을 막아야

이중화의 심화는 시장 환경의 변화와 기술의 변화뿐 아니라 정부가 도입한 정책이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난 수년간 다양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이중화가 세계화와 탈산업화라는 구조적 압력만이 아니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결과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고용구조의 변화 과정은 고용 계약의 탈규제와 유연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간제, 계약제, 시간제 고용 등 비정규직 고용이 증가하면서 저임금 일자리가 양산되었다. 주로 여성, 청년 등 사회적 약자가 비정규직 고용으로 흡수되면서 저임금 근로자가 되었다. 이와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사회적 분열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통합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소가 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이중화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면, 역설적으로 정책의 변화가 이중화의 심화를 줄이거나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여성을 위한 보편적 무상 보육서비스가 제공되면서 남녀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축소되고 불평등이 완화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에 대한 적극적, 소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임금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중화로 인한 사회 분열의 가속화를 막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 최근 정부가 ‘일자리 공시제’를 추진하면서 ‘고용율 70%’라는 숫자의 허상만 쫓아 급증하는 노동시장 불평등을 외면한다면 심각한 사회적 분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중사회’의 등장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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