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병장 사건 윤 일병 사건으로 심란하다 보니 근 40년 전 마주쳤던 한 사람이 생각난다.
X사단 의무대에서 서O삼은 내 넉 달 위 고참이었는데, 나이는 몇 살 아래였다. 석사까지 마치고 늦게 군대를 가니 왕고참 중에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는 묘하게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공고 졸업하고 직장 다니다가 왔다는데, 어찌 보면 무척 순진한데 또 어찌 보면 매우 노숙한 인상이었다. 졸병에게 손찌검을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당시 군대에서는 희귀종이었다. 그 대신 말로 갈구는 솜씨는 여간 아니었다.
제대를 몇 달 남겨놓고 뜻밖에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됐다. 취사반. 다루기 힘든 사병을 취사반으로 보내는 풍속이 있었다. 서 병장은 일찍부터 수송부에서 튕겨져 취사반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나도 부당한 ‘전원 얼차려’에 항의하다가 행정실에서 쫓겨나 뒤늦게 취사반 보직을 받았다. 서 병장, 기가 막혔을 거다. 콩나물 씻을 줄도 모르는 책상물림을 데리고 일하라니.
그래도 금세 상대방의 유머감각에 익숙해지면서 편하게 어울려 지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한가하고 조용한 시간에 서 병장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말한다. “나이 많고 배운 것 많은 김 병장이 내 졸병이라는 사실이 나는 무척 기분 좋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서 병장이 정색하고 장난을 걸 때는 훈련소 식으로 응대해야 한다. 발딱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넷, 병장 김기협! 저도 나이 적고 배운 것 적은 서 병장님이 제 고참님이라는 사실이 무척 기분 좋습니다!” (서O삼의 정식 계급은 상병이었고 소위 '마에가리' 병장이었다. 당시 현역병의 절반가량은 병장으로, 절반가량은 상병으로 전역했다. 하지만 짬밥 적은 병장이 고참 상병에게 정식 계급 따지는 것은 확실한 자살행위였다. 정식 계급보다 짬밥 수를 존중하는 것은 훌륭한 미풍양속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명령을 하면 뭐든지 들을 거지?”
“넷, 거시기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겠습니다!”
“내가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해도 들어줄 건가?”
“넷, 들어 드릴지 말지 열심히 생각하겠습니다!”
뭘 부탁하겠다는 걸까? 연애편지를 대필시킬 사람도 아닌데. (내 글쓰기는 군대에서 처음으로 연마의 기회를 얻었다.) 결국 서 병장이 꺼낸 부탁이 대필은 대필인데, 나도 처음 써보는 종류의 글이었다. ‘소원수리(訴願受理)’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너덜너덜한 수첩 하나를 꺼내서 보여주는데, 깨알 같은 글씨로 온갖 ‘비리’가 적혀 있었다. 간부들이 취사장에서 식품재료 빼간 것이 대부분인데, 라면 하나 끓여먹은 것 같은 소소한 일까지 적어놓았다. 그중 심각한 것이라도 당시 군대에서는 모두 ‘관행’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라서, 설령 ‘재수 없게’ 걸리더라도 감봉 처분 정도나 될까?
말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서 병장이 그날은 설명을 길게 했다. 별 것 아닌 일들 같지만, 이런 관행 때문에 졸병들이 먹는 것까지 부실하게 된다, 김 병장처럼 집이 넉넉한 사람에겐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가난한 졸병들에겐 절박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을 적어놓는 것뿐이었는데, 이제 제대를 코앞에 두고 보니 소원수리 작성하는 일이 자기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라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오금을 박았다. “도와주기 싫으면 안 도와줘도 돼. 김 병장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 수첩은 버릴 거야. 그리고 김 병장을 영원히 미워할 거야.”
그 부탁을 안 들어줬다가는 미움만이 아니라 경멸까지 받을 것 같았다. 1주일에 걸쳐 A4용지 10여 장을 빽빽이 채우는 동안 우리 두 사람은 많은 토론을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돕는 입장을 지키되 그가 이 집념을 버리도록 설득하려 애썼다. 헛된 노력이었다. 설득당할 사람이라면 수첩을 그렇게 채워놓았을 리가 없지. (나는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그의 성실성이 존경스러웠고, 그런 일을 내게 털어놓는 내 사람됨에 대한 믿음이 고마웠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큰 믿음을 받아본 일이 많지 않다.)
‘인간적’인 기준에서 이해할 만한 일까지 다 집어넣을 필요가 있겠냐는 내 문제 제기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기는 심판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규정’에서 벗어난 일이라면 크기 여하, 동기 여하에 관계없이 아는 대로 다 적어놓고, 심판은 심판할 사람들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다. 적혀 있는 사람들 중에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기 호오에 관계없이 눈에 띈 문제는 모두 적었다고 했다.
서 병장이 마지못해 받아들인 내 주장 단 한 가지는 너무 작은 일들을 뺀 것이다. 라면 한 주머니(5개) 가치를 기준으로 했다. 소소한 것까지 다 넣으면 너무 길어져서 서 병장님 제대 전에 다 못 쓰겠다고 버텼는데, 실인즉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을 정신병자로 여기면 기분 나쁠 것 같아서였다.
서 병장 제대 며칠 전에 마지막 정기휴가를 나왔다. 그가 보충대에서 나오는 날 용산역에서 약속했던 대로 만났다. 내가 써준 소원수리서를 꺼내 들더니 씩 웃고 말한다. 스스럼없이 경어를 쓴다. “지금이라도 나한테 미움 받고 싶으면 이것 버리라고 말하세요. 버릴게요.” 나는 씩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원수리함에 넣은 다음 악수하며 그가 말했다. “김 병장님 덕분에 군대생활을 제대로 마쳤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37년, 다시 보지 못했다.
그와 헤어지고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행정관이 헐레벌떡 취사장으로 달려와 내 손을 붙잡고 행정실로 끌고 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보안부대원 같아 보이는(사병은 사병인데 머리가 길고 영양상태가 좋고 눈매가 날카롭고 사복 입은) 청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오자 달랑 지프차에 태워 헌병대로 향했다. 헌병대에 가자 대장실로 끌고 들어갔다. 헌병참모는 없고 비슷한 행색의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청년 하나가 있었다.
내게 겁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말도 경어를 썼다. 자리에 앉자 서 병장의 소원수리서를 꺼내 보여주며 본 적 있는 물건이냐고 물었다. 내 손으로 쓴 것이라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한 후 진술서를 써달라고 했다. 한 시간도 안 돼 일이 다 끝나자 그들은 일을 쉽게 해준 내게 고마워하는 기색까지 보였다.
부대에 돌아오니 간부들이 내게 말을 걸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병들도 덩달아 나랑 마주치는 것을 조심했다. 가까운 졸병 하나가 눈길은 다른 곳으로 둔 채 조용히 한 마디 해준다. “CID였대요.” 우와~ 전설처럼 듣기만 하던 그 무시무시한 CID?
당직사관에게 더플백 싸라는 말을 들었다. 이튿날 아침 사단 예하 Y연대 의무중대로 전출되어 갔다. 앰뷸런스에서 내리는데 최 병장이 행정실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고 묻는다. “사단에서 전입병이 있다고 들었는데 김 병장님이 인솔해서 왔어요?” 바로 내가 전입병이라고 하니까 기절할 듯 놀란다. 사단 의무대에 들를 때 박절하게 굴지 않았기를 천만다행이다. 그 날 내무반에서 신고식 대신 환영파티가 있었다. 사단에 볼일 보러 다니던 고참 행정병들이 부랴부랴 돈을 모아 마련해준 자리였다. 나는 하룻밤 동안 Y연대 의무중대 최고참병 노릇을 했다. (상-하급 부대 사이에는 갑을관계가 있어서 상급부대에 볼일 보러 다니는 것이 하급부대원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특별히 해준 게 없어도 일부러 괴롭히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는 보살님이었다. 게다가 CID까지 등장하는 파란만장한 활극의 여파로 말년 전출을 당했으니, 그들은 나를 보호해 주는 데서 큰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중대장은 군의관 중에 드문 터프가이였다. 다음날 나를 불러놓고 간단명료하게 얘기한다. “나는 네 말년 생활을 최대한 편안하지 못하게 하라는 부탁을 받고 있다. 그래서 너를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보내려 한다. 불만 있나?” “없습니다!” 민통선 안에 배치되어 있던 Z대대의 의무지대로 그 날로 파견나갔다. 지대장인 군의관은 히죽히죽 웃으며 “김 병장 여기서 보니 반갑구먼. 사고만 치지 말고, 소원수리만 쓰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랑 잘 지내게. 아 참! 자네에게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 완전군장 구보를 시켜주라는 누군가의 부탁이 있는데, 내가 직접 살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게.” 하는 것이었다. 군대생활 33.5개월 중 가장 평화로운 두 달 가까이를 그곳에서 보내고 제대를 맞았다. (윤 일병 근무처도 그런 종류의 의무지대였다. 붙어 있는 부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본대는 멀리 떨어져있다는 조건이 내게는 평화를 보장해 줬는데, 자칫 잘못 돌아가면 조그만 '지옥'을 만들 수도 있는 조건이다.)
알고 지내던 사단본부 행정병 하나가 몇 달 후 전화를 걸어 뒷일을 얘기해 줬다. 의무대 간부 몇 사람이 징계처분을 받았다는 얘기에 이어 ‘지휘서신’ 얘기를 했다. 참모총장이 육군 전 부대장 앞으로 보내는 지휘서신에서 서 병장의 소원수리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그런 불미한 일이 없도록 주의를 촉구했다는 것이었다. 비리가 없도록 하라는 뜻인지 소원수리가 없도록 하라는 뜻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서 병장이 군복무를 제대로 해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977년, 유신시대의 일이다. 군대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감옥일 때였다. 군대에서 미움 받을 짓을 할 경우 제대한 후라 해서 불이익의 염려가 없다는 보장이 없을 때였다. 분노할 일이 있어도 “군대는 그때뿐이야.” 하면서, 당할 때는 참고 당한 후에는 잊어버리는 군대 상식에서 벗어난 서 병장, 이제 생각하니 뭔가 불이익을 당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참모총장 각하께서 신경 쓸 짓을 저지르다니, 그 시절에.
그때에 비하면 군대가 “많이 좋아진” 것을 안다. 복무기간도 크게 줄었고 시설과 보급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야만적인 관행도 많이 사라진 것으로 안다. 언론보도만이 아니라 주변의 자제들 경험을 들어도 확실히 변했다. 봉급이 몇 십 배 늘어나는 동안 억울한 일은 몇 십 분의 1로 줄어들었으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도 연이어 터지는 사건들을 보면 군대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으니 어찌된 일일까. 극한상황에 몰리는 사병의 숫자는 40년 전에 비해 몇 십 분의 1로 줄어들었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줄어들어서 되는 일인가? 없어져야지.
얼마 전 징병제에 관한 생각을 적은 일이 있다. (☞관련 기사 : “보이는 피도 아깝지만 보이지 않는 땀도 아깝다”) 징병제 군대의 야만적 체질은 구성원들의 ‘노예’ 상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생활과 생명을 강제로 군대에 맡겨놓은 청년들에게는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해 책임지려는 마음이 있어도 그럴 길이 없다. 군대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서O삼 병장 같은 ‘의인’은 도와준 내 눈으로 보기에도 ‘미친 놈’이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민주국가가 되려면 징병제가 폐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줄줄이 터져 나오는 사건들을 보면 징병제 폐지 전이라도 뭔가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억지로 끌려온 병사들이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를 바로잡고 잘 운영하도록 애쓸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겉보기 개혁에도 불구하고 군대의 야만적 본질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개혁이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어진 시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 방법은? 어떤 문제든 당사자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적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면 된다. 폐쇄성이 지적되고 있는(☞관련 기사 : “또 다른 윤 일병 사건도 '원님 재판' 할 건가”) 군 사법제도를 비롯해서 권위주의 시대에 굳어진 제도와 관습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37년 전 서O삼 병장이 이용한 ‘소원수리’만 해도, 활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면피를 위해 운용하는 제도다. 군대 간 사람은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정확한 뜻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 보니 <군사용어사전>(일월서각 펴냄)에 “불법 부당한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구제요구 및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시정요구를 건설적인 부대운용을 위해 검찰관이 받아서 처리하는 행위”로 나와 있다고 한다. 검찰관에게 제출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도 이제 알았다.
활발한 이용을 위해 운용되는 제도라면 ‘소원수리’라는 암호 같은 이름을 지금까지 쓰고 있을 리가 없다. ‘신문고’라든지 ‘고발장’이라든지 ‘청원서’라든지 뜻을 알아보기 쉬운 이름을 얼마든지 찾아 쓸 수 있지 않은가. 자기정화 기능의 구색을 위해 ‘petition hearing’ 제도를 베껴오면서, 정말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노력이 너무나 없었다. 박사과정에 등록해 놓고 군대에 갔던, 사병으로서 최고학력자라 할 수 있는, 그리고 서 병장과의 인연으로 ‘소원수리’ 제도에 접해 봤던 나도 그것을 누가 받아보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건드렸다가는 득을 보기보다 다치기가 훨씬 더 쉬운 제도라고 지금까지도 알고 있다.
군대가 정말 이대로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군 당국에게 제안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서O삼 병장을 찾아내 국가유공자로 보훈처에 추천하라. 그 외에도 공익을 위해 소원수리를 제출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을 적극 포상하라. (대필한 사람까지 포상할 필요는 없다.) ‘소원수리’를 이용하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합리적으로 처리되리라는 믿음을 군대에 끌려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라. 장교-하사관의 태반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는’ 정도의 잘못으로 징계를 당할 만큼 이 제도가 활발하게 이용되어야 군대의 체질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뼈를 깎는 반성”을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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