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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 재벌 먹여 살리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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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 재벌 먹여 살리는 데 쓰인다

[시민정치시평] 보수에 이용되는 기금, 진보가 고민해야

한국의 진보가 보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맨날 밀리는 분야 중 하나가 국민연금과 기금 사용 문제 부분이다. 전 국민이 매달 내는 국민연금은 2013년 말로 자그마치 430조 원이 쌓여있다. 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 많으며, 한국 GDP의 33%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금기금을 쌓아놓았다는 일본, 스웨덴보다 더 많은 연금기금을 쌓아두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는 이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나아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진지한 관심이 없다.

국민연금기금은 국민들이 한 푼 두 푼 내어 조성한 돈이다. 그런데 막상 기금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국민들은 기금을 사용하는 데 발언권을 행사하기 힘들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국민연금기금 430조 원 중에 100조 원 아니 50조 원만 별도로 떼서 전국에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건설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주택난 혹은 전세난 해소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건설하면 결혼연령과 초혼 연령을 앞당겨 출산율을 높이는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막대한 기금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공공어린이집, 공공노인요양원, 국공립병원들을 신설하여 전 국민의 복지수준을 결정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이건 상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대부분 국공채나 주식을 매입하는데 투자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국내 주식에 약 80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 금액은 우리나라 주식시가총액의 6%에 해당되며 대부분 삼성, 현대 등 재벌회사들의 주식이다. 국민연금은 노동자 탄압으로 문제가 된 이마트의 주식도 1000억 원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의 노후를 위해 국민들이 한 푼 두 푼 내어 마련해 둔 국민연금기금이 역설적으로 재벌들의 기업 운영을 돕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의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진보는 이 역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재벌 개혁과 노동권의 확립이 진보의 중요한 의제라면 국민연금기금 문제도 이 시각에서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악덕기업을 정상화시키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사용하자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다. 하지만 주식 의결권 행사는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식 지분이 회사당 10%를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론은 조성할 수 있으나 결정적 도구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올바른 주식 의결권 행사 못지않게 천문학적인 국민연금기금 자체를 어떻게 진보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스웨덴의 연금기금은 중소기업 주식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별도로 조성하여 운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성장에 한국의 미래와 고용 창출 능력이 걸려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한다. 그렇다면 국민연금기금을 유망 중소기업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공공복지시설에 국민연금기금을 투자하는 것은 어떤가? 정부가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을 위해 시설 매각을 하고 이를 국민연금기금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 진보는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가?

정부가 발행하는 국공채와 각종 공단이나 공사에서 발행하는 특수채권 등 공공부문 채권에도 무려 160조 원 이상이 투자되어 있다. 재벌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도 무려 29조 원이나 보유하고 있다. 국공채에 대한 투자는 흔히 안정적인 기금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에 기금입장에서 매우 유리하다고 인식된다. 하지만 생각해 볼 지점이 많다. 국민연금기금은 한 해에 30~40조 원씩 새로 여유자금이 생긴다. 때문에 국가에서 채권을 발행하면 국민연금기금에서 안정적으로 인수해준다. 어떻게 보면 국민연금기금 때문에 국가나 공사가 채권을 쉽게 발행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국가의 재정규율을 약화시키고 국가부채를 늘리는 부작용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 등 무리한 재정투자 사업을 벌이는데 국민연금기금이 사실상 큰 지지대 역할을 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이러한 아이러니한 기능에 대해 진보는 제대로 된 문제의식도 없어 보인다.

많은 국민들은 국민연금기금이 많이 쌓이면 나중에 이 돈으로 연금을 받게 되니까 매우 안정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의 상당 부분은 채권에 투자되어 있다. 그런데 채권은 정부가 나중에 갚아야 하는 돈이고, 그 돈은 우리의 후손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되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기금이 국공채로 갖고 있는 자산이 커지면 커질수록 후세대들이 갚아야 할 돈의 규모는 커지는 것이다. 안정적인 연금 지급을 위해 채권을 많이 사면 살수록 오히려 후세대의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기금을 많이 적립하는 것에 대해 보수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실제 그대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진보는 그냥 따라가야 하나?

기금 규모가 크다고 해서 연금 재정이 안정된 것은 아니다. 주식, 채권에 들어가 있는 돈은 아무리 많이 쌓여있어도 경제가 한번 휘청거리면 결정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가령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 우리나라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고 당시 주식과 채권을 보유한 사람들이 많은 손해를 보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주식을 많이 보유하던 스웨덴과 캐나다의 연기금은 수익률이 마이너스 28%까지 간 적이 있고 아직도 기금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앞으로 50년간 천문학적인 돈이 축적된다. 50년 동안 한 번도 경제 위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경제위기가 오면 수백조 원의 국민연금기금에 결정적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식 의결권 행사나 수익률 등락은 어찌 보면 국민연금기금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보수는 43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투자하고 요리하여 그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돈의 대부분은 평범한 노동자와 시민들이 낸 돈이다. 진보는 그 막대한 기금을 진보를 위해 하나도 활용하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보아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은 진보 정치세력은 국민연금기금의 본질과 진보적 활용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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