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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스타일? 英 광산파업은 노조 투표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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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스타일? 英 광산파업은 노조 투표로 끝났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경찰 5000명이 노총 본부 습격하는 나라, 정상인가

국제노동조합 활동을 직·간접으로 해온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외국의 어느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 노총 본부를 습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도 수도 한복판에서 사단 병력에 달하는 5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파업 지도부를 잡으려 노총 본부를 침탈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만델라의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노총 본부 건물이 폭탄 테러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거의 30년이 다 된 이야기다. 폭탄은 지하실의 기둥에 설치되었고, 이 폭발로 남아공노총(COSATU) 본부를 비롯해 같은 건물에 있던 여러 산별노조 사무실이 망가졌다. 백인 독재체제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1987년 5월의 일로, 폭탄 테러의 이유는 남아공노총이 정치 단체인 통합민주전선(UDF)과 연대해 백인들만의 총선거 무효 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인 선거 무효 투쟁에 250만 명이 참여했고, 그 중심에 노조원들이 있었기에 백인 독재 정부와 우익 비밀 단체가 남아공노총 본부 건물을 폭탄 테러했던 것이다.

민주노총 본부 습격의 최종 명령자인 청와대는 서울 한복판의 사단급 병력 작전을 승인하면서 영국 광산노조 파업을 짓밟고 정치적 성공을 거둔 마거릿 대처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1984년 3월 전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치지 않고 지도부의 파업 개시 선언으로 시작된 광산노조의 파업은 1년을 끌다가 이듬해 3월 노조의 패배로 끝났다.

▲ 22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경찰이 '강제 진입'에 항의하는 시민과 노조원들을 막아서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로 강성 노조를 굴복시켰다는 결론에만 심취한 청와대가 잘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지도부의 결정으로 시작됐고 1년을 끌다가 패배로 끝난 파업이지만,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파업을 진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거나 구속된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파업 현장에서 파업 불참 노동자들과 파업 참가자들 사이에 일어난 폭력 행위로 노조원이 체포되거나 구속되었고, 영국 정보청 보안부(MI5)가 "국가 전복" 혐의를 두고 노조 지도부에 대한 도청 등 광범위한 첩보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광산노조의 파업은 경찰 병력을 동원한 노조 본부 침탈이나 지도부 구속이 아닌, 노조 집행위원회의 자체 투표를 거쳐 끝을 맺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대한민국 노동법이 정한 모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고, 평화적이고 온건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국가 정책이 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되뇌지만, 민영화든 국영화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가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은 교섭과 파업 대상이 된다는 것은 노동 기본권의 상식이다. 하지만, 철도노조의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파업에 맞서 정부는 대규모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서울 한복판에서 불법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다.

노동자를 상대로 한 전쟁의 정점에 청와대가 있고, 온 국민이 팥죽을 먹으며 따스하게 보내야 하는 동짓날에 사단 규모의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수도 한복판에 있는 노총 본부를 습격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코레일 사장도, 국토부 장관도, 노동부 장관도, 새누리당도 들러리다. 모든 결정은 청와대에서 바로 내려와 경찰력을 통해 집행된다. 노사관계나 노정관계는 없고 공안 세력만 설치는 형국이다.

▲ 민주노총이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 ⓒ프레시안(최형락)

경찰이 민주노총 본부의 문을 부수고 강제 습격한 것은 1995년 민주노총 설립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지만, 내가 알기로 세계 어디에서도 노총 본부가 경찰의 습격을 받는 나라는 없다. 영장이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파업 지도부를 잡겠다고 노조 본부, 그것도 노총 본부를 경찰이 습격하는 일은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입만 열면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세우지만, 불행하게도 오늘날 비정상의 정점에 청와대가 서있다.

"불의가 법으로 변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 … 때때로 반란은 좋은 것이고, 자연 세계에서 태풍이 필요한 것처럼 정치 세계에선 반란이 필요하다. 그것은 정부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약이다. … 지배층이 경고를 들으려 하지 않을 때, 무엇이 한 나라의 자유를 유지시키고, 그 나라의 국민들로 하여금 저항의 정신을 유지토록 하는가? 국민들로 하여금 무기를 들게 하라."

청와대를 비롯해 한국의 지배층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미국을 건국하고 그 나라에서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이 한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제퍼슨이 말한 '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저항'과 '반란'은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경찰 5000명의 민주노총 습격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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