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게 재작년 6월 설립된 '삼성에버랜드 노동조합'이다. 조합원이 네 명에 불과한 이 노조는 설립 때부터 '삼성노동조합(현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을 와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 설립된 '알박기 노조'라는 의심을 받아 왔다.
그런 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최근 공개한 노사전략 문건은 삼성지회에 대한 설명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동시에, 'PU(페이퍼 유니온·서류상 노조)'를 활용해 "신규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 무조건 거부"할 것을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동계가 '알박기 노조' 또는 '어용 노조'라고 명명해오던 것을 문건은 'PU'라고 부르는 셈이다.
▲ 심상정 의원이 지난 14일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노동계는 "삼성의 치밀한 '무노조 전략'이 드디어 드러났다"고 반발하고 있다. 삼성은 "관련 내용으로 복수 노조 시행을 대비해 임원 토론을 한 적은 있으나, 해당 문건은 삼성이 작성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프레시안 |
"친 회사 노조 설립…시나리오에 따른 신속한 선제 대응"
문건은 PU 대신에 '친 회사 노조'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115페이지에 달하는 노사전략 문건 중 첫 번째 파트인 '2011年 평가 및 반성' 부분은 "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특별 노사교육 및 모의훈련"을 실시했으나, "2011년 7월 13일 에버랜드 문제인력 4명이 노조(를) 설립"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적었다.(☞관련 기사 보기 : 삼성에 민주노조 깃발 솟았다)
그러면서 삼성노조(삼성지회) 설립 경과를 설명하는 '사건 경과' 부분(문건 10페이지)에 "친 회사 노조 설립→6월 20일"이라고 적시했다. 2011년 6월 20일은 에버랜드노조가 경기도 용인시에 노동조합설립신고증을 제출한 날짜다.
해당 문건이 공개되기 전에도 에버랜드노조의 '설립 시기'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은 제기돼 왔다. 삼성노조(삼성지회)가 공식 출범하기 불과 20일 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조가 돌연 설립됐고 곧바로 삼성 측에 단체 협상을 요구했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보기 : '노조 울렁증' 삼성, '꼭두각시 노조'로 선수 쳤다)
에버랜드노조의 신속한 단체 협상 요구와 관련된 내용도 문건에 설명돼 있다. 문건 11페이지에는, 노조(삼성지회) 설립 준비 단계에서 회사는 "시나리오에 따른 신속한 선제 대응"의 하나로 "11년 6월 20일 친사노조 설립 및 6월 29일 단체 협약(을) 체결"했다고 적혀 있다.
급했던 탓인지, 2011년 6월 29일 체결된 단체 협약은 임금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대해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달 27일 서울행정법원도 지적한 바 있다.
재판부는 삼성지회 김영태 회계감사가 '노조 활동을 하다 부당한 정직을 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임○○는 (중략) 설립신고증을 받은 지 1주일 만에 단체 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경위에 대해 '회사가 노동조합에서 요구하는 노동안정 부분에 대해 합의해 주었기 때문에 빨리 타결이 되었다'라고 증언하였는데, 위 단체 협약에는 고용안정에 대한 내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임금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회사(에버랜드)는 복수 노조가 허용되는 2011년 7월 1일이 되기 직전에 소외 노동조합과 근로조건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도 없는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이 사건 노동조합(삼성지회)으로 하여금 2년의 단체협약 유효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였"다고 했다.
한편, 에버랜드 측은 21일 통화에서 "에버랜드 노조는 자발적으로 설립된 노조"라며 "노조 활동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합원 2명뿐인 노조도…"노조 4개는 PU"
PU가 에버랜드노조 하나만은 아닐 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문건 89페이지는 "PU(서류상 노조)가 있는 4회사는 공개 시 '알박기 노조'라는 비난 여론을 감안, 신규 노조의 조기 와해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이라고 적고 있다.
심 의원은 "이는 삼성에 PU가 현재 4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에버랜드노조 외에도 삼성화재노동조합, (주)에스원노동조합, 호텔신라노동조합도 PU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이 지난 13일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삼성화재노조(1987년 11월 설립)는 전체 직원 5781명 중 조합원이 7명에 불과하다. 에스원노조(2000년 5월 설립)는 5181명 중 5명이 조합원이다. 호텔신라노조(2003년 4월 설립)는 2127명 중 조합원이 2명밖에 되지 않고, 에버랜드노조(2011년 6월 20일 설립)는 5787명 직원 중 4명이 조합원이다.
심 의원은 "삼성그룹 계열사 중 본인들이 적시한 4개의 서류상 노조는 고용노동부 자료만 봐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며 "특히 삼성에버랜드 노조는 문건에서도 친사노조로 밝히고 있고, 고용노동부의 자료와 법원의 판결문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분명한 서류상 노조임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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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자 즉시 해고"
문건은 설립 준비 단계 이후인 '설립 단계'에서 회사는 "주동자(를) 즉시 해고"했다며 "부당노동행위 회피를 위해 노조 설립 전 주동자(를) 징계 해고"했다고 부연하고 있다.
실제 문건이 '주동자'로 지목하고 있는 조장희 부지회장에 대해 에버랜드는 노조 설립 이틀 전인 11일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고, 18일 조 부지회장을 전격 해고 처리했다. 회사의 구매 서류와 임직원 전화번호 등을 유출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날은 삼성노조(삼성지회)에 '설립신고필증'이 나온 날이었다. (☞관련 기사 보기 : '무노조 신화' 깨진 날, 삼성노조 간부에게 '해고' 통보)
이 외에도 문건이 '문제 인력'으로 분류한 박원우 지회장, 김영태 회계감사를 상대로도 사규 위반에 따른 징계가 떨어졌다.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두 사람이 징계를 받은 시점은 이 문건이 작성된 이후다. 문건은 "노조설립 주동자를 즉각 징계하기 위해서는 평소 문제인력들의 사규 위반사항을 채증(증거수집), 필요시 활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함"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문제 인력에 대한 밀착 관리 강화"
삼성을 상대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들이 밀착 감시나 미행 등을 당했다는 얘기는 심심치 않게 나온다. 예컨대, 조장희 부지회장 등은 삼성노조(삼성지회)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던 지난 2011년 7월 7일 밤 10시, 노조 설립과 관련한 긴급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중 SM5를 탄 사측 직원들로부터 미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조 부지회장은 21일 통화에서 "회사는 미행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문건을 보면,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삼성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며 "2011년 7월 8일 박원우 지회장 자택을 감시하러 왔었던 사측 관리자는 최근 관련 재판에서 '우연히 그 근처에 밥을 먹으러 갔었던 것'이라고 해명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사내 폐쇄회로시스템(CCTV) 추가 설치 문제도 있다.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삼성노조(삼성지회)가 설립된 2011년 7월 13일 이후 삼성 에버랜드 시설 내에 3개월간 CCTV가 신규로 160대 설치됐다. 이와 관련, 문건에는 복수노조 시행을 대비하여 "현장완결형 조직관리(를) 구축"하고, 그것의 하나로 "CCTV, 취업규칙 보완 등 인적·물적 (자원) 보강"을 제시하고 있다. 심 의원은 이에 대해 "문건 생산연도가 2012년 1월인 점을 감안, 2011년 기 실행한 부분을 문건에서 적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조 부지회장은 "회사는 CCTV 증설 이유를 현장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도 과거의 시스템(CCTV)으로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었는지는 의문이다. 사고가 난 후에 녹화된 것을 되돌려볼 수는 있어도, 상황실을 만들어 일하는 사람들을 줌으로 당겨 보는 행위 등은 개인 사찰이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에버랜드 측은 "박원우 지회장은 당시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해, 담당 간부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러 찾아갔던 것"이며 "미행과 감시는 있을 수도 없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CCTV 증설은 지회 설립 이전부터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논의되고 있었던 것으로, 3개월 안에 CCTV를 160개 추가 설치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삼성지회 "불법 내용으로 세미나만 했어도 문제 아닌가"
삼성지회는 노조에 있었던 일들과 맞아 떨어지는 일들이 종합 정리된 노사전략 문건이 공개되자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 부지회장은 "의혹으로 남아 있었던 일들이, 이번에 공개된 문건으로 치밀하게 계획됐었던 것이 입증됐다"며 "특히 문건이 '친사 노조 전환'을 언급하며 노-노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점은 매우 씁쓸하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이 해당 문건은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고위 임원들이 집단 세미나를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 데 대해서는 "문건에 들어간 내용은 불법(노동법상 부당노동행위)인데, 불법적인 전략을 공유하기 위해 임원들이 집단 세미나를 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번 문건 공개를 계기로 검찰, 국회, 고용노동부에서 각각 마땅히 해야 할 조사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심상정 의원은 "삼성 에버랜드 노조가 서류상 노조임이 밝혀진 만큼, 고용노동부는 삼성노조가 설립될 당시 노조 설립을 방해했던 사실에 대해 엄정한 재수사를 해야 한다"며 "아울러 다른 서류상 노조가 어디인지도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환노위, 이건희 회장 증인 채택 놓고 거센 2차 공방 이처럼 치밀한 '무노조 전략'이 담겨 있는 문건이 공개되자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21일 "그동안 삼성 그룹에서 불거져 왔던 직원 미행·사찰·징계 해고 등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일련의 행위들이 그룹 차원의 노조 파괴 전략에 따라 시행된 것임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가 드러났다"며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 피해자인 삼성노조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검찰에 정식으로 고소·고발장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2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관련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연 후, 고발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채택 문제도 논란이다. 21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서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이건희 회장과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에 대한 국감 증인 채택 여부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심 의원이 두 사람의 증인 채택에 대한 동의안과 '삼성 청문회' 개최 동의안을 제출하면서다. 새누리당이 삼성 측 증인 채택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날 오후 여야 의원들은 국감을 일시 중단하고 국감장 옆 회의실에서 한시간이 넘도록 안건 상정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까지 나타나, 야당 의원들의 안건 상정 강행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노위는 이날 국감 종료 직후 전체회의를 열어 동의안의 안건 상정 여부를 놓고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삼성은 20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14일 보도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자료를 검토한 결과 삼성에서 만든 자료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삼성 측은 21일 통화에서 "관련 내용으로 세미나가 있었던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심 의원이 공개한 자료가 우리 문서가 아니라는 설명일 뿐"이라며 "말 바꾸기가 아니다. 복수노조 출범 직전은 기업 입장에선 상당히 예민한 때인 만큼 관련 내용의 토론 자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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