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사의를 표명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내내 웃었다. 웃음 짓는 그의 모습은 그대로 방송에 노출됐다.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는 마당에 관련 정책 주무장관의 웃음은 집 없는 서민들의 성난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의원들의 날선 질문이 쏟아지는 와중에 추 장관은 웃음을 지은 이유는 뭘까? 적지 않은 나이와 오랜 세월동안 관료로 지냈던 경력을 감안하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추 장관은 자신의 웃음에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여당에는 당론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치인'에 대한 '관료'의 비아냥이 담긴 웃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단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적 지위 때문에 큰 소리 치고 있지만, 실상은 '관료'인 자신보다 하등 나을 게 없다는 생각이 추 장관 머리에 맴돌았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은 주택 정책을 수 년 간 다뤄 온 전문가인 데 반해 앞에서 호통치는 의원들은 어쩌면 '풋나기'로 보였을 법도 하다.
가당치 않은 상상이지만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는 장관이 낙마하고 폭등하는 집값에 민심이 어지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은 현 상황에 대해 "인적 쇄신" 그 이상의 이야기를 내놓지 못하는 모습만 계속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의원수를 보유하고 있고, 어떤 정당보다 쉽게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열린우리당은 지금껏 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현재 상황과 관련해서도 국민들에게 "우리당의 부동산 정책은 이런 거다. 이렇게 하면 집값이 잡힌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대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나온다. 김근태 우리당 의장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사견인지, 공개되지 않은 당론인지 알 길은 없지만, 지금껏 정부 정책이 '반(反)시장적'이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한 말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이밖에도 여당 내에서는 백가쟁명 식으로 여러가지 정책 제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당론으로 수렴되지 못했다. 국민 모두가 부동산 정책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 마디씩은 해야 그나마 낯이 선다는 차원에서 나온 중구난방이었기 때문일까?
'같이 일 저질러 놓고는 나 보고만 그래!'
추 장관의 웃음에는 또다른 의미도 담겨 있는 듯 하다.
현 정부가 내놓은 대부분의 부동산 정책은 공식·비공식적으로 여당과 협의한 뒤 성안되고 발표된 것들이다.
이를 감안하면, 같이 판을 벌려놓고는 문제가 생기니까 단지 의원, 정치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자신을 마냥 공격하는 사람들이 곱게 보일 리 만무했을 성 싶다. 사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여당과의 합작품이 아닌가.
특히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결정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2005년 8.31대책이 성안되는 과정을 보면 정부보다 여당이 오히려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당은 8.31대책이 나오는 과정에서 정부와 지난해 7월6일부터 8월31일까지 모두 8차례나 당정협의를 했다. 나아가 8.31정책의 주요내용을 여당이 직접 발표하는 '이례적인' 모습까지 연출한 게 불과 1년 2개월 전이다.
이런 과정을 누구보다 소상히 알고 있을 추병직 장관으로서는 정책이 실패했다고 해서 자신에게만 목소리 높이는 여당 정치인들의 두꺼운 얼굴을 보고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언제는 잘한다고 두둔하더니만…
한편 김대중 정부 때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우리당 정책위의장은 14일 당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험한 소리를 내뱉었다.
강 의장은 "내가 30년 넘게 역대 여러 정부에서 일해 왔는데, 과거에는 여론이 사나워지면 인사를 통해 민심을 달래는 것이 순서였다"면서 "그런데 지금 정부에는 과거 같았으면 모가지가 잘렸을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고 말했다. 추병직 장관 경질을 만지작거리고만 있는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뚝뚝 묻어나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강봉균 의장은 당 내에서 대표적인 경기부양론자이면서 공급확대론자 중의 한 사람이다. 추 장관이 추진하려는 공급확대 기조에 같은 목소리를 내 왔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달 추 장관이 '설익은'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강 의장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정책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추 장관을 두둔한 바도 있다.
자신들의 정책은 내놓지 못하면서 상황에 따라 돌변하는 정치인들을 보고 추 장관뿐만 아니라 웃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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