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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돌아올게"…전출 하루 전, 기관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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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돌아올게"…전출 하루 전, 기관사의 눈물

[현장] 철탑·단식 무기한 농성 돌입…코레일 "고소·고발하겠다"

"형, 울지 마라니까"

동료의 다독임에도 노동환(47) 씨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경부선 여객선을 30년 가까이 운전한 베테랑 운전사 노 씨.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신의 인생 절반 이상을 이곳 서울 수색사업소에서 보냈다.

"울지 마요. 빨리 마치고 막걸리 마시러 가자."

일터이기 이전에 집이자 고향이다. 식구가 다 된 동료들에게 들킬까 그는 흐린 날씨에도 굳이 선글라스를 썼다. 동료들은 그가 "'뻠쁘질'을 많이 해서 찍힌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니다 강제 전출되는 거란 얘기다.

"오늘 아침에 카톡이 하나 왔더라고. 철탑에 올라간 사진을 보냈더라고…."

힘겹게 입을 연 노 씨는 이 두 문장을 내뱉고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덩달아 눈시울이 벌개진 동료들이 손뼉을 치며 격려했지만 그는 결국 마이크를 손에서 내려놨다. 이왕 가는 길, 웃으며 헤어지자며 동료들이 열어준 환송식인데 마지막 말 한마디 남기기도 쉽지가 않다.

▲ 9일 오전 서울 은평 수색차량기지사업소. 강제전출 하루를 앞두고 철도노조 서울 승무지부는 떠나는 동료들을 위해 눈물의 환송식을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우리 안 죽었다. 반드시 돌아오게 하자"

강제전출 시행 하루를 앞둔 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수색차량기지사업소. 이날 오전 5시께 시작된 철탑 농성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 조합원들은 43미터 높이 철탑 아래 천막을 치고 앉았고, 철도공사(코레일) 직원들은 바쁘게 기자들을 찾아다녔다.

"순환전보 관련한 저희 설명 자료입니다." 멀끔한 복장의 코레일 직원이 내민 보도자료는 '사람·세상·미래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철도'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코레일은 이날 "철밥통 지키기에 불과한 철탑 농성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농성자에 대해 추후 업무방해로 고소·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원래 웃으며 동료들을 보내려고 했다. 강제전출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워보겠지만, 코레일이 그런다고 전출 계획을 철회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차량지부 소속 이영익 전 위원장과 유치상 전 사무처장이 '포기하지 않겠다'며 예기치 않게 철탑에 올랐다.

이로써 현장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공간이 됐다. 철탑 농성을 뒤로하고 전출을 가야 하는 이들, 전출을 막아주지 못해 미안한 노조 간부들과 동료들, 그런 이들에게 '괜찮다'며 손을 흔드는 철탑 농성자들. 허병권 승무지부장이 "우리 안 죽었다. 반드시 돌아오게 하자"고 외쳤다.

▲ 9일 오전 5시께 '이대로는 포기 못 한다'며 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 조합원 두 명이 수색사업소 내 43미터 높이 철탑에 올랐다. 왼쪽이 이영익 전 노조 위원장이고 오른쪽이 유치상 전 사무처장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베테랑 기술자·기관사를 순식간에 '초보'로…"말이 안 되는 인사"

서울 승무지부에선 노 기관사와 함께 5명이, 차량지부에선 철탑에 오른 유치상 전 사무처장을 포함한 23명이 전출된다. 28명 가운데 20명은 전출을 희망하지 않은 이들이다.

가장 많은 직위 해제자와 강제 전출자가 나온 차량지부의 하현하 지부장은 "심장이 아프다는 말이 딱 맞다"고 말했다. 그는 "어젯밤과 그제 밤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밤이었다"며 "25~30년 넘게 노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보석 같은 선배들이 떠나게 됐다. '너무 억울하다'며 50대 선배가 눈물을 흘리는데, 심장이 아프더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이번 전보가 파업 보복 조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력 불균형 해소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회사도 사실 이런 방식의 전보가 말이 안 되는 비효율적 조치란 걸 안다"고 말했다.

하 지부장은 "이번에 전보를 가게 되는 선배들은 꼬마 때부터 무궁화, 객차, 화차를 배워 지금은 눈 감고도 정비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사람들"이라며 "전보 갈 곳(문산)에서 다루게 될 차종은 아예 다른데 어떻게 효율적인 인사인가"라고 되물었다. "몇 년 지나면 정년퇴직할 베테랑 기술자들을 작정하고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전출되는 기관사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노 씨와 함께 청량리로 전출된 김남균(40) 씨는 "당분간은 보조 기관사로 남아야 할 처지"라고 했다. 청량리에서는 주로 전기로 움직이는 화물차량이 나가는데, 김 씨에겐 전기차량 면허가 없다.

또 다른 전출자인 정동기(43) 씨는 "새로운 차에 적응하고 새로운 노선을 익히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지금까지 이런 식의 전보 인사가 없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 교육기간과 교육비용, 초보 운전으로 생길 안전 위험까지 생각하면 결코 합리적인 인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 '꼼수는 안 통한다. KTX 민영화 완전 철회하라'는 현수막 뒤로 철탑 농성장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나는 언제 쫓겨갈까"…초조하게 차례 세는 사람들

더 큰 문제는 강제 전출이 이번으로 끝이 아니란 점이다. 코레일은 앞으로 이와 같은 전보를 일 년에 2번씩 정기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은 자신의 차례가 언제가 될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불안에 떤다.

"앉아서들 계산해요. '저 선배가 올해 가니 나는 3년 후에 가겠구나. 그러면 그때 내 애가 몇 살 몇 살이니 전학을 갈 수 있다 없다' 이렇게요. 위축되라고 하는 거죠, 전보는."

"당장은 노조가 반발해 당초 계획보단 전출자가 많이 줄었지만, 한번 (정기 전출) 문이 열렸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 된 거예요."

환송식에는 청량리로 가게 될 조합원을 맞이할 청량리승무지부 박세증 지부장도 참석해 있었다. 박 지부장은 "잘 맞아야죠. '원치 않게' 잘 맞아서 빨리 보낼 겁니다"라고 말했다.

환송식을 마치기 전, 인사를 매듭짓지 못한 노 씨를 대신 정 씨가 동료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오늘 아침에 가서 인사 명령서를 받고 나서 '내 방 빼지 말고 놔두라'고 했습니다. 곧 돌아옵니다. 거기서도 잘 살다가 꼭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어깨 쫙 폅시다. 철도 민영화 꼭 막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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