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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야당, 이러다 '질 수 없는 선거' 또 진다

[주간 프레시안 뷰] 심상치 않은 7.30 재보선 공천 파동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인간도 아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낙선한 정치인들의 비애가 오죽하면 이런 자조가 생겼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낙선보다 더 무서워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공천 탈락이죠. 내로라하는 거물들도 공천을 받지 못하면 재기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0년 총선 때 동교동계의 2인자로 불렸던 김상현 의원이 공천 탈락하자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국회에 들어가겠다"며 탈당을 결행한 게 유명한 사례입니다. 김 의원은 결국 2년 뒤 재보선에서 보란 듯이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공천 탈락 뒤 정치 낭인으로 스러져간 거성들의 수많은 무덤은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비정한 게 정치인가 봅니다.

선거 때마다 공천 파동이 반복됩니다. 뒤집고, 돌려막고, 내리꽂고…. 이런 난장판이 없습니다. 7.30 재보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이 홍역을 앓았습니다. 서울 동작을 공천 탈락자의 기자회견장 난입사건이 많은 신문에 대문짝만 한 사진과 함께 보도됐습니다. 14년 동안 지역을 훑어 온 허동준 전 동작을지역위원장은 절규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딱하고 안쓰럽지만, 공천 결과가 뒤집힐 일은 없습니다. 허 전 위원장도 결국 눈물을 삼키며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후보등록기간이 끝나면 공천 탈락자들의 사연은 과거지사로 잊혀갈 겁니다.

만만치 않은 폭풍이 일었던 광주 광산을에는 결국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전략공천 됐습니다. 오래전 광주로 내려가 재기의 발판을 닦아 온 천정배 전 의원은 또다시 한동안 정치적 암흑기를 감내해야 할 노릇입니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DJ가 직접 발탁했던 '젊은 피' 천정배가 새로운 '외부 수혈'에 의해 18년 만에 밀려나는 결과를 보며 감회가 새롭기도 합니다. 천 전 의원이 권은희 공천 결정을 수용키로 하고 반발하지 않아 광주의 진통도 빠르게 정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 새정치민주연합은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7.30 재보궐선거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했다. ⓒ연합뉴스

공천은 끝났습니다. 눈살 찌푸릴 일들이 많았지만, 사실 공천 결과에는 언론이 왈가왈부할만한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정당이 선거에 자신의 간판을 달고 뛸 후보로 누구로 내세울 것이냐는 전적으로 정당의 책임이고 최종 판별은 유권자들의 몫이니까요. 더구나 동작을에 나선 기동민 전 서울시부시장이나 광주 광산을에 출마하는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국회의원이 될 만한 자질과 품성에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결과론적인 인물 품평은 별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야당의 공천 과정이 유난히 시끄러웠던 배경은 짚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 올해 6.4 지방선거 등 '질 수 없는 선거'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한 야당이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15석이 걸린 이번 7.30 재보선은 2016년 총선 전까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를 물을 수 있는 마지막 선거입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와 거듭된 인사 파동을 거치며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상당히 악화된 조건에서 치러집니다. 야당에겐 반전의 기회인 셈이죠. 야당의 무능이 박근혜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이라면, 야당은 마땅히 대오각성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세력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국민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견제와 대안 세력으로 의미, 수권정당의 위상을 찾아가는 길이니까요.

하지만 7.30 공천과정에서 야당은 통합적 목표의식이 결여된 무능 정당의 맨 얼굴만 노출했습니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추진력도 조정력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지도부가 정말 권은희, 기동민, 금태섭 등을 '필승카드'로 여기고 15곳 선거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했다면 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도 정밀한 공을 들였어야 합니다. 이게 실패하다 보니, 권은희를 위해 광주 광산을에 출마 선언한 기동민을 장기판 말처럼 동작을로 재배치하고, 기동민을 위해 동작을에 나선 금태섭과 허동준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든 꼴이 된 겁니다.

공천을 받은 당사자들도 민망해졌습니다. 권은희 전 과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은폐 의혹을 폭로한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보선 출마에 관한 고려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했던 그의 열흘 전 공언은 허언이 됐습니다. 그 사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출마 권유와 압박으로 인해 마음을 바꾼 게 사실일지라도, 결과적으로 대선개입 은폐의혹 폭로의 진정성에 생채기기 난 건 부정하기 어렵게 된 겁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지경입니다. 20년 지기의 지역구에 느닷없이 내리꽂혀 '패륜 공천'의 당사자가 된 기동민 전 부시장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권은희, 기동민 전략공천의 또 다른 함의는 새정치민주연합 스스로 정당의 존재의미를 깎아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도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물 됨됨이를 떠나 정당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을 내세워 당의 위기를 우회해보려는 시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권 전 과장은 상징성 있는 인사이지만 정치와는 무관했습니다. 기동민 전 부시장은 정치적 경력보다 '박원순의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거리를 둔 이미지로 성공한 박원순 시장 모델의 연장선이라고 할까요. 인물 경쟁력을 따지게 되는 선거의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모자란 당력을 무당파적 개인에게서 충당하려는 시도가 반복되는 건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무능한 지도부와 짝을 이뤄 동작을 공천을 놓고 벌어진 일부 중진의원들과 486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집단적 대응은 어떻습니까. 이들이 금태섭과 기동민 공천에 반발한 까닭은 내년 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입니다. 2016년 총선 공천권의 향배가 걸린 차기 당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비주류 지도부를 크게 흔든 것이죠.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의리 정치'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당의 이익에 앞서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야당 내부 기득권 세력의 민낯을 드러낸 겁니다.


이런 '마이너스 공천', '자해적 공천'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질 수 없는 선거'에서 또다시 패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이 심각한 내홍을 겪게 된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벌써 '조기 전당대회'가 당내에서 거론되는 게 반증입니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불안한 리더십과 당내에 온존하는 계파 갈등은 늘 새정치민주연합의 화약고입니다. 이럴 거였다면 두 세력이 도대체 왜 합당한 것이냐는 탄식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금태섭 전 대변인마저 "본업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안철수 대표와 사실상 결별을 선언, 안철수 정치의 조기 소멸을 점치는 얘기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결국 '도로민주당'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는 얘기죠.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 문제로 죽을 쑤는 사이 박근혜 대통령의 악재인 인사 파동도 많이 희석됐습니다. '밀실 공천', '계파 공천'을 넘어 '패륜 공천'이란 말까지 듣는 야당이 대통령의 인사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아냥으로 돌아옵니다. 이러다간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어이없는 ‘황당 청문회’를 겪고도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물론 의혹이 40여 가지에 달해 인사청문회 사상 '최대 의혹 보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경우, 박 대통령은 제2의 인사 참사 국면을 맞게 될 겁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를 부각시켜 7.30 재보선에 심판론을 띄우려는 야당의 전략도 스텝이 꼬였으니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야권의 난항은 진보정당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동작을에 무려 세 명의 진보 후보가 난립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에선 노회찬 전 의원이, 통합진보당은 유선희 최고위원이, 노동당은 김종철 전 부대표가 각각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모두 옛 민주노동당 시절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입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슈퍼갑 행세하느냐"라고 비판하지만, 이 지역에서 2008년부터 자리를 잡았던 김종철 전 부대표는 명망을 앞세운 노 전 의원의 동작을 출마에 유감을 표했습니다. 2008년 이래 세 번의 분당 사태를 겪은 진보진영의 파괴적 현주소가 동작을에서 발현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동작에서 쟁쟁 거리는 야권연대라는 기계음은 선거전이 시작된 뒤에도 한동안 맴돌 것으로 보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정당들에 대한 기대가 꺾이다 보니, 경기 평택을 선거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직접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무소속 진보단일 노동자 후보'라는 타이틀을 보며 처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쌍용차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기존 정당들에 대한 분노가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한편에 드는가 하면, 노동 의제조차 진보정당을 경유하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산개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도 합니다. 진보 4당이 그를 지지하고 조국 서울대 교수가 후원회장을 맡아 힘을 보태고 있지만, 현실정치의 벽이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7.30 재보선은 이처럼 '미니총선'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어느 곳 하나 눈 붙이기 어려운 '작은 선거'로 쪼그라듭니다. 유권자들의 무관심은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이고, 야당은 '질 수 없는 선거'를 또 한 번 스스로 발로 차버리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새누리당에는 요즘 "7.30 재보선도 해볼만 해졌다"는 얘기가 퍼진다고 합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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