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전에 드디어 한국GM의 2013년 감사보고서가 공시되었다. 한국GM은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상장 기업이라면 당연히 공시해야 할 사업보고서 등에 대한 공시 의무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상장 기업들의 경영이 투명한 것도 아니지만, 노동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경영의 최소한이나마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시 자료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나마 1년에 한 번 공개되는 감사보고서를 통해 한국GM의 재무 상태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비상장기업도 감사보고서는 공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공시된 자료는 회계 장부의 '대강'일 뿐이다. 각각의 항목에는 수많은 소항목들이 숨어 있다. 우리는 그저 어떤 부문의 총액만 볼 수 있을 뿐, 그 내용에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감사보고서들도 지난 몇 년 치를 모아놓고 분석해 보면 조금씩 숨어 있는 항목과 수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해당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난 몇 년간 벌어진 사건들을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그런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회계 장부에 어떤 영향들이 있었는지를 유추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GM의 경우에는 통상임금 문제가 회계 장부를 들었다 놓았다 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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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관련 회계 처리만 없었으면 꾸준한 재무 건전성 기록했을 한국GM
GM은 2012년 실적을 발표하면서 무려 3400억의 영업 적자가 났다고 얘기했다. 2011년에 2000억대의 영업 이익이 났던 것에 비해 매출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난 이유는 통상임금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통상임금 문제를 빙자한 '회계 수법'이었다.
GM은 무려 6260억가량의 금액을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할 경우에 대비해 미리 '장기미지급비용'으로 처리해 버렸다. 즉, 통상임금 충당금을 미리 비용으로 처리해 버리는 회계 수법을 동원해 3400억 적자 회사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영업 적자 -3400억) + (통상임금 비용 처리 6260억) = 영업 이익 2860억
만일 통상임금 관련 회계 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위에 보이는 계산식에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영업 이익 2860억을 기록했을 것이다. 한국GM은 틈만 나면 통상임금 때문에 사업 못해 먹겠다고 협박하더니, 아예 회계 장부까지 적자 기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작년 12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GM은 이 판결이 자신에게 매우 유리하게 나온 것임을 금방 알아챘다. 그러더니 판결이 나온 직후, 전년(2012년)에 비용 처리했던 통상임금 관련 금액을 다시 환입하는 일을 벌인다.
GM이 환입한 금액은 총 7890억이었다. 이번에는 이 환입금 덕에 영업 이익이 무려 1조860억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2012년에 비해 2013년 매출액에서 큰 차이가 없고 차량 생산과 판매도 비슷한 수준인데 2012년에는 3400억 적자, 2013년에는 1조 원대 흑자라니?
(영업 이익 1조860억) - (통상임금 환입 금액 7890억) = 영업 이익 2970억
1년 사이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게 한 것은 바로 '통상임금 회계 처리'이다. 만일 2013년 역시 통상임금 소송을 회계 처리에 반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위에 나타난 산술식처럼 2970억의 영업 이익을 기록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 해는 3400억 적자, 다시 한 해는 1조860억 흑자, 이렇게 널을 뛰는 게 아니라 매년 영업 이익을 3000억 가까이 기록하는 재무 건전성을 보여줬을 것이다. 애초에 노동자들이 빼앗긴 임금을 돌려달라고 제기한 이슈였던 통상임금은, 이제 자본가들이 회계 장부를 들었다 놓았다 마음대로 조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한국GM의 사례는 통상임금 관련 회계 처리가 기업의 재무 상태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뒤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성형수술 선전 문구의 대세가 되어 있는 'Before & After'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GM이 통상임금 소송 관련 비용 처리를 한 것이나 이걸 다시 환입한 것. 어느 경우에도 실제 돈이 지출되거나 들어온 것은 단 한 푼도 없다. 쉽게 말해 통장 잔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런데 "미래에 그런 비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예측 하나만으로 회계 장부에서는 수천억이 왔다 갔다 한다.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만이 아니라, 멀쩡한 흑자 기업을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적자 기업으로 둔갑시키고 만 것이다.
영업 이익은 1조860억, 당기순이익은 1009억?
그런데 한편으로 좀 이상한 생각도 든다. 2012년에 멀쩡한 흑자 기업을 적자로 만든 것은 탐욕스런 기업의 본성이라 치더라도, 그럼 왜 2013년에는 무려 1조 원 대의 영업 이익이 났다고 발표한 걸까? 이렇게 이윤이 남는다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세금도 늘어나고 손해 아닌가?
비밀은 '당기순이익'에 있다. 영업 이익이란 GM과 같은 자동차 기업이 차를 만들고 판매하는 등 영업 활동을 통해 창출한 이윤을 뜻한다. 그러나 기업의 활동이 꼭 영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많은 기업들이 금융 투자나 부동산 투자도 하고 있다. 경제 위기로 인해 잦은 환율 변동이 벌어지므로 환차익과 환차손의 규모도 커진다.
그래서 영업 이익(적자)에다 영업 외 부문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해까지 반영한 것을 '세전 이익'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영업 이익(적자)에다가 영업외 이익을 더하고 영업외 손해를 뺀 금액을 말한다. 이 금액이 바로 법인세를 부과하는 기준이 되므로 '세전 이익'이라고 부른다.
한국GM의 경우에 이상하게도 2013년에 영업외 손해 규모가 무려 7500억에 달했다. 반면 영업외 이익은 3970억에 그쳐, 영업 이익은 1조860억이었지만 영업외 이익·손해를 반영할 경우 세전 이익은 7326억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왜 영업외 손해 규모가 이렇게 클까? 조금 있다가 따져보도록 하겠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 단계이다. 당기순이익이란 세전 이익에서 법인세를 뺀 금액을 뜻한다. 즉, 정부에 낼 세금까지 공제한 '순수 이익'이란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한국GM과 같은 기업에는 법인세율 24.2퍼센트가 적용된다. 따라서 세율에 따른 법인세는 세전 이익 7326억의 24.2퍼센트인 1773억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GM의 감사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법인세 비용' 항목이 무려 6316억 원으로, 앞에서 계산한 법인세의 3.5배가 넘는다. 세상에, 세전 이익이 7326억인데 법인세 비용이 6316억? 세율로 따지면 무려 86.2퍼센트!
그래서 당기순이익은 세전 이익에서 법인세 비용을 빼고 나니 불과 1009억으로 뚝 떨어지고 만다. 영업 이익이 1조860억이었는데 이것저것 다 떼고 나니 고작 1000억만 남았다는 것이다. 허 참, 도대체 GM은 무슨 조화라도 부린 것일까?
계산기와 돋보기 들고 꼼꼼히 따져봅시다
<인사이드 경제>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치의 감사 보고서를 모두 뒤져보기로 했다. 감사 보고서에 나온 회계 장부 중 '손익 계산서'에 등장하는 주요 회계 수치들을 아래 표에 나열해 보았다. 계산 편의를 위해 10억 미만 단위는 모두 버리고 기입했다. (즉, 반올림한 수치가 아니다.) 그리고 괄호로 표시된 수치는 음수(-), 즉 마이너스 금액을 의미한다.
우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영업 이익(적자)은 영업 활동에서 발생한 이윤이므로, 위 표의 총 매출액에서 매출 원가와 판매비·관리비를 빼주면 계산할 수 있다. 영업 이익에다 아래의 표에 나와 있는 영업외 이익을 더해주고 영업외 비용을 다시 빼주면 세전 이익이 나오고, 다시 여기에 법인세 비용을 빼면 최종적으로 당기순이익이 계산되어 나오게 된다.
그런데 매출액 15조를 자랑하는 대기업의 회계 장부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치들이 너무 들쑥날쑥하다. 특히 '인사이드 경제'가 붉은색 글씨로 나타낸 수치들은, 평상시 수치보다 너무 높거나 너무 낮게 나타나는 부분들을 표시한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영업 이익을 다루는 위의 표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2009년에 매출액, 매출 원가, 판매비·관리비가 모두 급락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2008년 9월에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미국발 금융 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한국GM만이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 업계 모두 생산·판매량이 급락하게 된다. 따라서 2009년의 수치가 낮아진 것은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2012년과 2013년의 매출 원가 항목은 변동이 크다. 매출액에 큰 변동이 없기 때문에 더욱 의심스러운 항목들이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통상임금 관련 회계 처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2012년에 미리 비용으로 처리한 6000여 억, 그리고 2013년에 다시 환입한 7000여 억이 모두 이 매출 원가 항목에 숨어 있다. 그래서 2012년에는 전년 대비 갑자기 상승한 반면, 2013년에는 갑자기 금액이 줄어들게 된다.
그나마 영업 이익을 다루는 위의 표에서는 통상임금 회계 처리 항목만 제외하면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영업 이익 부문 역시 통상임금 비용 처리 때문에 2012년에 갑자기 적자를 내고 다시 2013년에 큰 폭의 이익을 낸 부분만 빼면 전반적으로 고르게 이익을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업 활동과 무관한 곳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손실
문제는 영업외 부문인 아래 표이다. 통상적으로 한국의 다른 기업들의 경우 영업외 이익과 비용의 대부분은 환차익과 환차손이 차지한다. 특별한 환율 변동이 벌어지지 않는 한, 두 수치는 엇비슷하게 나타나므로 영업 이익과 세전 이익에 큰 차이가 없게 된다. 법인세 비용을 제한 당기순이익 수치 역시 영업 이익에서 조금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곤 한다.
그런데 한국GM의 지난 6년간 당기순이익의 변동을 보면 아무런 일관성도 보이지 않는다. 영업 이익과 관계도 거의 없어 보일 정도이다. 이 모두 영업외 부문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2008~2010년까지 영업외 이익·비용이 모두 엄청나게 상승하는데, 이게 다 파생상품 거래와 평가에서 발생한 이익 또는 손실이다.
2009년, 2010년에도 엄청난 수준이지만 특히 2008년에는 영업외 비용만 3조가 넘었는데, 파생상품 거래와 평가 손실만 무려 2조3000억을 기록했다. 사실 이 대목은 2008~2009년에 주요 의혹으로 제기된 바 있는데, GM이 글로벌 부문에서 입은 파생상품 손실을 한국GM에 떠넘긴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위 표는 한국GM의 2008년 감사보고서에 드러난 영업외 이익과 영업외 비용의 총액 및 주요 항목을 나타내본 것이다. 앞의 표와 마찬가지로 10억 미만 금액은 버리고 기입했다. 본래 영업외 이익과 비용에서 환차익과 환차손이 주요 항목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GM의 경우 2008년, 2009년, 2010년 이 3년간은 파생상품 관련 항목이 어마어마하게 등장하게 된다.
우선 파생상품과 관련한 손실은 2조3290억인데 반해, 파생상품과 관련한 이익은 고작 3760억에 불과하다. 이 차이를 계산해보면 1조9530억이 되는데, 즉 2008년 한 해 동안 파생상품 평가와 거래에서만 한국GM은 무려 2조 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얘기가 된다.
제조업체가 2조 원 가까운 파생상품 손실을 입은 것은 한국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게다가 GM은 도대체 어떤 파생상품 거래를 하다가 이런 손실을 입었는지 전혀 밝히지 않았다. 한국GM에 비해 매출액 규모가 3배가 넘는 현대차의 경우도 2008년 외환 관련 파생상품 손실은 1310억에 그쳤는데 말이다.
한국GM은 2008년에 2900억의 영업 이익을 기록하고도 이 파생상품 손실로 인해 무려 8750억의 당기순손실을 입었다. 2009년에도 3210억의 파생상품 손실을 기록해, 역시 1550억의 영업 이익을 내고도 3430억의 당기순손실을 입고 말았다.
한국GM의 회계장부에서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해는 2008년, 2009년과 2012년인데, 2008~2009년에는 파생상품 손실 때문이었고 2012년에는 통상임금 관련 비용 처리 때문이었다. 즉, 영업 활동이 문제가 아니라 영업 외 부문의 문제로 인해 손실을 기록했던 것이다.
한국GM이 특별히 영업을 잘못한 것이 아닌데 회계 장부에 엄청난 비용이 기록된 것은 2013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문제는 좀 더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는데, 분량이 길어질 것 같아 '인사이드 경제'의 새로운 글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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