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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채동욱 보도'의 한국신문상 수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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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채동욱 보도'의 한국신문상 수상에 대해

[주간 프레시안 뷰] '채동욱 혼외아들' 보도는 '청부 보도'?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프레시안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이사장 박인규입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 섬을 탈출해 파리로 돌아와 잠시 황제로 복위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프랑스 언론들은 처음에는 '대역죄인 나폴레옹 엘바 섬을 탈출하다' 식으로 보도하다 막상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자, '황제, 파리에 복귀하시다'라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고 합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그해 6월,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지만, 이 일화는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얼마나 취약하고 간사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거론됩니다.

▲ 26일 자 <조선일보> 8면 기사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보도로 한국신문협회가 주는 '2014 한국신문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위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조선일보>는 3월 26일 지면 전체를 할애해 '탈선 권력에 용기 있는 비판… 이것이 언론 본령'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제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검찰총장의 사적 일탈을 빌미 삼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보다 큰 공권력의 불법행위를 덮기 위한 '청부 보도'라는 느낌이 훨씬 강했습니다.

다 알다시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해 6월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당시 윤석열 검사를 비롯한 수사팀은 18대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실상을 밝혀내기 위해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세훈 전 원장의 기소 시점인 6월 11일을 전후해 채동욱 총장 사생활에 대한 청와대의 내사가 시작됐고, 결국 9월 6일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로 채 총장은 낙마했습니다. 이후, 윤석열 검사를 비롯한 수사팀이 해체되는 등 수사는 흐지부지됐습니다. 만일 채 총장과 수사팀이 관련 수사를 계속했다면, 국가기관 대선 개입 실상이 지금쯤 낱낱이 밝혀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검찰총장도 무시하지 못할 권력입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권력자의 잘못이 있다면 언론은 '용기 있게'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자 한 사람의 사적 일탈과,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대통령 선거라는 민주주의 과정에 불법 개입한 공적 탈선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적인 일탈은 개인적인 비행일 뿐이지만, 국가기관의 공적인 탈선은 전체 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만일 <조선일보>가 "탈선 권력에 용기 있는 비판이 언론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면, 18대 대선 과정에서 행해진 국가기관 대선 개입의 실상을 파헤치는 데에도 그런 용기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는 국정원 감싸기로 일관했습니다.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 아들 보도가 '청부 보도'라는 느낌은 그래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사례에서 보듯 권력 앞에 약해지는 것이 언론의 생리(生理)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언론이 권력의 비리를 비판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민주주의는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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