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죽었던 '정몽구 보호법', '이건희 보호법'으로 부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죽었던 '정몽구 보호법', '이건희 보호법'으로 부활

[박점규의 동행]<25> 정규직 노조도 침묵할 때 아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38) 씨는 오는 4월 1일 공장으로 돌아갑니다. 2009년 1월 구속돼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공장을 떠난 지 5년 만입니다. 회사가 원직복직이라는 기아자동차 노사 간의 합의 사항을 어기고 다른 공장으로 발령 내지 않는다면, 그는 5년 만에 동료들 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는 2003년 4월 13일 신성물류라는 화성공장 사내 하청업체에 들어와 10년 동안 두 번 구속으로 3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두 번 수배로 3년을 공장에서 보냈습니다. 그를 비롯해 많은 노동자의 희생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고, 이제는 화성공장에만 노조 조합원이 1800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이었던 수억 씨가 2009년 구속돼 2년 6개월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한 이유는 2007년 8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9일 동안 화성공장 도장공장 점거 파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2006년 가을 비정규직법 반대 파업, 2007년 6월 한미FTA 반대 파업, 이젠텍 연대 파업 등 공장 담벼락을 넘어선 연대 파업도 그를 오랫동안 세상과 격리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2년 6월 감옥, 5년 만에 돌아가는 공장

그는 2006년 가을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부가 주장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에 반대하는 파업에 나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국회 앞 크레인에 오르고, 파업을 하고, 농성을 하며 법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의 기간제법이 국회에 상정된 4월부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11월 30일까지 그는 공장과 거리에서 법을 막아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싸워야 했습니다.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처럼 2년 이내에 마음껏 비정규직을 자르는 것을 보호하는 법이었습니다.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효시는 50년 만의 정권 교체로 등장한 김대중 정부가 만든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입니다. 파견법의 제1조 목적에는 '파견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고 인력 수급을 원활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법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사태를 이유로 기업들에 파견 노동자를 자유롭게 쓰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인력 수급을 원활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미안했는지 '고용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고'라는 수식어를 붙여놓고, 법안 이름을 '보호법'으로 붙였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이 법안으로 중간착취를 배제한 근로기준법 제9조와 직업안정법의 예외조항을 만듦으로써 광범위한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를 양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 정부도 파견법의 속임수 그대로 기간제법을 만들었습니다. 제1조 목적에는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 즉,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한다는 수식어를 붙이고, 파견법처럼 '보호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마치 비정규직을 위한 법인 것처럼 속였습니다.

파견법 제정 16년, 비정규직법 제정 8년 만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900만에 육박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만든 두 개의 '보호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장님'을 보호하는 법안이 되었습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사장님 보호법

김수억 씨는 지난달 26일 박근혜 정권 1년에 발표된 담화문을 보고 의아했습니다. 박근혜 씨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합리한 임금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해고 요건을 강화하여 고용 보호 격차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를 위한 모든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남아 있는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3월 한 달 동안만 해운대, 아산, 이천 등 서비스센터 3개 업체와 계약을 해지해 100명의 기사를 길거리로 내몰았는데, 어떻게 비정규직 해고 요건을 강화한다는 것일까요? 도대체 어떤 규제를 없애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 5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 정부 부처는 박근혜 담화를 뒷받침하는 세부적인 계획으로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과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비정규직 상관관계

정부는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을 임금·복리후생 등 측면에서 고의적으로 차별하다 적발되면 차별 금액의 3배 이상을 해당 근로자에게 징벌적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또 정규직과 차별 문제를 제기하는 주체를 대표적인 노동 약자인 비정규직 본인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나 노동조합으로 바꾸고 한 사업장에서 한 명이 차별 인정을 받으면 같은 조건에 있는 다른 노동자에게도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는 올해 상반기 내에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중에는 발효시킨다는 목표로 국회와 함께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 발표에 대해 언론은 마치 박근혜 정권이 비정규직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처럼 '비정규직 차별 징벌적 보상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실효성 없는 기간제법을 조금 개정해 징벌적 보상제나 노동조합에 차별 시정권 부여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스리슬쩍 파견법 개정안과 사내하도급법을 끼워 넣어 통과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연합뉴스>를 비롯한 언론들은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는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 등 28명이 앞서 공동 발의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등 3개 관련 법안을 이런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기본 틀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 지난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 천의봉 당시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며 296일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인근 송전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다. 대법원의 '불법 파견' 판정에도 현대차는 아직까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실효성 없는 기간제법 얼굴마담으로 파견법·사내하도급법 통과

김수억 씨를 비롯해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박근혜가 19대 국회 개원일인 2012년 5월 30일 민생 1호 법안으로 제출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정몽구 보호법'이라고 부릅니다.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위장도급, 불법파견 노동자는 모두 합법 사내하도급 노동자가 되고, 10년 넘게 파견법을 위반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때문입니다.

노동법 학자들과 노동 변호사들은 이 법안을 현대자동차 청부법안이라고 말합니다. 불법파견 재판 과정에서 현대차의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도급'은 전형적인 도급이 아니라 '사내하도급'이기 때문에 일부 근로자 파견과 비슷한 요소가 있어도 곧바로 파견으로 단정할 수 없고 사내하도급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그 내용이 그대로 법안으로 상정되었기 때문입니다.

2012년 6월 사내하도급법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노동계와 야당의 반발로 인해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파견법과 기간제법을 '보호법'으로 둔갑시킨 야당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사내하도급법을 반대했고, 지난 대선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었습니다.

2013년 1월 15일에는 인권이 사라졌다고 비판받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사내하도급법이 최근 대법원이 불법으로 인정한 근로 형태를 합법화할 소지가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인권위는 '사내하도급 문제의 핵심 쟁점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하청 회사와 같은 중간자를 두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고용 형태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 역시 하청업체를 중간자로 뒀더라도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지휘·감독권을 행사했다면 이러한 고용 형태는 불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사내하도급 계약 시 원청업체가 위임한 내용까지 포함할 수 있게 돼 적법 도급과 불법 파견의 구분 기준을 불분명하게 만든다"며 '국제 기준과 헌법과 같은 국내 규범에서 천명하고 있는 직접 고용 의무 원칙에 반한다"고 정확하게 비판했습니다.

국가인권위 '대법원이 불법으로 인정한 근로 형태 합법화할 소지"

2013년 4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사내하도급법이 결국 사내하청을 합법화하는 안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 의견을 표시함으로써 법안이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노동계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사내하도급법 강행을 포기하고, 55세 이상 파견 업종 전면 허용이라는 정책을 통해 파견법 개정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 아니냐고 판단했습니다.

정권과 새누리당이 무덤으로 들어가려던 법안을 파내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해 7월 14일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무노조 삼성이라는 철옹성에 파열구를 내며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삼성전자서비스에 정규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옷을 입고 삼성의 지시에 따라 삼성전자 제품만 고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삼성 소속이 아니라 하청업체 바지사장 소속이라는 사실과, 성수기에는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하고, 비수기에는 100만 원도 벌지 못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삼성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급등했습니다.

'배고파서 못 살았다"며 천안센터 최종범 씨가 자결한 후 연일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는 항의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삼성이 자신과 무관한 하청업체 바지사장 소속이라고 주장하면서 3월에 3개 업체에 대한 계약 해지를 통해 대량 해고를 했지만 5개 서비스센터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등 삼성에 맞선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논란은 바로 '사내하도급법'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만 있으면 단박에 해결됩니다. 무덤으로 들어가려던 사내하도급법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더불어 세상에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정몽구 보호법'과 현대자동차 청부법안으로 시작한 사내하도급법은 이제 '이건희 보호법'이 되었습니다.

▲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삼성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할 수리 기사를 '불법 파견' 형태로 쓰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7월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삼성과 싸우고 있다. 경제혁신 3개년게획에 포함된 '사내하도급법'이 제정되면 이들이 그간 벌여온 싸움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불법 파견은 자동으로 '합법' 도급이 된다. ⓒ연합뉴스

골치 아픈 불법파견 논란 한 방에 해결할 도깨비 방망이

정부와 새누리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라는 이름과 비정규직 해고요건 강화라는 포장지에 감춰진 무시무시한 사내하도급법을 상반기에 통과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지난 3월 13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삼성전자서비스, 인천공항, 티브로드, KTX 승무원 등 10여 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와 함께 정부의 사내하도급법을 막아내고, 나쁜 일자리 추방운동을 벌이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운동은 조용합니다. 한국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총도 공식적인 성명서 한 장 나오지 않았습니다. 금속노조와 현대, 기아자동차지부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파견법과 기간제법이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를 흔들었던 것처럼, 사내하도급법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를 겨냥한 법이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를 뒤흔들 법입니다. 파견법과 기간제법이 정규직 일자리를 흔든 강풍이라면 사내하도급법은 초대형 태풍입니다.

정부의 주장대로 이 법안이 올 상반기에 통과되고 2015년부터 시행되면 현대, 기아, 한국지엠 등 자동차 완성사,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회사,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 모든 제조업의 재벌 회사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게 됩니다.

정규직 일자리 뒤흔들 초대형 태풍에 조용한 노동계

더욱 끔찍한 것은 사내하도급법이 제조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인천공항, 이마트 등 공공부문과 서비스부문을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불법 논란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정규직 일자리는 급속도로 '합법' 사내하도급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정년을 몇 년 앞둔 노동자가 아니라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사내하도급법의 총구를 비켜나갈 정규직 노동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강력한 정규직 노조가 있는 사업장도 정년퇴직자 자리를 사내하도급 노동자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사내하도급 '보호법'은 파견법, 기간제법과 더불어 '사장님 보호법' 3종 세트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사장님 보호법'의 '종결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수억 씨는 2006년 기간제법이 통과될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이 법안을 자신들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정규직 노동자의 자녀들은 기간제법의 적용을 받는 '촉탁직'으로 일하면서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되고 있습니다.

정규직 일자리를 뒤흔들 초강력 태풍인 사내하도급법의 위력은 더욱 강력할 것이 분명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싸움만으로는 이 악마의 법안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김수억 씨는 이 법안을 막아내기 위해 '뻥 파업'이 아니라 진짜 '총파업'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힘을 합쳐 사내하도급법을 막아내는 일, 그가 5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가 동료의 복직을 위한 싸움과 더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