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 항해사 김성수(가명·57) 씨는 배 안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습니다.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것도 충격이지만, 침몰 초기에 빠져나온 사람들을 제외하고 정부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4월 29일 현재, 세월호에 탑승한 476명 중 174명이 탈출했고 193명 사망, 109명 실종 상태입니다. 초기에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한 302명 중 정부가 구조한 사람은 0명입니다. 육지에서 바로 보이는 수심 30m 바다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한 학생의 아버지는 아이들 전원이 몰살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성수 씨는 국내선 화물선을 타고 평택, 광양, 포항, 마산 등 주요 공업도시를 돌며 선주들의 화물을 실어 나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항해사 자격증을 따면서 시작한 선원 생활이 30년을 훨씬 넘었습니다.
육상에서 보낸 시간도 있지만 인생 대부분을 바다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화물선을 운항하지만 한참 동안 연안에서 제주까지 다니는 여객선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을 싣고 육지와 제주를 항해했던 그는 이번 세월호 참사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배 안에서 들은 세월호 침몰 소식
그는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가져온 여객선을 개조해 5층으로 높이고 탑승 정원을 116명으로 늘렸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세월호가 운항하면서 잠깐 정전이 됐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짧지 않은 승선 경험으로 봤을 때 모두 안전에 치명적입니다.
배를 증축하면 무게 중심이 위쪽으로 올라가 배는 복원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운회사의 돈 욕심 때문에 안전은 뒷전이었던 겁니다. 만약 정전이 됐다면 좌현으로 15~20도 틀었다가 오른쪽으로 꺾어도 돌아가지 않게 됩니다. 경험이 많고 훈련된 항해사였다면 긴급하게 비상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그는 5년 넘게 여객선을 탔지만 개조한 배를 탄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이후에 밝혀진 뉴스들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국내 166척의 연안 여객선 가운데 탑승 인원과 화물을 늘리기 위해 구조를 변경한 여객선이 31척으로 전체의 19%에 이릅니다.
청해진해운은 2012년 9월 일본에서 18년 동안 운항해 수명을 다한 배를 싼값에 수입했습니다. 일본에서 쓰다 버린 배를 가져와 돈을 벌게 해준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여객선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대폭 완화했기 때문입니다.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20년 이상 된 여객선은 67척이나 됩니다. 전체 여객선의 30%가 넘는 고물 배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지금도 많은 승객을 싣고 운항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안전 검사와 관리를 선주들의 이익단체에 위탁했습니다. 해운사들이 출자금을 내서 만든 단체인 한국선급은 46개 가운데 1개밖에 작동하지 않은 구명벌을 검사하면서 양호 판정을 내렸고, 해운조합은 화물 초과 적재를 단속하기는커녕 승객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음주운전 단속을 주류회사 연합회에 위탁하거나 술집 연합회에 외주화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음주운전 감독을 술집 연합회에 위탁한 것과 마찬가지
배를 타는 선원들은 화목한 가정생활을 포기했습니다. 원양어선만이 아니라 국내선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물선을 운행하는 선원들은 1년에 한 번 연가를 받아 집에 가거나, 약간의 여유 인원을 두고 몇 명씩 돌아가며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다녀올 수 있습니다.
성수 씨의 월급은 연봉으로 5000만 원 정도입니다. 동료들의 급여도 비슷합니다. 그와 동료들은 해운 회사의 정규직이고, 노동조합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경험과 훈련으로 배에 불이 나거나 침몰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승조원들이 각각 어떤 역할과 임무를 가지고 비상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해운회사는 선원들과 1년 단위로 계약서를 씁니다. 회사는 돈 욕심 때문에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선원들을 채용합니다. 계약직 선원들은 월급이 훨씬 적습니다. 노조가 없는 회사의 사정은 더욱 열악합니다. 젊은 항해사들은 이 배, 저 배를 떠돌아다닙니다.
여객선 사정은 더욱 열악합니다. 10년 전 육지와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의 항해사로 일했을 때 성수 씨의 월급은 160만 원 정도였습니다. 배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면 출항 준비를 합니다.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을 태우고 배를 운항합니다. 제주에 도착하면 배를 청소하고 다시 운항 준비를 합니다. 승객들을 태우고 항해를 하고 밤늦게 항구로 돌아오는 생활입니다.
호기심과 장난기 많고, 혈기왕성한 학생들을 태우고 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화재 위험이 많은 화물칸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찾아내는 일부터 배 멀미하는 학생들을 돌보고 배설물을 치우는 일까지 모두 선원들이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 인간다운 삶도 포기하고, 온 몸을 던져 일했던 그에게 주어진 월급 160만 원. 저축은커녕 아이들 학비도 댈 수 없었습니다.
제주행 여객선을 항해했던 기억
지난해 청해진해운이 118명에 대해 쓴 안전교육 비용은 54만1000원이었습니다. 1인당 4600원으로 안전교육을 했다는 것입니다. 2012년에도 138만5600원에 불과했습니다. 1인당 1만 원도 안 되는 비용입니다. 청해진해운은 제주도로부터 매년 3000만 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지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청해진해운만이 아닙니다. 국내선 여객선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밤늦게 출항해서 12시간 걸려 제주도에 점심에 도착하면, 여객선을 정리하고 화물을 싣고 승객을 받고 다시 제주도를 떠납니다. 훈련할 시간이 없습니다.
화물선이야 승객들이 없기 때문에 운항하면서 훈련을 할 수 있지만 여객선은 그렇지 않습니다. 훈련을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5년 넘게 여객선을 운항하면서 한 번도 훈련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항만청에 제출하는 항해일지에는 훈련을 한 것으로 기재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계약을 맺는 비정규직 선원이 다시 재계약이 될 수 있을지 모르는데 훈련을 요구할 수도 없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습니다. 저임금을 받으며 여러 배를 떠돌아다니는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선원의 신성한 의무와 사명감은 '공자님 말씀'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임금, 극심한 노동 강도, 장시간 노동, 고용 불안으로 인해 젊은 선원들은 국내선을 외면합니다. 내항선 선원 8269명 중 50대 이상이 6903명으로 83.4%를 차지한다는 2013년 선원선박 통계자료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젊은 선원들이 국내선을 외면하는 이유
세월호 침몰 이후 여객선은 '멘붕' 상태입니다. 국내 여객선만이 아닙니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를 운항하는 부관훼리는 이달 말로 예정된 단체 여행객 가운데 3000여명 예약을 취소됐고, 다음 달 예약된 단체 여행객 2000여 명의 예약도 취소 요청됐습니다.
부산-후쿠오카 간 대형 카페리를 운항하는 고려훼리도 단체 여행객 2500명이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부산항망공사는 부산과 일본을 오가는 여행객만 현재까지 1만여 명이 예약을 취소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국내 여객선과는 달리 국제 여객선은 인원과 화물 적재가 엄격합니다. 여권과 비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승선 인원을 모르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화물도 수입과 수출 통관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신고와 다르게 적재하는 일도 없습니다. 탑승 인원조차 모르고, 적재한 화물의 무게조차 모르는 국내선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A 해운사의 해양 업무를 하는 선원들과 육상 업무를 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같은 회사 소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원들의 소속이 달라졌습니다. 회사는 자회사를 만들어 선원을 채용하고 관리합니다.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서입니다.
국내 여객선보다 철저한 국제 여객선, 그러나…
김성수 씨는 30년 전에는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대우는 좋은 직업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처음 선원에 발을 내디뎠을 때 월급은 현재 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5급 공무원의 3~4배에 달했습니다. 힘들어도 돈을 벌려면 배를 타라고 하던 시절입니다.
A 여객의 한 사무직 노동자는 "20년 전 같은 여객선 회사에서 일해도 선원은 육상 업무를 하는 사무직의 두 배가 넘는 월급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전문 교육 과정을 거쳐 회사에 들어오고,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하고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일해야 하며, 야간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도로스'라는 자부심도 컸습니다.
그런데 2~30년이 지난 지금, 선원의 처우는 말이 아닙니다. 선원의 월급은 사무직 노동자들과 차이가 없거나 더 낮기도 합니다. 한 배에서 10~20년씩 일하는 항해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노동조건은 열악한데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이직률이 높습니다.
해양대학을 나온 젊은 선원들은 처우가 조금이라도 나은 회사로 떠납니다. 국비로 교육을 받고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배를 타지 않고, 외려 육상 생활을 선호합니다. 선원의 처지가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낮은 월급, 고용불안, 높은 이직률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의 선원들에 대해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비난한 후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남은 선원 15명 전원이 구속됐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무능한 정부가 선원들을 302명 사망·실종이라는 초대형 참사의 제물로 삼고 있습니다.
선원들의 잘못도 큽니다. 그런데 정부가 악마로 만든 이 모 선장은 1년짜리 비정규직이었고, 월급은 270만 원이었습니다. 두 명의 선장이 교대로 한 배를 운행하는 다른 여객선들과는 달리, 청해진해운은 이 모 선장을 여객선 2척에 교대선장으로 등록해 항해를 해왔습니다.
항해사와 기관사들의 월급은 200만 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핵심 부서인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전체 승무원 29명 중 절반이 넘는 15명이 계약직이었습니다. 승선 기간이 1년 이상인 승무원은 아무도 없었고, 당일 연락을 받고 온 일용직 승무원도 있었습니다.
불안한 비정규직 선원들의 항해
선원들은 시넷(seanet.co.kr)에 올라와 있는 구인정보를 보고 일자리를 구합니다. 정규직을 뽑는 회사들도 있지만 계약직을 찾는 해운사들도 많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16일에도 열다섯 개의 구인정보가 올라와 있습니다. 원양어선이나 국제선의 경우는 처우가 좀 낫지만 국내 여객선은 그렇지 못합니다.
선원뿐이 아닙니다. 하늘과 철로와 땅 위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실어 나르고 운송 수단을 정비하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직업으로 여겨지는 항공사 승무원들도 외국인 조종사를 파견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직접적인 공항 업무를 보는 노동자 7100명 중 정규직은 12.6%인 990명, 87.4%인 6100명은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만약 항공기가 이착륙하다 사고가 났을 경우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철도에 사고가 났을 때 구조 활동을 해야 할 승무원도, 선로를 보수하는 노동자도, 버스로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노동자도 점점 비정규직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규제 완화, 위험의 외주화, 일터의 비정규직화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제2의 세월호 사건은 언제든 터질 수 있습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국민의 생명이 침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규제를 '암 덩어리'라고 부르며 규제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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