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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눈물, 길환영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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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눈물, 길환영의 눈물

[편집국에서] 국민만 운다

# 박근혜의 눈물

박근혜 대통령이 울었다. 찔끔 흘린 눈물이 아니다. 볼을 타고 주륵주륵 흘렀다. 입술을 잠시 깨물기도 했다. 소위 '세월호의 영웅'들을 호명하며 목이 메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19일 대국민 담화는 온 국민이 보라고 전국에 생중계됐다. 기억의 모자람과 검색 능력의 부족함 탓인지, 박 대통령의 이런 눈물, 전에 본 적이 없다.

누군가 박 대통령의 눈시울이 불거진 과거 사진들을 추려놨다. (바로보기) 지난 16일 세월호 사고 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단을 면담하며 눈물을 닦는 사진이 있다. 그보다 앞서 지난 3월엔 독일 방문 시 파독 광부 및 파독 간호사를 접견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009년엔 대구지하철 참사 6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영상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2007년엔 고(故) 육영수 여사 추모식에서, 고엽제전우회 총회에서 축사를 하며 눈물 흘린 장면이 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사진들만 봐선 박 대통령이 진짜 눈물을 흘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요는, 박 대통령의 눈에서 흐르는 굵은 물줄기, 그 명명백백한 '사실적인 눈물'을 직접 목격한 건 처음이란 얘기다.

'악어의 눈물'이란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울었고 우린 다 봤다. 우리도 이미 울었다. 아이들이 불쌍해서, 어린 생명들을 지켜내지 못한 국가가 원통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한 어른으로서의 비루함 때문에, 저마다 울었다. 대통령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 대통령도 가슴을 메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박 대통령이 "대통령 책임"을 언급한 것도 꼭 여론에 떠밀려 거짓을 고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대통령이 신파 배우는 아닐 테니까.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자리가 그의 수준급 연기를 선보이는 무대는 아닐 테니까.

▲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 담화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길환영의 눈물

길환영 KBS 사장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눈물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딱 한사람을 빼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다. 김 전 국장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켜 사퇴한 인물이다. 그가 그랬다. "(길 사장이) 눈물까지 흘리며 (나의) 사퇴를 종용했다"고, "이걸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시청자들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의 사장이 자리보전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믿기 힘든 말이지만 거짓말 같지도 않다. 수군거리기만 했던 KBS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자체 폭로로 드러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9일, 그 새벽에 KBS에서 청와대로 걸음을 바꾼 까닭은 KBS가 '청와대 하명'을 따르는 곳이라는 정확한 의심 때문이었을 테다.

'하명'의 구체적인 증언이 잇따랐다. 김 전 국장에 따르면, 길 사장은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하는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었고, "윤창중 사건을 톱으로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한 길 사장은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해경은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명의 가교는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길 사장과 연락을 주고받은 인사가 이 수석이 맞느냐는 질문에 김시곤 전 국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 국장에 따르면 "이정현 수석이 직접 전화를 걸어 세월호 사건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급기야 김 전 국장의 후임에는 이정현 수석의 고등학교 동문인 백운기 씨를 앉혔다.

▲지난 9일 사퇴한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 ⓒ연합뉴스


# 누구의 눈물이 진실인가?

헷갈린다. 박 대통령은 "고심 끝에" 해경 해체를 결정했다고 선언했는데, 그의 심복은 해경에 대한 KBS의 비판 보도를 막아 왔다. 분열증이 아니고선, "세월호 사건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달라"는 보도 지시와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는 박 대통령의 담화가 어떻게 같은 청와대 지붕 아래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한 질문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담화를 마쳤다. 그리곤 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 떠났다. 이정현 수석은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얘기를 하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뭉갰다. 모든 국민이 본 박근혜의 눈물은 단 한 사람이 폭로한 길환영의 눈물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누구의 눈물이 진짜인가? 그리고 무엇이 진짜 '대통령의 뜻'인가?

두 사람이 소금기 없는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도,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자식 생각에 실종자 가족들은 새벽 바다에 눈물을 떨군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들은 밤마다 이불을 적신다. 국민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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