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종북 대학이 될 거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걱정 안 되세요?"
한 교수가 잠시의 망설임 없이 반박했다.
"구성원들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주체사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종북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알 것입니다."
정확한 대답이다. 하지만 똑같은 질문을 단어 하나 바꿔서 해보면 어떨까?
"혹시 빨갱이 대학이 될 거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걱정 안 되세요?"
'종북'을 '빨갱이'로 바꿔 표현했다면 이들은 대답을 주저했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를 꿈꾸고 좌파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을 '빨갱이'라고 한다면 굳이 기분 나쁜 표현은 아니잖는가. 한창 '빨갱이' 딱지가 난무하던 시대에도 좌파 지식인들은 은근 '빨갱이'임을 자부하기도 했다. 다만 '빨갱이'라는 단어가 지닌 마녀사냥식의 폭력성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 '빨갱이'의 시대는 갔고, '종북'의 시대가 왔다. ⓒ프레시안(김하영) |
'빨갱이'의 시대는 가고 '종북'의 시대가 왔다.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도 더 이상 '빨갱이' 운운하지 않는다. 보수 정치인들도 그렇다. 섣불리 '빨갱이'라는 말을 썼다가는 구시대적 색깔론 공세를 편다는 이유로 구태 취급 받기 쉽다. 하지만 딱지는 여전하다. 이름만 '종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종북'이라는 단어가 <조선일보>에 의해 처음 대중들에게 전해진 의도대로 종북 딱지는 진보 진영을 갈라놓는 데도 한 몫 하고 있다. 폭력적인 '빨갱이' 딱지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우던 PD 계열의 지식인, 운동가들, 그리고 민주당. '종북' 딱지에 대해서는 "난 종북 아닌데", "우리는 다르다"며 옆 집 싸움 구경하듯 뒷짐을 지고 있다.
종북 전쟁은 이미 오래 전 시작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임 시절 직원들에게 댓글 공작을 지시한 근거는 '종북 척결'이었다. 문재인 후보도 박원순 시장도 모두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으로부터 '종북' 딱지를 맞은 셈이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의 야권연대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수원, 성남 시장은 벌써부터 '종북 딱지'에 시달리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는 '종북'이라는 프레임 전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예전 같으면 '빨갱이 선생들'이라고 비난을 받던 전교조. 요즘은 '종북의 심장'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전교조가 '종북'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전교조에 대한 '종북' 딱지에 대해 "전교조가 북한 추종이나 주체사상 신봉을 기조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없고, 전교조의 사회적 지위와 기대되는 역할에 비춰볼 때 정당한 비판의 수준을 넘은 모멸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이라고 일갈했다.
서울시장, 노원구청장, 성남시장에게 '종북 딱지'를 날리던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에게 법원이 노원구청장에게 8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성남시장 소송 건도 남아 있다.
'종북'은 경계하되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종북 딱지'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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