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이라는 사주 측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전 그룹 차원에서 노조 와해를 모의해 왔다는 정황을 담은 문건이 공개됐다. 삼성의 노조 탄압 실상은 그간 <프레시안>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으나, 삼성그룹이 이를 위해 조직적으로 계열사 고위간부들 사이의 세미나까지 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려진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14일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입수해 공개했다. 2011년 말 삼성그룹 계열사 고위 임원들은 이 문건을 놓고 이듬해 노사관계 전략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고 한다.
문건은 첫째 파트인 '2011년 평가 및 반성'에서 노조 설립 주도자를 "문제 인력"으로 지칭하는가 하면 "노조 설립 원인 : 노사위원 낙선에 앙심, 노조활동 통한 신분 상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2011년 당시 에버랜드 노조가 설립된 것을 반성 대상으로 서술하며 "문제 인력 관리의 중요성", "정밀 채증, 유사시 징계 준비. 밀착 관리 강화" 등을 이 사태의 '시사점'으로 꼽았다.
둘째 파트인 '2012년 노사환경과 전망'에서는 "노동계 교묘한 투쟁전술과 정치권/정부의 선심성 정책 남발로 노사환경 악화 전망"이라면서 "삼성 등 대기업을 집중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 명예 노동 옴부즈만 제도'에 대해 "법적 근거도 없으며, 노동부 업무를 침해하는 월권 행위", "기업에 2중 부담을 주는 불공정하고 과도한 규제"라고 비난하거나 이명박 정부의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을 "친노동계 입장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평가한 부분은 눈길을 끈다.
핵심 파트인 셋째, '2012년 노사 전략'은 이 문건이 작성된 의도와 함께 삼성의 반(反)노조 경영방침이 조직적으로 관리되고 준비된 것임을 시사한다. 이 '2012년 전략' 부분에서는 "노조 설립 시 전 부문 역량 집중, 조기 해결" 등의 전략 기조 아래 추진 방향, 추진 과제, 세부 추진 항목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특히 세부 추진 항목으로는 "복수노조 대응태세 일제점검", "부진/문제 인력 지속 감축"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 인력'은 노조 설립을 주도한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노조 설립자에 대해 삼성 사측은 "프로필 정비 및 채증", "노조 설립시 즉시 징계 위해 비위 사실 채증 지속", "SMD(삼성미디어디스플레이) 사례 <100과 사전> 제작" 등의 대응 전술을 언급했다.
심 의원은 이에 대해 "직원에 대한 회사의 일상적 밀착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SMD의 <100과 사전>에 대해 "'개인 취향, 사내 지인, 자산'은 물론 주량까지 '꼼꼼히 파일링해 (현재) 사용 중'에 있다고 밝힌 점은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친사 노조' 유무, 단계별 상황 따라 치밀한 '맞춤 전략'
반대로 사측의 노조 반대 방침에 동조하거나 동원 가능한 노동자들은 "우수 인력", "건전 인력"으로 표현됐다. "대항마 역할 수행을 위한 우수 인력 양성", "사내 건전 인력 재정비" 등도 앞의 '세부 추진 항목'에 포함된 내용이다. "사내 건전 인력 재정비"의 하위 항목에는 이들을 "방호 인력, 여론주도 인력, 노조활동 대응 인력" 등으로 세분화해 관리하며 각각의 집단을 활용할 전술까지 명기했다.
이를테면 "방호 인력"은 "외부 세력 사업장 침투시 방호에 동원"하며, "노조활동 대응 인력"은 "대자보 철거 등 사내 조합 활동(을) 방해"시킨다는 식이다. "여론주도 인력"은 사업장 총원의 10%, "노조활동 대응 인력"은 사업장 총원의 0.5%라는 식으로 적정 비율까지 연구했고, 이들에 대한 관리 방안으로는 "인센티브, 명단 철저히 보안 유지(점조직 운영)"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문건은 이들 '건전 인력'을 "유사시 친사(親社) 노조로 전환 가능하게 마인드 및 역량(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하기도 했다. '친사 노조'(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어용 노조')를 활용한 노조 활동 방해 전술도 문건에 등장한다. 문건은 "서류상 노조 있는 4개사 공개 시 '알박기' 노조(라는) 비난 여론을 감안해 신규노조 와해(시켜야 한다)"라면서, "친사 노조 설립은 신중하게 판단. 노조 측에서 '알박기' 노조, 어용노조라고 공격(부당노동행위 제소 가능성 100%)"이라고 사측 관리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또 삼성 계열사 중 노조가 있는 회사, 없는 회사의 경우를 각각 상정해 '설립 신고 단계-세 확산 단계-교섭 개시 단계'별 대응 전략을 준비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운 정황도 나타났다. 이 단계별 대응 전략에는 "조기 와해 시도(필요시)", "신규노조 단체교섭 무조건 거부", "노조 제소 대비, 법률 전문가 선임 후 '반드시' 승소", "교섭력 약화 및 불법 행위 유도"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단계별, 상황별 대응의 "기본 방향"은 "조기 와해 또는 고사(枯死)화 추진"이며 "노조 있는 회사에 노조 설립시 단체교섭 거부, 노조 해산 추진", "노조 없는 회사에 노조 설립시 전 부분 역량 최대 집중 조기와해 주력, 불가시 친사노조 설립 판단 후 교섭 진행하며 고사화" 등으로 세분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서류상) 노조 있는 회사"라는 표현은 이른바 앞의 '친사' 또는 '어용' 노조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심 의원이 문건을 최초 공개한 것이 종합편성 케이블 방송인 <JTBC>를 통해서였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JTBC>는 <중앙일보> 계열이며, 이 신문사 홍석현 회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처남 매부 사이다.
삼성그룹 측은 방송에 밝힌 반론 입장에서 "(문건을) 삼성이 만든 것이 맞다"고 인정하면서 "2011년 말 고위 임원들의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바람직한 조직문화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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