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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뺨치는 '국립'서울대병원, 파업 사태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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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뺨치는 '국립'서울대병원, 파업 사태 자초

[박점규의 동행]<14>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파업 응원

4년째 서울대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김성민(가명·31)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그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이지만 비정규직 신분이기 때문에 파업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파업을 응원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지난 23일부터 △의사 성과급제 및 선택진료제 폐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인력충원 △어린이병원 환자 식사 직영 전환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94퍼센트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6년 만에 파업을 선택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중아·동아를 비롯한 신문들은 '병원이야, 농성장이야?…없던 병도 걸리겠네'(조선), '또 환자 볼모 비난'(문화), '환자들 진료 못 받나 발 동동'(<동아>, <중앙>) 등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 1500여 명 중에서 응급실, 중환자실 등에서 근무하는 필수 유지 업무 대상자를 빼면 파업에 참가하는 조합원은 500여 명이기 때문에 수술과 진료는 물론, 전체 병원 업무에 큰 지장이 없습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은 우리에게 감춰진 진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대학 병원에만 갔다 하면 의료보험이 안 되는 선택진료제로 인해 비싼 병원비를 물어야 했던 서민들은 이번 서울대병원의 파업으로 선택진료제와 의사 성과급제가 병원과 의사들의 주머니만 채우고, 환자들은 컨베이어벨트의 제품처럼 취급당하는 제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어린이병원의 식사가 병원 직영이 아닌 'LG 아워홈'이라는 외주 업체에 맡겨져 어린이 환자에게 의료보험에서 지원하는 하루 1860원만큼 질 낮은 식사를 제공하고 있고, 병원이 제대로 관리 감독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김성민 씨는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도 어쩌다가 화를 내는 환자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파업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 서울대병원 노조 조합원이 서울대병원 벽에 붙인 호소문. ⓒ프레시안(김윤나영)


파업으로 알게 된 의사성과급제와 환자 식사 외주화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알리오 www.alio.go.kr)를 보면, 2012년 서울대병원 임직원은 5045명이었습니다. 직·간접 비정규직 노동자는 무기계약직 202명, 기간제 317명, 단시간 417명, 소속외인력 590명으로 모두 1526명입니다.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의 조사에 따르면 직접 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1143명으로 병원이 보고한 936명보다 200명 이상 많았습니다. 병원이 교과부에 보고한 인원으로 계산하더라도 서울대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은 23.2퍼센트로 대단히 높습니다.

불법파견 사내하청 문제의 대명사로 불리는 현대자동차의 2012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직원은 5만8104명이고,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1727명, 간접고용(사내하청, 청소, 식당, 시설 등) 노동자는 1만1259명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16.23퍼센트입니다.

이윤을 남기기보다 공익성을 추구해야 할 서울대병원의 비정규직 사용 비율이 민간 대기업보다 40% 이상 높은 상황입니다.

▲ 서울대병원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비율 비교. (자료 : 자료 : 공공기관 경영정보(알리오) 및 기업공시 분석) ⓒ박점규

현대자동차보다 40% 이상 높은 비정규직 비율

지난 4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분당서울대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이 37.0퍼센트로 국립대병원 중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 열 명 중 네 명이 비정규직이라는 뜻입니다.

양산부산대병원이 36.1퍼센트로 두 번째로 높았고, 충남대병원(29.4퍼센트), 부산대병원(24.0퍼센트), 서울대병원(23.1퍼센트) 순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습니다. 충북대병원은 비정규직 비율이 5.5퍼센트로 전국 12개 국립대병원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비정규직 비율 1, 2위를 서울대와 부산대의 신축 병원들이 차지했다는 점입니다. 2003년 개원한 분당서울대병원과 2009년 문을 연 양산부산대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분당서울대병원은 노조 없는 병원을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윤을 최대한 많이 남기기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했습니다. 의사, 약사, 간호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면허증이 있는 직종과 일부 사무직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이유

노사협의회가 노조로 바뀌기는 했지만 비정규직 문제나 인력 충원, 의료의 공공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병원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없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없습니다.

이에 반해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2007~2008년 2년 동안 교섭과 파업을 통해 매년 200여 명씩 400명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직종과 무관하게 산업별노조인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지부에 가입해 있습니다.

보건직들을 중심으로 서울대병원분회에, 청소노동자 200여 명은 민들레분회에,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성원개발분회에 소속되어 있고, 지역의 다른 의료기관 노동자들도 같은 노조의 조합원들입니다. 이들은 산별노조의 지원 하에 회사와 단체교섭을 체결하고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이뤄왔습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기간제노동자, 단시간노동자들까지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권리를 보호하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 잘릴 줄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마음으로라도 파업을 응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파업을 통해 비정규직 400명 정규직 전환한 노동조합

서울대병원 노조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함께 인력 충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은 1000억 원대 암센터를 개원한 데 이어 첨단외래센터, 심장뇌혈관병원 등 1000억 원이 넘는 첨단 병원을 짓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의 매출은 2008년 5811억 원에서 2012년 8047억 원으로 38% 이상 늘었습니다. 하지만 인원은 594명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환자들이 지불하는 진료비는 많아지고 있지만, 환자를 돌봐야 할 직원들은 조금밖에 늘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 서울대병원 2008~2012년 매출액·임직원·비정규직 현황. (자료 : 공공기관 경영정보(알리오)) ⓒ박점규

이유는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서울대병원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2008년 985명에서 2012년 1526명으로 35퍼센트 이상 늘었습니다. 시민들은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에 떠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매출액 38% ↑, 정규직 13% ↑, 비정규직 35% ↑

서울대병원뿐만이 아닙니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현황에 따르면 전국 12개 국립대병원이 2009년부터 2012년 8월까지 늘어난 인원 4730명 중 1892명(40퍼센트)가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비정규직이었습니다.

2012년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립대병원의 2012년 8월 말 기준 비정규직 비율이 23.6퍼센트입니다. 전체 비정규직 비율이나 비정규직 증가 비율이 서울대병원과 전체 국립대병원이 비슷합니다. 서울대병원이 전체 국립대병원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료기관의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안정적인 치료와 간호, 돌봄을 위해서는 안정된 일터가 핵심인데도 정부는 병원의 비정규직 확산을 방치해왔고 총 정원제로 인력충원 요구를 묵살해 왔습니다.

따라서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총 정원제를 폐지하고 예산 운용의 자율성을 확대하며 병원 비정규직 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거쳐 공약대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대해 즉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씨의 노동 공약은 차례차례 쓰레기통으로 쳐박히고 있습니다.

총 정원제 폐지와 예산 운용의 자율성 확대

다른 의료기관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국립대병원, 특히 서울대병원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인력 충원, 공공 의료를 위한 중요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예전과 달리 환자와 보호자들이 응원의 목소리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음료수를 사서 건네고,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집회에서 발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고, 약을 타야 하는 환자들의 입장에서 로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싸움은 오늘은 조금 불편하지만 조만간 다시 병원을 찾을 때 달라진 병원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고용이 안정된 간호사와 직원들이 더 따뜻하고 친절하게 환자들을 맞이하고, 아픈 아이들에게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영양가 높은 식사를 제공하며, 의사 성과급제를 없애 병원비를 아껴줄 수 있습니다. 서울대병원이 앞장선다면 다른 국립대병원으로, 나아가 민간 대학병원으로 확산할 수 있습니다.

올해 싸움에서 이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참고 참아온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6년 만에 파업에 나서며 제기하고 있는 공공의료를 위한 요구들은 인간다운 병원을 향한 소중한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같이 밖에 나가서 파업에 동참하지는 못하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다른 비정규직들도 마찬가지로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빠져나가서 일이 힘들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병원처럼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챙겨주고 상생하려고 노력하는 곳이 별로 없을 겁니다. 저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제가 받았던 것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김성민 씨와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있어서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오늘도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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