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대동단결'이다.
메이저·마이너·방송·신문·인터넷을 막론한 모든 매체, 기자협회·언론노조 등 협업조직과 신문협회·신문편집인협회 등 언론단체, 보수적 언론학자들과 진보적 언론학자, 성향이 다른 언론유관 단체들이 모처럼 뜻을 모았다.
정부가 내놓은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도 바라마지 않던 국민통합이 구현되는 모양새다. 이처럼 저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마련인 모든 개인과 집단이 일제히 반대하는 정책을 내놓게 만든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대통령 지시 이후 4개월 만에 완료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22일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통·폐합, 경찰서 기자실 폐쇄, 기자들의 공무원 접촉을 제한하는 내용의 방안을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을 향해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 가지고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담합한다"고 비난한 후 "국정홍보처가 해외 사례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 때부터 '정부가 기자실을 대폭 폐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국정홍보처와 청와대는 "아무 것도 결정된 바 없다"며 "해외 실태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취재지원 개편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만 말했었다.
심지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지난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던 시절 접했던 기자실 문화에 대해 부정적이긴 한데 현 정부 들어 개방형 브리핑 제도 등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씀드리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 이후 지난 3월 국정홍보처가 주관한 각 부처 정책홍보 담당자 워크숍에서도 참석자의 대부분은 '과도한 기자실 폐쇄는 정책홍보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유일의 '수직계열화 일관 시스템'
하긴 기자실이 폐쇄되든 말든 '정책의 입안→집행→KTV·국정브리핑·청와대브리핑 등을 통한 홍보→참여정부평가포럼을 통한 평가'라는 세계 유일의 '수직계열화 일관 시스템'을 갖춘 청와대가 답답할 것은 없어 보인다.
'찬성하는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고, 이념적 성향과 평소 친소관계를 막론하고 다 반대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의견을 수렴했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청와대 홍보라인의 한 관계자는 "언론단체들이야 언론의 편의에 저해가 되니 반대하고 언론학자들도 주된 창구가 언론이니 반대하는 것 아니겠냐"고 답했다. '여러 의견을 두루 수렴해서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는 말인 셈이다.
청와대와 국정홍보처는 "선진국엔 없는 기자실을 통폐합하지만 정보공개 수준을 높이고 브리핑 제도를 활성화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보공개와 브리핑 수준이 얼마나 높아질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천호선 대변인이 "개방형 브리핑 제도의 취지에 가장 부합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손대지 않는다"고 평가한 청와대의 수준에 미뤄 보면 된단 말이다.
청와대브리핑에 게재된 글의 오류에 대한 문의에 국정홍보비서관실 담당자가 "모든 질문은 대변인을 통해 달라. 아무 것도 대답할 수 없다"고 응수하는 게 청와대의 홍보 수준이다. 물론 청와대는 추후 아무 언급도 없이 그 지적사항을 은근슬쩍 수정하긴 했다.
'눈 가리고 귀 막기'는 전형적인 말기 현상
'조선일보→조·중·동→개혁적 신문→전 언론.' 임기 말로 갈수록 현 정부의 언론과의 대립각은 이처럼 넓어지고 있다.
공기업·공공기관 감사들의 '이과수 세미나'같은 공직기강 해이뿐만 아니라 이같은 '눈 가리고 귀 막기'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권의 전형적인 말기 현상일 뿐이다. 아무도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정책성과를 평가하고, 아무도 제대로 보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정보를 쥐고 유사언론 행위를 하겠다는 발상이 안쓰럽다. 이같은 행태는 정권 말기로 갈수록 그나마 비좁았던 스스로의 입지를 더욱 좁힐 뿐이다.
정권 말기를 가리키는 표현 중에 '레임덕'이란 말도 있지만 이는 대체로 국정의 운영 및 여론과의 피드백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전제로 대통령제 선진국에서나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정권 말기적 현상'이란 말은 좀 다르다. 임기 9개월, 차기 대선 7개월을 남겨둔 이 시점의 '기자실 통폐합'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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