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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YS정권 몰락의 신호탄, 2013년의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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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YS정권 몰락의 신호탄, 2013년의 기시감

[기자의 눈] '비정상의 정상화'가 노동계 전체를 적으로?

춘투(spring labor offensive)는 일본에서 온 말이다. '춘계임금투쟁'의 약칭이다. 매년 봄 임금 협상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공동 투쟁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계절을 따 이름을 붙이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언론에서는 춘투 외에 하투, 동투 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주로 대규모 파업 투쟁을 일컫는 이 말은 이제 4계절 내내 사용된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 현실이다. 바꿔 말하면 노동자들이 점점 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동투라는 말이 익숙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12월 25일 노동법 날치기 파동 때였다.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들을 '버스떼기'로 새벽 5시에 동원, 정리해고를 법제화하는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했다. 의원들은 당시 "승리했다"며 국회 인근 식당인 양지탕에 가서 거사가 성공한 것을 자축하고 축배를 들었다. 그것이 YS정권 몰락의 신호탄이었음을 154명의 신한국당 의원들은 알수 없었다.

다음날 노동계는 총파업을 선언하고 전력 투쟁에 돌입했다. 이듬해 한보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날치기 1년 후에 발생한 IMF 구제금융 사태는 노동자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슬픔을 안겨줬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이 사건을 회상하며 "YS정권 몰락의 신호탄", "우리는 50년 보수정권을 진보진영에게 넘겨줬다"라고 말했다.

간헐적으로 사용되던 '동투'라는 말이 1996에서 1997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처럼 잘 어울리던 때가 없었다. 전국 곳곳이 '동투 돌풍'에 휘말렸다. 수도권, 부산, 울산, 광주, 대전 등 대규모 제조업체 노조들이 동시다발적 파업에 들어갔다. 그 다음날인 12월 27일에는 병원노련이 파업에 들어갔다. 동투라는 말은 태어날 때부터 임금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런데, 동투. 데자뷰다. 민주노총은 2013년 12월 28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 96년 노동법 날치기 관련 언론 보도. ⓒ한겨레

YS정권 몰락을 불러온 노동계 동투, 그리고 2013년의 기시감

1996년 12월 크리스마스 노동법 날치기 이후 총파업을 결의한 민주노총에 대해 1997년 1월 경찰은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 당시 서울 성북구 삼선동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2013년 12월 22일 경찰은 체포영장을 들고 수배 중인 철도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철도노조 간부 검거를 위해 민주노총에 들이닥쳤다. 민주노총 역사상 두 번, 합법화 된 이후에는 처음 있는 일이다.

심지어 경찰의 작전은 무리한 '습격'으로 판명됐다. 체포영장을 집행한다고 해놓고 단 한명도 체포하지 못한 채 경찰은 기물을 파손하고 신문 제작을 방해했다. 경찰이 망치를 들고 철문을 내리쳐 부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고 있다. "안되면 빠루(노루발못뽑이)로 제껴"라는 말들이 난무한다. 경찰 한 명이 민주노총에서 커피믹스를 들고가다가 걸렸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들 역시 SNS 상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경찰은 조롱거리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특히 경찰이 이번 작전을 앞두고 민주노총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것이 알려지면서 그 저의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는 먼저, 체포영장만으로 철도노조 간부들을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을 습격하는 것이 무리수라는 점을 경찰도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 될수 있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은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워진 것을 의미하지만, 경찰은 밀어붙였다. 그것도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이는 경찰청장보다 높은 '윗선'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의구심을 씻을 수 없다. 청와대는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조선일보> 등 일부 보수언론은 '청와대 관계자'가 "이런 정도의 난관을 넘지 않고 어떻게 '비정상의 정상화'에 성과를 내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노총에 대한 무리한 작전 수행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 입장의 연장선이라는 말이다.

두 번째, 이렇게 되면 큰일이다. 민주노총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요청한 것은 목표를 철도노조에만 두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자체, 즉 노동계를 정면 겨냥했을 수 있다. 그런데, 단 한명의 수배자도 체포하지 못한 작전으로 귀결됐다.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고발당해 체포 영장이 발부된 몇 명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 5000명을 동원하고 에어메트리스까지 깔았다. '전시 효과'를 통한 정치적 노림수도 의심된다.

경찰의 민주노총 습격, 그리고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은 물론 지나친 억측이다. 박근혜 정부는 아직 임기를 4년 이상 남겨두고 있다. 임기를 1년 조금 넘게 남겨뒀던 김영삼 정부와 비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심상치 않다. 노동계는 여론을 등에 업고 있는 상태다. 민영화 논란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여론조사를 보면 그렇다. 노동계를 적으로 돌려서 성공한 정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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