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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초등학교 주변 호텔 건립 반대가 죄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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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초등학교 주변 호텔 건립 반대가 죄악인가?"

[현장] "학교는 6층, 호텔은 4층…아이들이 호텔 내려다 봐"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우리 학교로서는 관광호텔이 불편하기 짝이 없어요. 법령으로는 호텔과 학교 교문 사이가 50미터 이내면 '절대정화구역'이라는 말을 써 왔어요. (대통령의 '규제는 죄악' 발언 이후) 이제는 그런 말이 의미가 없는 것이죠."

백영현 덕성여자중학교 교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개혁 끝장 토론'에서 학교 근처에 호텔 건립을 규제하는 학교보건법에 대해 "시기에도 안 맞는 편견으로 청년들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막고 있다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발언하면서부터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부는 발 빠르게 대처했다. 2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학교 주변에도 유해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4월 중에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훈령'을 제정해 지자체와 지역교육청 등과 협의해 초·중·고등학교 주변에 호텔 건립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현행 학교보건법상 학교 정문에서 50미터 이내는 '절대정화구역'으로 호텔을 지을 수 없다. 50~200미터인 '상대정화구역'에서 호텔을 지으려면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정부는 상대정화구역의 심의 규제를 완화해 유해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을 짓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 정부는 초·중·고등학교 주변에도 유해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사진은 모텔 26곳으로 둘러싸인 경기도 수원시의 한 어린이 놀이터. ⓒ연합뉴스

"학교는 6층, 호텔은 4층…아이들이 호텔 내려다 봐"

여론의 관심은 대한항공의 숙원사업인 서울 풍문여자고등학교와 덕성여자고등학교, 덕성여자중학교 인근의 7성급 관광호텔 건립으로 쏠렸다. 특히 덕성여중은 호텔 부지와 불과 20~30미터 거리에 있어서 반대가 심하다.

백 교장은 "우리 학교는 6층이고 호텔은 4층인데, 아이들이 더 위에서 호텔 아래를 내려다보게 된다"며 "돌멩이를 던지면 서로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수업 받는 공간이 호텔과 너무 가깝다"고 말했다.

이 지역을 둘러싼 갈등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항공은 학교 50미터 밖에 호텔을 짓겠다며 사업 허가를 신청했지만, 서울중부교육지원청이 불허했다. 이에 불복한 대한한공은 소송까지 갔지만, 2012년 대법원은 "관광호텔과 일반호텔은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켜야 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한항공의 호텔 사업 규제를 완화한다면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훈령'이나 '시행령'으로 뒤집는 셈이다.

게다가 대한항공 호텔 사업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첫째 딸이자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인 조현아(40) 대한항공 부사장이 총괄하고 있다. '재벌 특혜'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교육계는 발칵 뒤집혔다. 백 교장은 "호텔을 짓는 데만 급급해서 주먹구구식으로 허용하는 게 안타깝다"며 "경제 살리는 건 반대하지 않는데, 학교와 호텔이 이웃해서 서로 좋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백 교장은 "지금까지는 '중부교육지원청과 종로구청, 서울시가 모두 호텔 건립에 반대한다'고 말하며 학부모들을 안심시켜왔다"며 "사업이 본격화되면 학부모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옆 호텔?…요즘 안전사고나 성 사고들이 많은데"

2017년 이전이 확정된 풍문여고에서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호텔 건립에 대한 반대가 심했다. 이태권 풍문여고 교사는 "외국인 호텔이 들어서면 사람 왕래가 더 많아질 것이고, 아무리 관광호텔이어도 호텔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유해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며 "호텔이 들어서면 위험시설이 주변에 들어설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복궁 인근뿐만 아니라 당산 지역에서도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안전행정부는 25일 제6차 지방규제개선위원회를 열고 박 대통령에게 민원을 넣은 한승투자개발의 서울 영등포구 관광호텔 사업을 승인하라고 영등포구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규제는 죄악' 발언을 이끈 영등포 관광호텔 사업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호텔 부지가 당산초등학교에서 180미터 거리에 있다는 점이다. 당산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홍대, 영등포 상권이 연결되니 호텔 사업자는 중국인이나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할 것이고 술집 등이 들어설 수도 있다"며 "요즘 안전사고나 성 관련 사고들이 많은데, 초등학교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호감을 얻으려고 하면서, 아이들의 안전한 교육 환경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것 같다"며 "유해 시설이 없는 호텔만 허용한다고 하지만, 한 번 뚫리면 다른 규제도 풀리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육부 장관조차 "등굣길에 교육적으로 유해한 전단지 봤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된 지역도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중학교 주변은 88올림픽 당시 외국인 관광객 숙박시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무총리 훈령으로 숙박업소 설립이 허용됐고, 현재 유흥주점과 모텔 등 93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 유치, 경제 개발'이라는 명복으로 추진된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불러온 난개발이었다.
지난 20일 '규제 개혁 끝장 토론'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규제 완화가 가져오는 우려를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서 장관은 "88올림픽 때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심의를 받지 않고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한 방이중학교에 가 봤는데, 등굣길에 상당히 교육적으로 유해한 전단지 같은 것이 많이 깔려 있거나 벽에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박 대통령에게 "학교 환경과 투자 활성화가 균형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4월 중 훈령을 개정하겠다"고 보고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26일 논평을 통해 "학교정화구역을 무력화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가 선언한 성폭력, 학교 폭력 등 4대악 근절 대책과도 배치된다"며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학생들에게 비교육적 환경을 감수하라는 것이야말로 죄악"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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