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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연봉 29억 씨티은행의 '묻지 마'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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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연봉 29억 씨티은행의 '묻지 마' 구조조정

[박점규의 동행]<30> 98년 구조조정 광풍 다시 온다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은행원은 교사, 공무원과 함께 늘 최상위권을 차지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에 높은 연봉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씨티은행의 노동자들은 불안과 분노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확히 5년 전입니다. 2009년 5월 8일 어버이날 쌍용자동차는 노동부에 전체 직원의 35%에 달하는 2405명의 정리해고 계획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지금 한국씨티은행 노동자들은 5년 전 쌍용차 노동자들처럼 잔인한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시티은행은 전체 지점 중 30%에 이르는 56개 점포를 폐쇄할 것이라고 통보했고, 노조는 파업 찬반 투표를 벌여 3200명 가운데 91.6%가 파업에 찬성해 연휴가 끝난 5월 7일부터 1단계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노조는 이날부터 정시 출·퇴근, 점심시간 엄수, 휴가 사용에 들어갔고, 2단계 신규 상품 판매 거부, 3단계 업무 집중 시간 집회와 영업점별 순회 파업 등 게릴라성 부분 파업을 거쳐 전면 파업을 벌이는 투쟁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점 폐쇄 강행, 씨티은행 노동자들의 잔인한 가정의 달

서민정(가명) 씨는 한국씨티은행의 한 지점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의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입니다. 은행 창구에서 입출금 업무를 했던 그는 처음에는 1년마다 계약을 갱신했습니다.

노동조합의 노력으로 2008년부터 계약직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습니다. 2008년 7월부터 2009년 6월까지 3단계에 걸쳐 460명이 무기계약직이 됐습니다. 이어 2012년 3월 16일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금융노조 한국씨티은행지부에 가입했습니다. 정규직들과 같은 노조원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신분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근속 10년이 넘은 그의 연봉은 세금을 떼기 전 3000만 원입니다. 정규직 은행원들의 40%도 되지 않습니다. 다른 은행의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에 비해서도 연봉이 훨씬 낮습니다.

신한은행(838명), 우리은행(3519명), 외환은행(2000명) 국민은행(4200명)에 이어 하나은행 노사는 무기계약직 1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하고 7월 1일 실행할 계획입니다. 은행은 승진의 기회가 제공된다고 말하지만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 차별을 온존시키기 때문에 노동계는 '짝퉁 정규직'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한국씨티은행은 이런 조치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5대 은행 무기계약직 신설 직군 전환

한국씨티은행노조 조성길 정책홍보국장은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면서도 중소기업 생산직 노동자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며, 어디 가서 은행 다닌다는 소리도 못하는 것이 무기계약직 은행원들의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민정 씨는 노동조합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미은행 시절 회사는 은행 창구 텔러들을 위주로 정규직과 다른 별도 사무직군을 만들어 승진과 처우를 다르게 했습니다.

계약직은 아니었지만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중세 신분제도에서와 같은 차별과 설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다행히 노동조합이 나섰습니다. 2004년 파업을 통해 3년에 걸쳐서 사무직군 은행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또 다시 비정규직 은행원들을 창구에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한국씨티은행에는 정규직 은행원이 2710명, 무기계약직이 537명이며, 유기계약직은 10명 정도 있습니다.

올해 노동조합은 임금과 단체협상을 하면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안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거꾸로 190개 점포 중에서 56개 점포를 폐쇄하고 650명을 내쫓겠다고 합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2013년 한국씨티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191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당기순이익 2191억 원, 점포 3분의 1 폐쇄

점포 폐쇄의 불편은 고스란히 고개들에게 돌아갑니다. 민정 씨가 일하는 지점도 인근 3개의 점포가 통합됐습니다. 업무량이 급증했고, 무엇보다 고객 민원이 폭증했습니다. 은행을 걸어 다니다 버스를 타고 찾아온 고객들의 불만을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말단 은행원들이 다 감당해야 했습니다.

점포 폐쇄의 기준도 없이 회사 마음대로입니다. 인천의 한 지점은 지난해 30억 원의 수익을 냈습니다. 직원들의 인건비까지 포함한 비용 12억 원과 은행 본점의 간접 비용을 빼더라도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폐쇄 지점 명단에 포함시켰습니다.

노조 조합원 A 씨가 일하는 서울의 한 지점은 1차로 폐쇄됐습니다. 신설 점포지만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올해 말에는 전국에서 순위권에 드는 지점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은행 평가에서 우수 영업상을 받은 동료도 있었지만 폐쇄됩니다. 지방에 있는 한 지점은 경영 평가에서 최상위를 차지해 엄청난 수익을 냈는데도 없앴습니다. 한마디로 '묻지마 폐쇄'입니다.

A 씨는 "지점의 수익이나 미래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지점부터 없애고 그다음에 사람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며 "통합되는 지점에 빈자리는 2~3자리인데 16명이 그곳으로 가면 나머지는 알아서 나가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씨티은행 노동자들은 점포 폐쇄 발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야비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말합니다. 회사는 지난 4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폐쇄하는 점포를 발표해 왔습니다. 매주 살생부를 발표하면서 노동자들을 극도의 불안과 공포감에 휩싸이게 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순이익 최상위 지점도 '묻지 마 폐쇄'

씨티은행노조는 해외 용역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씨티은행은 당기순이익의 절반에 해당하는 1390억 원을 해외 용역비로 지출했습니다. 국민은행의 552억 원과 비교해 약 3.5배에 달합니다.

해외 용역비는 2004년 한미은행 인수 이후 2005년 437억 원을 시작으로 조금씩 늘려오다 2012년 1370억 원, 지난해에는 139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 누적된 금액만 1조2185억 원에 달합니다.

노조는 본사가 배당금이 아니라 용역비로 돈을 빼가는 것은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습니다. 배당금이 아닌 용역비를 이유로 해외 송금을 할 경우 국내에 낼 세금의 30% 정도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배당금도 장난이 아닙니다. 씨티은행은 2004년부터 총 6번의 배당금을 책정해 모두 5588억 원을 본사로 보냈습니다. 국세청이 용역비를 인정하지 않아 법인세를 부과하고, 금융감독원이 과도한 배당금 책정을 지적해도 해외로 돈 빼내 가기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입니다.

3월 31일 한국씨티은행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의 지난해 보수 총액은 28억8700만 원으로 은행권 연봉 1위를 차지했습니다. 노조는 하 행장이 국민은행을 비롯한 대형 은행장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은 이유가 많은 해외 용역비와 배당금을 챙겨 본사로 보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해외 용역비와 배당금으로 해외로 돈 빼가기?

회사의 정리해고 1순위에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많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정 씨처럼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주로 창구에서 텔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65개 점포가 사라지면 그만큼 창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은행원들은 정규직보다 약자이기 때문에 더욱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2004년 파업 당시 민정 씨는 노조 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파업을 해도 지점에 나가서 일을 했습니다. 파업으로 인해 은행 업무가 차질을 빚어 민원이 폭주했고, 비정규직 은행원들이 이를 온 몸으로 막아야 했습니다.

민정 씨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정규직과 같은 조합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기계약직의 고과 평정을 고위급 정규직들이 하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에 가입한 기간이 짧아 아직 조합원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민정 씨는 파업에 적극 참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지혜를 모으고 고통 분담을 할 방안을 찾는 것이 양심이 있는 경영자입니다. 그런데 씨티은행은 회사가 어렵다며 650명을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면서 최대의 해외용역비와 배당금, 은행장 연봉을 챙기고 있습니다.

오직 이윤과 탐욕 때문에 비정규직 선원들을 고용해 세월호를 침몰시킨 청해진해운과 씨티은행 경영진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민정 씨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외쳤던 것처럼 '함께 살자'며 투쟁을 선택한 노동조합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청해진해운과 다를 바 없는 씨티은행 경영진

하지만 정리해고를 막아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양심보다 돈이 먼저고, 법보다 주먹이 빠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앞세워 만반의 법률적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심지어 회사에서 개인에게 전화할 때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김앤장에서 통화 문구까지 써주며 자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조 조성길 국장은 "회사는 김앤장에게 650명이 나가면 5억 원, 500명 이상이 나가면 1억 원의 성공 보수를 받기로 했다"며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는데 사망자를 늘리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법원도 노동자들의 편이 아닙니다. 노조가 법원에 제출한 은행점포 폐쇄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지난 2일 서울지방법원은 "점포 폐쇄는 한국씨티은행 측이 소매 사업 부문의 수익성이 악화한 데 따른 경영상의 결정권으로 단체교섭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공장을 멈추는 생산직 노동자들과 다르게 은행원들의 파업은 효과가 미미합니다. 은행의 수익은 주로 대출과 펀드에서 나는데 파업을 한다고 다른 은행으로 옮겨 갈 수 없습니다. 은행에서는 파업에 콧방귀도 안 뀝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 많이 자르면 김앤장 성공보수?

1998년 현대자동차 노조는 36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을 통해 정리해고를 277명으로 줄이고, 1999년과 2000년 무급휴직자와 정리해고자를 복직시켰습니다. 2001년 1750명의 정리해고가 이뤄진 대우자동차는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을 통해 2006년 5월까지 복직 희망자 전원이 복직됐습니다.

2009년 2646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진행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전국을 뒤흔든 77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과 투쟁을 통해 올해 2월 7일 쌍용차 153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끌어냈고, 47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에 맞서 3만 명의 시민들이 '노랑봉투'라는 이름으로 13억 원이 넘는 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무력화된 KT는 사용자들이 정리해고라는 무기를 사용하기도 전에 '희망퇴직', '명예퇴직' 등의 이름으로 스스로 해고를 택했습니다. KT는 2003년 5505명, 2008년 550명, 2009년 5992명의 직원을 내보낸 데 이어 2014년 4월 수리·영업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전 임직원 3만2000여 명의 25.7%에 달하는 8304명이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도록 만들었습니다.

KT는 본사에 이어 계열사 구조조정과 통폐합을 통해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직원을 1만 명 미만으로 줄인다는 계획입니다. 노동절을 사흘 앞둔 지난달 28일, KT의 한 여성노동자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했습니다.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3년 11월까지 확인된 것만 총 24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무력화된 노조에서 대규모 강제퇴직도, 250명에 달하는 자살도 사회적 관심과 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노조, 정리해고 위협에 8304명이 스스로 나간 KT
KT뿐만이 아닙니다. 보험업계 1위 기업인 삼성생명은 직원 6700명 가운데 15%인 1000명을 감축하기로 했습니다. 삼성증권은 점포를 축소하고 대대적인 희망퇴직 접수에 들어가 500명가량을 줄일 계획입니다.

삼성카드도 조직 통폐합을 통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삼성중공업은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조직 통폐합에 들어가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등 건설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도 임박했습니다.

현대, 동부, STX그룹도 대규모 구조조정과 감원에 들어갔습니다.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과의 합병 과정에서 1000여 명을 감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한화생명, 하나대투증권도 희망퇴직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거나 무력화된 사업장에서 사실상의 정리해고에 해당하는 대규모 인원감축이 벌어져도 어떠한 저항과 투쟁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1998년 전국을 휘감았던 희망퇴직, 정리해고, 구조조정의 광풍이 2014년 다시 몰아치고 있습니다. 회사는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2012년 12월 26일,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하던 박근혜 당선자의 약속은 오래 전에 바닷속으로 침몰했습니다.

조성길 국장은 한국씨티은행 노동자들은 KT처럼 회사와 정부가 시키는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침몰당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쌍용차 노동자처럼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고 합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웠던 것처럼 지금 한국씨티은행의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에 나섰습니다. 씨티은행노조의 파업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양심과 탐욕의 싸움입니다.

비정규직 은행원 서민정 씨가 가만히 있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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