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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구 회장에게 되레 고마움 느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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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구 회장에게 되레 고마움 느끼는 이유

[기고] '나의 그 한국일보'를 다시 보고 싶다

지난 9일 한국일보 기자들과 한국일보바로세우기위원회 지지자들이 광화문 열린마당에 모였다. 나는 일찌감치 거기에 나가 기다렸다. 모임을 거기에서 연 까닭은 중학동의 옛 사옥이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원추리가 곱게 핀 마당 벤치에 앉아 옛 한국일보 자리를 바라보면서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건축가 김수근이 그 건물을 지은 건 1969년이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그 건물은 독특했고 모던했다. 1970년대 초반 집이 있던 통의동에서 학교가 있던 계동까지 걸어가면 한국일보 사옥은 늘 눈에 들어왔다. 사직터널에서 이화동에 이르는 지금의 율곡로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건물은 가든타워, 삼환기업, 그리고 한국일보 건물이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한국일보였다. 어쩌면 그 당시 우리는 그 건물을 통해 현대건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다른 건물들과 너무나 확연하게 다른 그 사옥처럼 한국일보는 특이했다. 아마도 문화면 기사가 신문의 1면에 '태연하게' 올라오는 건 한국일보뿐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게 쉽지 않은데 당시로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그런데 한국일보는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어떤 힘과 전통이 있었다. 거기에는 분명 기자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보장한 '두목' 장기영 사주의 호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떤 때는 당시 지면이 풍부하지 않았는데도 한 면 전체가 하나의 특집 기사로 채워지기도 했다. 문화의 껍질만 보여주던 당시의 신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린 나이에 한국일보의 문화면을 통해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며 보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한국일보 사옥 꼭대기에 있던 커다란 타워는 '방송용' 안테나였단다. 그게 장기영의 배포였다. 그가 살아 그 배포를 실현했다면 지금의 이상한 언론 사생아 종편과는 차원이 다른 방송이 만들어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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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은 통이 큰 사주와 치열한 펜의 기자들에겐 딱 들어맞는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부자 간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함량 미달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업을 키우기는커녕 외려 자기 잇속 챙기기와 엉뚱한 짓으로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능력과 배포가 미치지 못하면 물러날 줄 알아야 하거늘 하이에나처럼 등골까지 빼먹으려는 탐욕과 삐뚤어진 언론관은 한국일보를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그 멋진 한국일보 사옥을 팔아먹은 건 신문사와 기자들의 부실 때문이 아니라 그 못난이 형제들이 돌려가면서 마구 베어 문 아귀 짓 때문이었다. 제 집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다 팔아먹으면서 겨우 행랑채 입주권 하나 마련했던 모양인데 그마저도 푼돈에 몰래 팔아치웠다. 그런데도 일꾼들을 마치 제집 머슴인 양 새경도 제대로 주지 않고 쫓아내거나 가둬버리더니 아예 셋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기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버티고 견뎌내는 게 가능한 게 이 나라라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가끔 중학동을 지나면서 멋지게 세워진 유리 건물을 보면서도 나는 예전의 그 한국일보 사옥이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다고 여긴다. 지금의 건물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다. 예전 건물의 모던함을 복고적으로 회상하는 것도 아니다. 그 건물이 지녔던 당당함과 패기가 그립다. 이미 사라진 건물을 그리워한들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건물이 키워낸 기자들은 살려내야 한다. 나는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이 시련은 차라리 고마운 사건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성적으로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이 사건에서 기자들이 겪은 아픔은 고스란히 예전의 그 한국일보에 대한 자부와 신념을 더 강고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때론 답답할 만큼 중립적인(사실 그게 언론의 사명이지만 말이다) 보도의 냉정함이 그들을 통해 이 혼탁한 우리 언론의 새로운 샘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불쑥 1면 톱과 사설에 문화 특종을 쏟아내는 그 도도함을 그들이 되살려낼 수 있는 시련의 시기를 마련해준 장재구 회장에게 차라리 고마움을 느끼고 싶다.

이제 그 임계점에 거의 도달했다. 임계점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선 위에 서 있어도 미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나의 그 한국일보'를 되찾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기자들의 저항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한국일보 기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샘물이 탁류를 걸러내는 걸 보게 될 날, 우리는 행복하게 서로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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