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젠가부터 책을 읽을 때 눈에 띄는 테마가 있다면 바로 '내향성의 장'이라 이름 붙이고 싶은 것들이다. 내향성의 장은 활달하고 친교에 능하며 과감성이 위주였던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에게 가린 어느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감성 대신 섬세함을 대동한 감수성을, 활달함과 친교 대신 고독과 사색을.
비유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신입생 철수는 다가오는 학과 전체 엠티가 두렵다. 엠티 전날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아, 장기자랑 때 노래시키겠지? 아는 노래 없는데' '술 먹으면서 게임한다고 한다면 어쩌지? 나 그거 진짜 약한데' '발에 땀이 많은 편인데. 신발 벗는 곳일 텐데 큰일이네, 양말 여러 켤레 챙겨가야겠다.'
잠 못 드는 밤. 다음 날 그의 선택은 아침 일찍 슬며시 문자를 보내놓는 것이다. '선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요. 꼭 가고 싶었는데 죄송합니다.' 노하우 있는 학생회 간부라면 이 문자를 보고 뭔가 냄새를 맡을 것이다. 하지만 철수에게 그러한 반응을 신경 쓰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결국 '모임 피로감'에서 벗어나 그냥 나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누군가와 부대끼며 일종의 연극적 자아를 드러내야 하는 시간. 그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으로부터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이런 고민을 해본 적 있는 이라면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노명우 지음, 사월의책 펴냄)는 꽤 적절한 '자기만의 방'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오늘날 고독과 독립이란 영역을 지키기 위해 쓰는 심리적 에너지를 어떻게 볼지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싱글리즘이라는 개념을 통해 저자는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해 만들어내는 상징적인 관념"과의 쟁투를 선보인다.
자연스레 책은 고독과 독립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언급하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에 반박하는 전개를 따른다. 타인에게 내가 이런 시선으로 낙인이 찍히진 않을까 하는 염려의 농도. 실제 생활에서 그 농도가 점점 진해지고 있단 걸 되돌아보며 책을 읽는다면 그 묘미가 배가되는 내용이 책 속에 담겨 있다.
2.
저자의 견해에서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향취가 곧잘 느껴진다. 사회란 곧 연극의 무대, 이 무대에서 사람들이 쓰는 연극적인 기술은 무엇인가. 우리가 '의례ritual'이라고 일컫는 행위 속에서 최대한 나의 자아를 보존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책의 미덕은 저자가 개인이 연극적인 자아를 연출함으로써 견뎌야만 하는 감정 소비의 고달픔을 나름 예민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나 그 배려가 좀 더 인상적인 사회학적 스케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건 아쉽다. 대학원생 시절 학점 교환제로 이화여대에서 수업을 들으며 많은 여대생 무리를 뚫고 학교를 향했다는 체험(37~38쪽), 아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라 시작하며 나오는 혼자 고기 먹는 사람의 불편함이 드러난 일화(84쪽), 주말 마트에 혼자 장을 보고 있는 사람을 보며 머릿속에서 '이혼했군'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봤다는 고백(96~97쪽) 등은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을 설명하기 위한 '기본형 사례'로는 적합할 순 있겠다.
다만 저자가 이러한 사례들의 생생함을 잘 전달해주고 있는지 고개를 갸웃해보게 된다. 늘 접하고 있는 사회적 풍경 속에서 그 의외성의 묘미를 보여주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외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견고하게 구축해놓은 사회학 이론이라는 건축물에 부합하는 '깔끔한' 사례만을 취합한 인상이 더 짙다.
이론의 쓸모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론이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개입이 아니라 이론 자체의 들어맞음을 증명하기 위한 '규격'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있다. 이 사회학 이론에 이 정도 사이즈의 사례, 그래 요 정도 디테일이면 되겠지? 하는 묘수를 짰다는 구상이 너무 보이는 글쓰기라고 할까. 고로 각 장마다 제시되는 저자의 간명한 주장은 탄탄하면서도 힘이 넘치지만, 그 활력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사례는 제법 경직되어 있는 듯하다.
마치 '혼자 고기 먹으러갈 건데 괜찮을까요?', '이번에 나온 그 영화 혼자 극장에서 볼 건데 괜찮겠죠?'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전용 질문에 '그럼요, 괜찮아요' 하고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고 싶다가도, 때론 '그냥 하면 되지, 저렇게 티를 내야 하나?' 같은 속내를 품어보기도 한 이라면 진부함과 피로감을 느낄 대목도 나온다.
저자는 결혼과 미혼이라는 구도, 집단/가족과 개인이라는 구도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어쩌다 보니' 혼자가 된 자연스러움을 나름 의식하려 하지만, "혼자라는 것은 짝이 있다는 것의 거울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부정태이다"(20쪽)라는 주장이 나온 이상, 그 주장은 이 책을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열쇳말이 되어버린다. 논리를 명확하게 보이기 위해선 포기할 수 없는 명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로 "정작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낙인 집단으로 전락했던 사람이 입을 열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과장이라는 덫에 빠진다는 것이다"(25쪽)라며, 독립의 편견에 위축되어 있는 이들이 벌일 과장된 고백을 우려하는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독립에 대한 부정적인 우려에 '과하게' 대응한다는 인상을 준다.
3.
이 책은 독립의 낭만화를 걷어버리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오늘날 자유롭게 누리고 싶은 독립의 영역에 왜 이런 높은 경제 비용을 사회는 요구하는가라는 문제의식도 빼놓지 않고 있다. 현실성 없는 독립, 판타지로 가득 찬 독립을 경계하면서 독립의 맨살을 보겠다는 것이다.
허나 '독립하는 이'라는 주체가 다분히 거칠게 처리되면서 독립의 편견이 어떠한 사회 구도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지를 시원시원하고 읽어나가는 맛은 있으되, '어떤 이'의 독립에서 비롯된 형형색색의 세상물정 풀이는 조금 빈약해 보인다.
한편 청년의 독립은 이 험난한 가족사를 보상해줄 보험이 되기도 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살이에서 벗어나 인생 역전을 꿈꾸는 독립 공간이자, 변변치 않은 살림에서 가족의 미래를 책임져줄 수 있는 자식을 위해, 협소하지만 절충된 투자 공간으로 고시원은 기능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기만의 방>이 독립의 주체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와 관련된 물리적 현실에 집중하면서 독립의 성공과 실패(이 책에서는 '삑사리'란 표현을 쓴다)에 담긴 개인의 갈등과 투쟁을 챙기려 한다면,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저자가 애초에 내세웠던 독립의 판타지를 걷어내고 리얼리티를 보겠다는 야심은 개인과 사회를 논할 때 나오는 어디선가 본 익숙한 사회학적 명제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느낌이 든다.
4.
저자가 책에서 간간히 보이는, 사회학자로서 세상물정을 설명해보겠다는 야심과 이를 뒷받침하는 '친절한 글쓰기'의 노력은 인상 깊다. 허나 이것이 반드시 세상물정과 멀리 있다고 느껴온 사회학 이론을 쉽게 설명·정리하고 이를 적용해보려는 차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회학자들이 종종 저자로서의 초심/야심을 다질 때 인용하는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책에도 나온다). 이것이 다분히 세상물정의 복잡한 속내를 사회학적 사유로 긴밀히 다듬어보자는 수사에만 머물 때, 읽는 즐거움은 '냉동 상태'에 있던 사회학 이론이 해동되어 이렇게 소개되었구나 정도로만 그칠 수 있다. 허나 독자들은 사회학자의 이론적 성취와 그 개입을 넘어 지적인 사유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맡는 고유의 직관도 기대하고 있다.
가끔 책을 읽을 때 학문 세계에 있는 연구자들이 작심하고 글맛 나는 글쓰기를 해보겠다고 했을 경우 나오는 '친절함과 배려의 문체'를 그대로 고맙게 받아들이기보단, 논문에 꼭 들어가야 하는 '논의의 배경'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아픔 등으로 감지해볼 때가 있다. 그리고 이 문체를 북돋아주기 위해 힐끗힐끗 보이는 사색과 감수성이 가끔은 '기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내겐 이 책이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논의와 별개로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내향성의 장을 심도 있게 고찰할 수 있는 몇몇 지점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새겨두고 싶다.
익히 알다시피 연대라는 이름에 무기력을 느끼는 지금. 한때 사람들은 '끌리고 쏠리고 들끓던' 나와 너의 우연하지만 폭발력 있는 '협력과 접속'이란 관계성을 주시하며 SNS를 위시해 네트워크라는 이름에 희망을 걸기도 했지만 이젠 피로감으로 다가온 지 오래다.
공적인 것의 소멸과 회복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지만, 그러한 태도의 당위와는 달리 일단 사람들에게 이 사회는,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이 공적 영역은 '참여'의 장소이기보단 '자극-반응-에너지 소비'라는 차원으로 겪어나갈 수밖에 없는 '마음 씀과 피곤함'의 시대를 대변할 뿐이다.
이러한 사회 현실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저자가 몽테뉴의 이야기를 통해 제시하는 '치타델레' 즉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내면의 독립적인 성은 단순히 독존의 기능이 아닌 삶의 주체로서 타인과 부대끼며 다쳐 있는 연약해진 마음 상태를 되돌아보고 이를 회복할 수 있는 환경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랬을 때, 내 안의 고양이성cat-ness, 주의 깊고 반응에 민감하면서도 다칠까봐 이를 잘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으며, 나만의 질서가 있으되 이를 왁자지껄하게 발설하지 않는 조용한 내면의 활동 상태를 확인하는 시공간의 필요성을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 안의 고양이를 바라보고 지켜줄 여력이 있을까. 이 책을 덮으면서 또 하나의 고민거리를 안아본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콰이어트>(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RHK코리아 펴냄)
'내향성의 사회과학'이란 호명이 가능하다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가 강조하는 삶의 연극성을 분석하는 내용이 꽤 비중 있게 실려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자기만의 방>(정민우 지음, 이매진 펴냄)
고시원이라는 장소를 통해 청년 세대의 문제를 짚었다. '독립'에 대한 사회적 소묘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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