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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골병 외면하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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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골병 외면하는 대통령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87>호가호위, 대통령이 직시해야

침묵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입을 열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60%를 넘었다(62.7%). 대통령이 국민의 여론을 국정운영에 잘 반영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절반(50.2%)이나 되었다. 한 여론조사 기관이 10월26일~27일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그렇게 나왔다. 그 3~4일전에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서는 이 나라 권력기관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절반 넘는(50.5%)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또 다른 기관의 조사도 이와 비슷했다. 18대 대선의 공정성을 놓고, 공정한 선거라고 본 사람(47%)보다 부정선거였다고 답한 사람(48.2%)이 더 많았다. 불공정 선거였다는 응답이 절반 넘기도(51.2%) 했다. 놀라운 조사결과도 나왔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경찰이 사실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면,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대답한 사람 중 8.3%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프로테이지를 두 후보의 실제 득표율에 대입해 산정해보면,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은 51.55%에서 47.27%로 줄어들고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8.02%에서 52.3%로 불어난다. 문 후보가 오히려 5.03% 앞서는 것으로 드러난다. 정부 여당 쪽으로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결국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과 경찰이 '한' 일은 그렇게 '엄청나고' '큰' 일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론조사 결과가 이런 양상으로 쏟아져 나오자 10월 28일 대통령을 대리해 국무총리가 담화 발표에 나선다. 대선 개입사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수사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전에도 들어 본 소리였다. 여당은 줄곧 "재판결과 나와 봐야 안다"고 했었다. 확정 판결 때까지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야 하므로, 가령 '3년 쯤 뒤' 대법원 최종선고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면서 총리는 가시 돋친 한 마디를 보탰다. 요약하자면 민주주의 한다고 경제를 망치지는 않도록 해 달라 했다. 말하자면 협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보았는지, 보선에서 이겨 용기를 얻었는지, 10월 31일 드디어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직접 국민들을 향한 게 아니라, 윤창중 씨 때처럼 수석비서관 회의(한 달 만에 열렸다)에서였다. 내용도 국무총리와 대동소이했다.

철저히 조사해 조치하겠다,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겠다, 그 뿐이었다. 국가정보원에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에, 기무사에 정보사에, 안전행정부에 국가보훈처에, 노동부에 환경부에, 경찰에 재향군인회에, 범정부적으로 대선개입 총력전을 펼쳤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그렇게 이 나라 정부기관들이 온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철저히 망가뜨리면서 골병 들여 놓았는데도, 대통령은 끝끝내 그 뿐이었다. 민주주의 골병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사법부의 판단' 타령을 우리가 기약도 없이 계속해서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게 한없이 안타깝다. 우리는 그간의 역사 거꾸로 되돌리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이 땅의 민주주의가 골병드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정권 들어서면서 이 나라 민주주의가 병들어가고 있는 것은 여러 군데서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신 때가 더 좋았다"는 소리가 나왔다. 대통령이 다녔다는 대학의 총장을 지낸 인사가 그렇게 말했다. 어떤 현직 도지사는 "5·16 쿠데타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참석하는데 동의하지 않은 교회까지 이름을 올려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를 강행한 목사 한 분은 "한국에서는 독재를 해야 한다"고 설교를 했다. 참으로 장래성 없는 나라다.

이제 와서 대통령의 당선무효를 말하거나, 재선거를 주장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찢겨 상처투성이가 된 민주주의를 치유하고 되살리는 노력이야말로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골병드는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통령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

국정감사장에 나와 거들먹거리는 국가보훈처장의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보아줄 지경이었다. '이래봬도 이 몸은 대통령 만들어 낸 사람인데 누가 감히 건드리려하느냐'는 듯 비웃는 묘한 미소가 참으로 역겨웠다. 거칠 것 없고 무서울 것 없어 보였다.

국회건 국민이건 안중에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의원조차 "우리를 핫바지로 보느냐"고 호통을 쳤다. 죄를 짓고도 국감장에서 증인선서 조차 거부한 전 서울경찰청장과 난형난제처럼 행세했다. 이런 사람들은 다 민주주의가 짓뭉개질 때 나타나는 인물들이다. 대통령 믿고 골병바이러스 마음 놓고 퍼뜨리는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DJ는 친북(親北)이고 노무현은 반미(反美)"라는 터무니없는 소리 내지른 신임 국사편찬위원장도 같은 부류의 인물이다. 그는 미국국적의 아들이 국사편찬위원장인 자신의 벼슬에 부담되는 것을 면해 보기 위해 별별 거짓말을 다 늘어놓았다. 그래도 그에게는 박정희 씨를 예찬한 공적이 있어 대통령과 '한 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가보훈처장이나 국사편찬위원장이나 모두 대통령과 사적(私的)인 시스템으로 엮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정감사장의 미소'에서 보았듯이 민주주의를 골병 들이는 현상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이 나라는 우리 몇몇만 굳게 판을 짜서 이끌고 가면 된다는 오만도 엿보인다. 결코 바람직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들은 모두 뻔뻔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대통령이 직시 할 필요가 있다.

공연예술 정부 지원사업의 78%가 영남지역 지자체에 집중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검찰총장, 청와대 민정수석이 모두 경남지역 출신으로 채워졌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좋은 사람 고르다 보니 그리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호남하면 부정, 반대, 비판, 과거 집착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고 국정감사장에서 목청을 높였다.

이성적으로 보나 감성적으로 보나 이건 한 줌 양심, 한 조각 양식조차 철저하게 팽개쳐 버렸음을 나타내는 명백한 증거다. 범죄 수준의 파렴치다. 바야흐로 이 나라의 골병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을 웅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가을이 오고 찬바람이 불면 여름철 내내 강을 오염시키던 녹조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러나 이 나라 4대강에서는 11월인데도 여전히 녹조가 점령군처럼 기세등등하게 창궐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특히 녹조 가운데 섞여 있는 남조는 간암을 유발하는 독소를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남조가 낙동강에서 4대강 공사 시작 이전보다 30여배나 불어나 있다는 국립환경과학원의 분석이 나왔다.

이런 판국에 천만 뜻밖에도 '강에 녹조가 떴다는 것은 강물이 맑아졌다는 증거'라는 기막힌 소리가 나왔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 씨가 그렇게 말했다.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터무니없는 개인 욕심으로 30조 원이나 되는 국민 세금 긁어다 쏟아 부어 4대강을 이 지경으로 골병 들여놓은 '죄인'이 그랬다. 한 마디로 그가 해서는 안 될 소리였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태연히 할 수 있다는 건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들 입을 모은다. 거듭 그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도 골병들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여기서도 MB와 그의 수하들 때문이라고 했다. STX에 민유성, 강만수 씨 등이 4조2000억 원을 대주었다고 했다. STX에는 이 밖에도 MB 맨들이 수장으로 있는 은행들에서 수조 원씩 막대한 자금이 과다 지원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필경 올해 산업은행은 1조 가까운 적자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13년만의 '참사'를 맞이할 것이라고 들 우려한다. 산업은행의 적자는 국가재정으로 보전토록 되어있다. 결국 국가재정의 건전성이 그만큼 나빠지고, 그건 국민의 부담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래저래 MB는 나라 골병 들이는 전문가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골병드는 증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통령은 시야를 넓혀 바로 보아야 한다. 발등과 등잔 밑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불통의 고집도 버려야 한다. 국민 우습게보거나 속이려 들어서는 안 된다. 특히 민주주의와 국민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 그게 '좋은 대통령'이 되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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