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정동영,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수신문> 창간 15주년 기념식에서 조우했다.
이날 정 전 총장은 '자립'을 강조한 반면 김근태 전 의장은 '참여와 결단'을 촉구했다. 세 사람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 나란히 앉아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정 전 의장이 "요즘 언론에 많이 시달리시 않느냐"고 묻자 정 전 총장은 "뭐 시달릴 게 있나"며 가볍게 화답했다.
이에 신중식 우리당 의원이 "정동영 전 의장이 (정 전 총장에게) 빨리 나오라, 확답을 달라고 하니 시달리는 것 아니냐"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전날에도 정 전 총장은 부산대 강연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열흘 전 문국현 사장을 만났다.상당한 호감을 느꼈다"고 말했고, 손 전 지사와의 회동 가능성도 열어뒀다.
"목전의 표계산에만 몰두하는 구태 벗어나야"
정 전 총장은 이날 '한국 지성사회의 반성과 과제'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유난히 '지성인의 현실참여'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정 전 총장은 특히 "지성인인 남의 힘에 기대려는 구차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자격도 갖추지 않았으면서 자신을 과대선전 한다든지, 남의 문전에 기웃거리며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찬 독자신당 추진설'이 나오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구여권의 기존 정치세력에 기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혔다.
정 전 총장은 "지성인은 자립하는 사람이다. 학자든, 법률가든, 언론이이든, 예술가든, 영화인이든, 기업인이든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지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첫 번째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정 전 총장은 '동굴의 비유'를 언급하며 "동굴 밖으로 나와 밝고 넓은 세상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면서 "동굴 속 사람들에게 바깥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그들을 어둠 속에 남겨둔 채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경우와, 저 밖에 밝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캄캄한 동굴로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총장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캄캄한 어둠에 싸여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우리나라 지성인들은 얼마나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법조인, 학자,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과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지성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히 하고 바로 서 있을 때 그러한 혼탁과 어두움은 오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랬을 때 우리 정치도 이전투구의 정쟁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앞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정치권 전반을 비판하면서 "목전의 표계산에만 몰두하는 구태를 벗어나 국민들을 위해, 나라 걱정을 대신하는 지성적 태도가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근태 "참여와 결단…그 말씀 드리러 왔다"
이날 강연 직후 즉석에서 이뤄진 축사에서 김근태 전 의장은 "정운찬 전 총장님 말씀 잘 들었다. 느끼고 배운 것이 많다"면서 "교수님들께서 4.19 혁명에서 그랬던 것처럼 참여와 결단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말씀 드리러 왔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다"면서 "저희가 부족해 이렇게 된 측면이 많다.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저희들은 외통수에 걸려 있는 느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정운찬 전 총장의 결단을 촉구한 정동영 전 의장은 이날은 별다른 언급을 삼갔다. 그는 "대학총장님들, 석학들께서 나와 계신데 물에 기름처럼 정치인이 몇 사람이 왔다. 게다가 공교롭게 지지리도 인기 없는 우리당 소속 의원들만 나왔다"면서 "교수신문이 15돌 생일을 맞이했다. 잘 되리라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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