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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네덜란드 이긴 게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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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네덜란드 이긴 게 기적!

[프레시안 스포츠] 이승훈, 이상화, 모태범이 자랑스러운 이유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의 기세가 무섭다. 네덜란드는 남자 1000미터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12일까지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5개 경기에서만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를 기록했다. 한 마디로 메달 싹쓸이다. 지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금메달을 3개나 획득한 한국의 돌풍에 깜짝 놀랐던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의 저력이 다시 되살아 난 셈이다.

■ 네덜란드 남자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스벤 크라머가 8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5000m 경기에 출전해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뒤 플라워 세리머니에서 단상에 올라 네덜란드 응원단을 향해 손을 들고 있다. 사진 왼쪽은 2위 얀 블로 크후이센, 3위 요리트 베르그스마.ⓒ연합뉴스

러시아에서 보복 테러 당한 네덜란드의 동성애자 외교관

동계 올림픽 덕분에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소치는 축제의 무대가 됐지만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까지 네덜란드는 러시아와의 외교전에서 스타일을 구겼다.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네덜란드 지도자들이 국민의 심정을 적절히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와 네덜란드는 지난 4월부터 충돌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암스테르담에 방문했을 때 네덜란드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그에게 항의했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러시아에 대한 항의였다. 세계 최초로 동성애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한 국가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10월에 더 복잡해졌다. 네덜란드 경찰은 아동학대 혐의를 받고 있던 네덜란드 주재 러시아 부대사를 잠시 동안 체포했다. 외교적 면책 특권을 가진 러시아 외교관의 체포 소식에 네덜란드 외무부 장관은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했다.

그 뒤 모스크바 주재 네덜란드 부대사는 집단 폭행이라는 보복 테러를 당했다. 러시아인이 자행한 것으로 보이는 이 테러는 러시아 외교관 체포에 대한 보복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네덜란드 부대사는 동성애자였다.

감금된 네덜란드 환경운동가와 '소치의 굴욕'

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린피스 활동가 그룹에 속한 네덜란드 선박은 북극에서 러시아 석유 탐사선의 진로를 막으려고 했다. 이에 분개한 러시아는 네덜란드 시민 2명이 포함된 환경운동가들을 체포해 감금시켰다. 러시아는 네덜란드가 국제해양법원에 이 문제를 고소하자 마지못해 이들을 풀어줬다.

이 같은 외교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의 국왕부부와 총리는 소치 올림픽에 참가했다. 미국,영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등 영미, 서구권의 정치 지도자들이 소치 올림픽 행사에 참가하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환경운동가들의 석방에 대한 보답으로 소치 올림픽에 참석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여기에는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으로 네덜란드의 경제적 이익을 지킨다는 명목까지 추가됐다. 네덜란드 국민들이 소치 동계 올림픽 개막행사를 보면서 개운치 않았던 이유다.

빙상은 네덜란드의 전통적 일상문화

그렇다면 네덜란드 빙상은 어떻게 '소치의 굴욕'을 '소치의 환희'로 바꿀 수 있었을까?

인구 1700만 명에 불과한 네덜란드가 세계 빙상 무대를 휩쓰는 이유는 스케이트가 네덜란드에서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서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참여도라는 측면에서 네덜란드처럼 스케이트가 사랑 받는 국가는 없다. 축구와 함께 스피드스케이팅은 네덜란드 TV에서도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다뤄지고 있다.

겨울 동안 얼음이 어는 기간이 길지 않은 네덜란드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정도로 얼음이 두꺼워지면 마치 명절처럼 밖으로 나가 스케이트를 즐겼다. 스케이트를 탄 뒤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춥고 고된 겨울을 이겨내는 네덜란드만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근대적 규칙을 갖춘 스피드스케이팅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각 지역마다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스케이트 경주 대회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의 청년들에게 이런 대회는 로망이었다. 대회에서 우승하면 어마어마한 상금과 함께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어서다.

지역에서 성행하던 경주 대회는 국가에 대한 의식이 싹트면서 전국화되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이후 제도화된 스피드스케이팅 대회가 정착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 대도시를 중심으로 400미터를 한 바퀴로 규격화한 아이스 링크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지역 경주대회의 위상은 약화됐다.

하지만 네덜란드 스피드 스케이팅은 여전히 작은 농촌 마을에서 성행했다. 도시 노동자를 근간으로 발전한 네덜란드 축구와는 달랐다. 많은 네덜란드의 스피드스케이팅 영웅들이 해안간척지나 지방에서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자연환경, 세계 최고의 평균신장과 인프라가 합쳐진 네덜란드 빙상의 힘

네덜란드의 풍요로운 빙상 문화를 창조한 것은 자연환경이다. 역설적으로 국토의 25%가 해수면 보다 낮은 척박한 자연환경은 스피드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 야외에서 겨울철에 스케이트 타는 사람이 많은 것도 네덜란드가 운하와 수로의 나라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변이 넓은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의 또 다른 힘은 신체조건이다. 세계에서 남성 평균신장이 183센티미티로 가장 큰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스피드스케이팅은 적합한 스포츠 중 하나다. 스피드스케이팅 기록향상에 보폭과 한 번 얼음을 지쳤을 때 전진하는 거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키만 크다고 기록이 잘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네덜란드 선수들의 노력이 가미됐다. 소치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대부분의 네덜란드 선수들은 강도 높은 사이클 훈련으로 다리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또 다른 일상 문화인 자전거는 이처럼 빙상 훈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인프라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빙상 대표팀이 소치에 입성하기 전, 마지막 훈련지는 네덜란드 헤렌벤이었다. 헤렌벤에는 월드컵 대회를 자주 개최하는 티알프 아레나가 있어서다. 실내 링크로 1986년 개장한 티알프 아레나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성지로 통한다.

빙질도 최상급이지만 실내 온도를 조정하는 시스템을 갖춰 개장 직후부터 숱한 세계 신기록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티알프 아레나 외에도 전국에 850개의 실내 아이스링크를 가지고 있다. 국제 수준의 아이스 링크가 태릉 국제 스케이트장 하나 밖에 없는 한국과는 엄청난 격차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남자 스케이터로 평가받는 스벤 크라머도 헤렌벤 출신이다. 헤렌벤이 위치한 네덜란드 북부 지역인 프리스란트는 운하의 길이가 길어 지역 스케이트 경주 대회로 유명한 곳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화폭에 자주 담았던 16세기 네덜란드 르네상스 화가 피테르 브뤼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냥꾼의 귀가'는 오래 전부터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는 게 서민들의 오락거리였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 뿌리 깊은 전통은 이번에도 네덜란드 인에게 '메달 사냥꾼의 귀가'를 지켜볼 수 있는 기쁨을 주고 있는 셈이다.

▲ Pieter Brueghel de Oude, 1525~1569), '사냥꾼의 귀가'(혹은 '눈 속의 사냥꾼')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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