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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원전 안전을 '불법파견'이 책임진다?

[현장] 소송 내자 강제 전보에 노조에선 제명, 끝내 계약만료까지

"저그 아빠가 부장이면 아들도 부장이고, 아빠가 용역이면 아들도 용역이고 그래요."

16일 오후 전남 영광 계마리 한빛원자력발전소 앞. 이곳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했던 '방사선 안전관리원' 서 모(40) 씨는 이렇게 말하며 허탈한 웃음을 내보였다. 원·하청 노동자를 갈라치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그 고약한 분위기가 그리도 싫었는데, 급기야 "주변 지역 유치원에까지 아빠 계급이 전파되고 있다"며 6살 난 아들을 걱정했다.

게다가 이제는 '하청 아빠'를 넘어 '해고자 아빠'다. 정문을 바라보고 선 돔형 지붕의 발전소 세 곳에서 11년을 바쳤다. 비록 3년에 한 번씩 물갈이되는 하청업체 소속이긴 했지만, 새 업체로 고용이 승계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원전 내 "방사선 안전관리 일은 그만큼 경험과 기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었고 "원청 직원들은 현장 이해 정도가 적어 자신들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이전까진 상상도 못 했던" 집단 계약만료가 발생했다. 서 씨를 포함한 원전 5~6호기에서 일했던 방사선 안전관리원 6명이 소속 업체가 변경되는 시점에 돌연 고용승계 대상에서 배제된 것. 이들은 이를 두고 "보복이자 본보기"라고 확신한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민주노총에 가입한 대가라는 얘기다.

"정규직이에요, 용역이에요?"

처음부터 소송이란 '강수'를 둘 생각은 아니었다. 또 다른 하청 방사선 안전관리원 전 모(39) 씨는 "정치인부터 대통령까지 나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니 일단 기다려볼 생각이었다"고 애초 계획을 설명했다. "대통령이 국정 과제로 공공부문의 상시·지속적 업무 비정규직은 정규직화하겠다고 했으니 조만간 우리도 정규직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는 얘기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급여 수준은 60~70%. 어딜 가서나 '한빛발전소에 다닌다'고 하면 '정규직이에요, 용역이에요?'란 질문을 되받게 되는 현실. 그러나 이는 "높으신 분들의 거듭되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다.

"기다려선 안 되겠더라고요. 우리 같이 빼도 박도 못하는 상시 업무 비정규직은 없을 거 같은데…. 원전 안팎의 피폭을 사전에 방지하고 혹여 문제가 생기면 대처까지 하는 일이에요. 매 순간, 매일 긴장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정규직화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이들이 속해있던 한국노총 산하 노조 또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끼리는 노조 위원장이라기보다는 그냥 '신'이라고 불렀다"며 전 씨는 노조위원장을 '중간 관리자'인 듯 설명했다.

전 씨 등은 결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현대자동차, 이마트, 삼성전자서비스 등에서 '진짜 사장'을 찾아 싸우는 하청 노동자들의 사례가 줄줄이 쏟아졌다. "이들보다 우리가 못할 게 없다"는 생각과 함께 변호사를 찾아갔다.

▲ 영광 한빛발전소에서 하청업체에 속해 일하던 '방사선 안전관리원' 6명은 지난달 30일 업체 변경과정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계약만료를 당했다. '불법 파견' 논란을 일으키며 한국수력원자원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데 대한 보복이라며, 이들은 해고 이후 발전소 정문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소송 내자 강제 전보에 노조에선 제명, 끝내 계약만료까지

불법파견. 형식적으로는 특정 업무를 외주화해 하청업체로 하여금 노동자들을 고용케 해놓고, 실상은 마치 자신들의 일꾼인 듯 관리 및 운영하면 '불법'적인 파견이다.

사용자의 이익만을 위해 '먹고 사는 문제'의 핵심인 일자리를 저질로 만들지 말라는 게 법이 이를 '불법'으로 정한 이유고, 이런 경우 하청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해볼 수 있다.

전 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처럼 '내가 합법적 하청 노동자인지, 아니면 정규직 지위를 가져야 마땅한지'를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료들에게 알리자, 함께하려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외주화되고 십몇 년 되다 보니 억울한 마음이 누적이 된 거예요. 아 진짜 이젠 내가 '억울하다' 말 안 하고는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더라고요."

소송 이야기가 나돌자 현장은 발칵 뒤집혔다. 사방에서 회유와 협박이 들어온 것으로 이들은 기억한다. 최종 원고인단 13명이 소장을 접수한 지난해 10월 30일 이후 두 달에 걸쳐 순차적으로 소속 업체들로부터 '전보 발령'을 받았다. 기존 업무를 하며 받던 급여에서 60~70만 원이 하락하는 자리였다.

당시 가입돼 있던 한국노총 산하 노조는, 이들을 노조에서 제명하기까지 했다. 한국노총 영광지역방사선안전관리노조 정 모 위원장 이름으로 나온 지난해 말 '운영위원회 결과 알림' 공고를 보면, 이 노조는 "조직 체계를 따르지 않고 타 회사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및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낸 것은 노조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노동조합원 전체에 대한 권익 및 조직 보호를 위해 13명에 대해 제명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알렸다.

비록 광주지방법원이 올 초에 "소 제기를 이유로 전보발령, 징계, 기타 근로 계약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13명이 제기한 '전보효력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지만, 몇 달 후 6명은 '계약 만료' 상황에 내몰렸다. 이렇게, 원전 정문 앞 '천막 농성'이 시작됐다.

▲ 16일 오후 영광 한빛발전소 정문. ⓒ프레시안(최하얀)

"원전 안전관리 최전선에 있는데…떳떳하게 살고 싶어요"

해고된 이들은 걱정이 많다. 단지 해고 이후 막막해진 생계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들이 일하던 자리에 새로 들어간 관리원들의 순발력이 "위기 상황에서 재빨리 대처할 만큼" 충분한지 또한 걱정이다. 현재 해고된 6명의 자리에는, 발전소 내 다른 보직에서 일하던 또 다른 하청 노동자들이 배치돼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일반인들은 그 구성과 원리를 이해하기 좀처럼 쉽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거대하다. 핵분열 에너지를 만드는 원자로 주변을 수증기와 물이 흐르는 파이프들이 복잡하게 휘감고 있다. 이 중 방사선(능)에 오염된 물이 흐르는 파이프에 균열이 생기면 말 그대로 '큰일'이 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관리구역 내의 방사선 정도를 점검하고, 기준치 이상으로 오르면 '신속한 대처'를 하는 게 방사선 안전관리원들이 하는 일이다.

"전산 시스템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를 삑삑삑 울리면, 재빨리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를 알아내야 해요.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마스크 쓰고 나오라고 하고, 주변 공기 오염도 측정해 기준치 이상이면 옷(방호복) 입으라고 하고, 안에 있는 물건 위험한 채로 반출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한수원에선 우리가 단순·반복 업무를 하는 이들이라 도급이 괜찮다는데, 현장에선 사실 최종 판단까지 다 우리에게 맡겨두고 있어요. 우리가 '오케이'해야 관리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원청 소속 안전관리원들은 '결제 버튼' 클릭하는 일만 할 뿐이예요." (황 모 씨.)

불법 소지 없이 완벽한 도급 체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긴박한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원청 소속 직원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업무 지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정 씨는 "애초에 현장 일은 하청에만 맡겨진 탓에, 원청 관리원들은 시스템 전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가 없으면 제대로 된 완전 관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피폭을 막는, 그러니까 원전 안전관리의 최전선에 있는 거잖아요. 이런 일을 애초에 이렇게 대거 하청 노동자들한테 맡겨 놓은 거부터가 잘못이죠. 우리는 중요한 일 한다고 생각하는데 밖에 나가면 용역 아빠니 얼마나 미칠 노릇이겠어요. 우리 진심은 정말 별거 없어요.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거, 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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