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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파문과 막장팔이의 하이에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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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파문과 막장팔이의 하이에나들

[편집국에서] 좋은 교육감을 뽑는 수밖에

고희경(캔디 고) 씨는 용감했다. 그가 올린 페이스북 글은 "나는 서울시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급하게 서울의 교육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걱정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로 시작한다. "공적인 발언"이라고 했다. "생물학적 아버지"란 표현은 남남이란 뜻이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스스로 해체했다. 가족이던 시절 겪은 경험을 공적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을 뿐. '아버지 등에 비수를 꽂은 딸'이란 투의 막장몰이는 그래서 가당찮다.

그는 '교육감 후보' 고승덕의 자질이라는 논점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가치 없는 정보가 아니다. "저는 교육이란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자녀와의 관계에서부터요. 그래서 저는 자기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할 능력이나 그럴 의지가 없는 사람은 한 도시 전체와 같은 대규모 지역에 어떤 교육정책도 펼칠 수 없다고 봅니다"라는 그의 말에 반향이 있는 까닭이다. '좋은 아버지'와 '좋은 교육감'의 상관관계는 서울시민들이 판단하면 그만이다.

고승덕 후보는 비겁했다. 희경 씨의 공적인 문제제기를 가정사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자신을 "재력과 권력을 가진 집안의 딸에게 양육권을 빼앗긴 아버지"라고 했다. 이혼하던 과정, 장인과의 불화, 전처에 대한 비난 등 구구절절…. 그리곤 희경 씨가 제기한 쟁점을 타 후보의 교묘한 네거티브 폭로전, 음모론으로 돌렸다. "나는 공작 정치의 폭풍 속에 외로이 서있다"면서.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 ⓒ연합뉴스


폭풍을 일으키는 폭로에는 핵심이 있다. 고 후보는 그걸 잘 아는 사람이다. 2012년의 데자뷰일 터. 그는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의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폭로해 한나라당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 박 의장은 부인했다. 음모론도 번졌다. 박 의장의 측근이 고승덕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지자 고 후보가 이를 견제하고 정치적 입지 구축을 위해 돈봉투 의혹을 폭로했다는 것이다. 진흙탕 싸움처럼 비쳤지만 고승덕의 폭로가 음모론을 이겼다. 박 의장은 국회의장직을 사퇴했다. 배경이야 어쨌건 '돈봉투'라는 공적 문제제기의 타당성을 인정받은 결과다. 지금, 달을 가리키는 희경 씨의 손가락을 탓하는 고 후보가 딱 박희태 전 의장의 당시 처지 같아 하는 말이다.

문용린 후보는 논란을 반기는 기색이다. 공표된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달리던 후보가 제풀에 고꾸라지면 2등 후보는 신난다. 그러나 그도 손가락을 쳐다봤다. "딸이 아버지를 흠집 내고 아버지는 딸을 돌보지 않는 것은 패륜 아니냐"고 했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가 팬티 바람으로 도망가던 장면이 생각났다"며 봉창을 두드리기도 했다. 문제가 되자 서둘러 "패륜" 발언을 주워 담았으나, 문 후보도 희경 씨의 문제제기를 '막장 드라마'로 몰아간 주역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언론도 신났다. 막장 스토리는 언론의 밥줄이다. 희경 씨가 왜 고 후보의 자격을 문제 삼았는지는 별로 관심 없다. 오로지 부녀 갈등이다. 희경 씨의 페이스북에 걸린 사진의 의미를 분석(?)하는가 하면 고 후보의 결혼과 이혼, 재혼 과정을 파헤쳤다. 잘나가던 정치인이 예기치 못한 딸의 공격으로 몰락하는 스토리를 앞 다퉈 구성하는 중이다. 재미없는 교육감 선거보단 그쪽이 낫다고 본 모양이다.

하이에나 언론의 막장팔이는 그러려니 한다. 압권은 따로 있다. 짐짓 준엄한 척하는 일부 언론들의 태도다. <조선일보>는 교육감 선거 제도 자체를 문제 삼았다. 교육감 직선제를 과거 교육감 임명제로 되돌리자는 취지다. <중앙일보>, <매일경제> 등 여러 보수언론이 동참했다. 고승덕 같은 유명인의 '인기 몰이'가 포퓰리즘 선거의 원인이라는 지적은 자못 날카로워보인다.

그러나 의도는 따로 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을 포함한 소위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선출된 이래, 교육감 직선제 폐지는 보수파들의 숙원이었다. 교육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거에 시민들이 참여해 친환경 무상급식 같은 공공의 의제가 선택받은 결과를 용납하기 힘들었다. 교육자치 확대라는 직선제의 긍정성을 나무랄 수 없으니, 고승덕을 빌미로 교육감 선거 제도를 되돌리려는 역(逆)포퓰리즘이다.

<문화일보>는 심지어 사전투표제가 문제 있다고 했다. 고 후보 논란이 본격적으로 점화된 시점이 1~2일이어서 사전투표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사전투표에 의해 본 투표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세심한' 문제제기다. 그 속에는 투표율 제고라는 사전투표제의 긍정적 효과를 깎아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대표성의 위기, 즉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낮은 투표율 문제에 눈감은 전형적인 본말전도다.

여기까지가 희경 씨의 문제 제기가 불러온 파장의 전말이다. 이제 선택만 남았다. 정당 공천 없는 교육감 선거는 당명도 번호도 없는 교호순번제로 실시된다. 기호 없이 순서를 바꿔 후보자의 이름만 투표용지에 표기돼 있다. 막상 투표용지를 받아보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번호 보고, 혹은 당명 보고 찍는 '줄투표'보다는 훨씬 선진적인 장치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가면이 벗겨진 후보와 '패륜'으로 논점을 퇴색시킨 후보의 이름을 제대로 알아야 좋은 투표를 할 수 있다. 막장팔이로 교육감 직선제를 흔들어보려는 일부 언론의 불온한 의도도 이참에 시민의 힘으로 봉인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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