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노동 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경제학의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인 ‘보이지 않는 손’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딱 한 번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유시장경제의 핵심 원리로 여겨지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구성원 각자 행위들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완성한 1776년 당시, 유럽은 절대왕정에 의해 통제를 받는 중상주의 정책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절대왕정은 귀금속을 부의 원천으로 보았기 때문에 정부는 국가의 부를 늘리기 위해 중상주의의 초기에는 금은의 채굴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한계에 다다르자 무역을 통해 해외로부터의 귀금속을 유입시킬 방법을 강구했다.
대외무역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무역을 통해 국부를 증가시켰고, 절대왕정은 이들에게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왕정의 수입 증대를 꾀하였다. 그 결과 무역상인 계층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이들에게 경제적 부가 집중되었다.
사회 구성원 각자의 이익추구 활동을 통한 생산량 증가야 말로 국부를 확대시킨다고 본 애덤 스미스에게 절대왕정의 중상주의 정책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제도였다.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이익추구 활동에 전념하여 국부 확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생산한 물건들을 자유로운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절대왕정이 무역상인 계층에 부여한 독점적 지위는 특정 계층에 경제력을 집중시키고 이는 토지, 노동, 자본 등에 공정하고 합당한 대가를 제공하는 시장의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쳐 시장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특정 계층에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국가의 정책을 비판하며 애덤 스미스는 국가는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시장의 가격 형성과 이러한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계층의 경제력 집중(독점)을 저지하는 것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우연인지 아니면 역사적 필연인지 우리 역사에도 위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농업 중심의 경제 정책을 폈다. 또한 관 중심의 상공업 활동으로 인해 조선 중기까지 상공업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세제개혁을 통해 대동법이 실시되고 다시 화폐로 조세를 징수하면서 백성들은 화폐의 중요성과 이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화폐 취득을 위해 난전에서의 매매가 성행하면서 조선의 상업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원래 조선의 상업 이익을 독점하고 있던 세력은 육의전과 시전상인들이었다. 난전의 상행위가 성행하자 육의전과 시전 상인들은 자신들의 상업활동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에게 난전을 단속하고 특정상품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금난전권을 요청했고 당시 이들로부터 막대한 국세를 납부 받고 있던 정부는 이를 허용하였다.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 상인들은 도성 안은 물론 도성 밖 10리 이내의 난전을 단속해 물건을 압수하고 난전 상인을 가두거나 곤장을 치는 등의 형벌까지 부과할 수 있었다. 숙종 이후에는 정부가 나서서 직접 난전을 단속했다. 그럼에도 난전에서의 상행위는 늘어만 갔다. 결국 금난전권이 상공업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여긴 정조는 1791년 육의전 이외 시전 상인들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신해통공을 단행하였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이나 정조의 정책은 모두 특정 집단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들이 활동하던 18세기 절대왕정, 조선 후기 모두 국가가 특정 집단에 독점을 부여하여 오히려 자유로운 시장을 형성을 방해하고 있었기에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질서 회복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국가의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최근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금융 분야, 의료 분야, 부동산 분야 등 다양한 분야의 규제들을 손질하겠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고사 직전인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했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의 각종 규제들을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만 여기는 것 같다. 정부의 계획대로 이러한 규제를 제거하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적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까? 자유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들은 대부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경쟁,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의 조정 기능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했던 애덤 스미스 이론의 또 다른 핵심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우리의 시장 상황을 보면 2000년 말 41% 수준이었던 10대 그룹 시가총액 비중이 2011년 말 56%에 달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순환출자, 지급보증, 지주회사 제도를 통해 끊임없이 몸집을 불려온 재벌기업들은 제조업은 물론 유통업까지 장악하며 더욱 거대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거래 상대방에게 불리한 거래행위들을 요구하는 등 시장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 8월까지 30대 대기업의 공정거래 관련 법 위반 건수는 총 353건에 달한다. 특히 10대 대기업의 위반 건수는 30대 대기업 위반 건수(353건)의 절반 이상(203건)을 차지하고 있어 상위 기업일수록 오히려 시장경제질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20건 △2010년 26건 △2011년 27건 △2012년 45건 등 이들의 위반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오히려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18세기 절대왕정 시대와 조선 후기, 그리고 지금 우리의 경제 질서를 위협하는 주범은 모두 동일하다. 특정 집단의 독점과 경제력 집중. 정부가 완화하겠다는 규제들은 대부분 이러한 시장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는 특정 집단으로부터 우리의 시장경제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장치들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선두에 선 미국이 왜 그토록 강력한 반독점법과 분리명령 제도를 두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 민주화는 지난 대선을 관통한 화두였습니다. 이 화두를 잘 풀어가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이뤄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갈 길은 멀지만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인 경제 민주화를 위해 다시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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