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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일 파업 끝에 '정규직' 전환…"마침내 인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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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일 파업 끝에 '정규직' 전환…"마침내 인간이 됐다"

[박점규의 동행]<18> 2014년, '갑오 비정규직 혁명'을 꿈꾸며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소래포구에서 주차관리를 하는 강명자(47) 씨는 지금 어엿한 정규직입니다. 2009년 인천 남동구 산하 지방공기업인 남동구도시관리공단에 들어와 주차장 이곳저곳을 떠돌며 서러운 비정규직 인생을 살았던 그는 이제 당당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공기업의 무기계약직처럼 처우 개선도 이뤄지지 않고 호봉과 경력도 인정되지 않는 '짝퉁' 정규직이 아니라 '진짜' 정규직입니다. 지난 9월 그가 속한 노조와 남동구도시관리공단이 비정규직 132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공단 근무 경력과 군경력 가산을 적용한 호봉제에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정규직이 되기 전 그는 월급을 일당으로 받았습니다. 하루 8시간 최저임금을 계산해 월급으로 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 쓸 일이 가장 많은 설날 연휴가 있는 2월은 28일밖에 없어 월급이 가장 적었습니다. 아무리 일해도 월 100만 원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정규직과 차별은 말도 못했습니다. 급식비와 교통비는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않았고, 가족수당은 없었습니다. 연말에는 더 서러웠습니다. 정규직이 2~300만 원의 성과급을 받을 때 비정규직에게는 30만 원을 던져줬습니다. 무엇보다 일하다가 다치면 유급병가를 사용하지 못해 그만두는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5년 비정규직 인생 마감하고 정규직 인생으로

강명자 씨와 동료들의 인생은 지난 2년 동안 확 달라졌습니다. 평생 노동조합을 모르고 살았던 그녀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에 가입했습니다. 동료들은 서로 경쟁하고 험담하고 헐뜯었던 관계에서 서로 위로하고 도와가며 함께 싸우는 조합원으로 바뀌었습니다.

환경미화와 주차관리를 하는 나이 많은 언니들과 체육센터에서 수영이나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젊은 강사들, 일당제 사무보조로 일하며 온갖 차별을 받았던 후배들이 뭉쳤습니다. 2012년 2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57일 동안 파업을 벌였고, 마침내 정규직 전환의 물꼬를 텄습니다.

그와 동료들은 2012년 7월 1일 자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지만 호봉과 처우가 달라지지 않은 반쪽짜리였습니다. 지난해 노조는 다시 호봉제 도입을 요구하며 싸웠습니다. 성남과 부천의 사례를 검토했고, 마침내 노사합의를 통해 지난 10월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임금삭감 없는 호봉제를 도입하게 됐습니다.

평균 5.5호봉이 인정되어 연간 100만 원 이상의 기본급이 인상됐습니다. 정규직과 차별이 극심했던 성과급, 가족수당, 급식비, 교통비, 자녀학비수당을 똑같이 받게 됐고, 유급병가도 사용하게 됐습니다. 화장실 청소 등 환경미화 업무에 고령자들이 많아 65세였던 정년도 정규직 전환으로 60세로 줄이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2012년 7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지난 10월에는 임금삭감 없는 호봉제를 도입한 인천 남동구 산하 남동구도시관리공단. 이런 성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과 57일 이어진 파업 투쟁이 없었다면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namdongcmc.co.kr

57일 파업으로 임금 삭감 없는 호봉제 실시

갑오년 새해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시흥시설관리공단의 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 82명이 1월 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 시흥시국민체육센터, 그린센터, 청소년수련관 등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새해부터 정년보장과 함께 명절휴가비, 복지 포인트 등의 혜택을 받게 됐다는 소식입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경기도교육청과 전국에서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도 다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줍니다. 노사는 △노조활동 보장 △정년 60세 보장 △재량휴업일(개교기념일 포함 연 4일) 유급 인정 △노사협의회 운영 등으로 근로조건 개선 등 467개 조항을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우울한 소식이 더 많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기가 끝나는 2월이면 1만 명이 해고될 상황이고,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은 정부의 정책 잘못으로 6000여 명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합니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연말 계약만료로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되고 있습니다. 병원, 우체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개월, 6개월 단위의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으며 2년이 되기 전에 계약 만료로 해고되고 있습니다.

87%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인 인천공항의 노동자들도 업체 변경으로 인한 고용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공공 부문의 노동자들이 이 지경인데, 민간 기업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자동차, 조선, 철강, 건설 등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이유도 모른 채 공장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정규직 전환 찔끔, 연말 대량해고 계속

"비정규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자녀가 비정규직이라 걱정하는 부모님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분들의 걱정을 덜어주겠습니다.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대한 관심을 갖고 힘쓰겠습니다."

1년 전 박근혜 씨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참석해 비정규직 집배원이 보내온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해달라"는 메시지에 대해 답한 내용입니다.

사회 양극화의 핵심이 비정규직 문제라며 경제 민주화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 공약을 걸고 당선된 박근혜 씨가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그녀의 패션이었고, 걱정을 덜어준 것은 비정규직 부모님이 아니라 재벌이었습니다.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공약은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외주화로 바뀌었고, 불법파견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 및 직접고용 명령은 불법파견에 대한 면죄부로 변했습니다.

도리어 정부는 일자리를 늘린다며 청년들에게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라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양산하고, 55세 이상 노동자들에게는 근로자파견법을 개악해 모든 산업에서 저임금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 지난달 19일 밤 인천국제공항 교통센터 모습. 인천공항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고용 보장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장기간 파업과 노숙 농성을 벌였다. 현재는 투쟁을 잠정 중단하고 인천공항 쪽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리는 상태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 87% 이상은 용역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계약 만료 위협을 떨게 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비정규직이 아니라 재벌의 걱정을 덜어주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2013년 전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뭉치고 싸웠습니다.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정규직이라고 판결받은 현대자동차 최병승과 천의봉은 나 혼자만 정규직이 될 수 없다며 296일 동안 철탑 위에서 싸웠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0억이 넘는 손해 배상과 월급 압류를 견디며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는 신규 채용을 거부하고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당당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75년 무노조 경영이라는 '좀비 경영'의 무덤에서 나와 당당하게 민주노조를 결성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자결한 최종범 씨의 뜻을 이루기 위해 50일이 넘도록 헌신적으로 싸웠습니다.

금속노조가 하청업체와 합의해 삼성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지만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지켜내고, 삼성의 위장 도급과 불법 파견, 건당 수수료와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려냈으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정규직 비율 세계 1위 인천공항 노동자들은 개항 이후 사상 처음으로 파업을 벌였고, 공항 교통센터에서 점거 농성을 전개했으며, 조합원 1700명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며 싸웠습니다. 노동자들은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를 전국에 알려냈고, 민영화와 비정규직화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일깨워줬습니다.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과 원청 회사 점거농성을 통해 민주노조를 지켜냈으며, 학교 비정규직, 콜센터 비정규직, 현대제철 사내하청, 학습지 노동자 등 전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이 계속되었습니다.

2013년 전국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저항

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120년 전인 1894년 갑오년 3월,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나 "토지를 평균 분작하고 신분제를 폐지하라"고 싸웠습니다. 숨죽여있던 농민들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을 계기로 일어섰지만, 낡은 체제의 억압에 정면으로 맞선 '갑오농민혁명'이었습니다.

120년이 흘렀습니다. 90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분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임금을 동등 분배하고 비정규직 신분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고, 비정규직의 차별을 영구화하려는 정부에 맞서 봉기하고 있습니다. '갑오 비정규직 혁명'을 위한 싸움의 맨 앞에 현대차와 삼성, 인천공항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120년 전 '배고파서 못 살겠다'는 농민들을 따뜻하게 받아준 곳이 바로 동학 농민군이었습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싸운 조직이었습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금씩 노동조합으로 뭉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1만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시에 일손을 놓는다면 자동차는 한 대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동시에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고장 난 전자제품 수리는 완전히 중단됩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노동을 멈춘다면 단 한 대의 비행기도 운행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나아졌어요. 처음 들어왔을 때에 비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건 할 소리를 하고 살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게 뭔지 알 게 됐어요. 우리가 뭉쳐서 싸웠기 때문이죠."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투쟁'을 통해 정규직을 쟁취한 강명자 씨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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