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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투쟁은 우리의 그릇을 지키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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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투쟁은 우리의 그릇을 지키는 싸움!

[기고] 언론은 사주의 것도, 기자들만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

굳이 하는 변명이지만, 나는 늘 글쟁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저 시를 일삼는 시인이지 글쟁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꼼꼼히 따지는 이들에게 이런 나의 변명은 뒷받침이 약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시집 외에 시집보다 더 많은 산문집을 냈고, 어떤 해는 책을 네 권씩이나 쏟아내 무슨, 책을 계간지 나오듯이 내냐는 놀림도 받았다.

그 탓인지, 이런저런 신문과 방송에서 연재와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매번 같은 풍경을 보며 끝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 풍경이란 다름 아닌 '대립'이다. 2008년 KBS <문화지대> '함성호의 수작'이란 코너를 일 년 넘게 해 오면서는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둘러싼 노사의 대립을 목격했고, 2012년 MBC 라디오에서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의 농성 현장을 지켜보았다. 당시 MBC 사옥의 엘리베이터 앞에는 "우리 이러다 동아일보 짝 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일보에 <사색의 향기>를 연재하면서 지금 다시 똑같은 모습을 보고 있다.

한국일보 기자들을 응원한다
[박홍규] 회장 고발하자 직장 폐쇄…한국일보 사측의 불법 행위

나는 이쯤에서 이런 일련의 사태들이 같은 구조에서 파생된 문제라는 것을 저절로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KBS 사태는 정권이 자기 편향적인 인사를 위해 적자 경영을 이유로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면서 벌어졌고, MBC 사태 역시 이명박 정권이 자기 사람을 사장에 임명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국일보에서는 노조가 사주이자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자 사측이 방패막이·보복 인사를 단행하고 기자들이 이에 반발해 기존 편집국 체제로 신문을 제작하자 사측이 외부 용역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2008년에서 2013년까지 이어지는 열거한 사태들은 모두 우리의 귀와 눈을 닫으려는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서 한국일보 사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앞의 두 예와는 달리 조금 갈라진다. 한국일보 사태는 어디까지나 내부의 문제가 아니냐는 시각이 그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국일보가 언제 정론을 펼친 적이 있었냐는 실망도 분명 같이 있다. 그러나 언론은 공기다. 모두 같이 쓸 수 있는 그릇이다. 그것은 사주의 것도 아니요, 기자들의 것만도 아닌 우리의 것이다. 그런 우리의 그릇을 혼자 차지하려는 시도를 그릇이 밉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이기에 마땅히 우리가 지켜야 한다. 바른 언론을 지키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언론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 때가 없었다. 노골적인 적이 있을 때는 모두 그 적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적은 이제 계층화되면서 저들끼리 뒷손을 잡으며 안개처럼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그 안개의 전모를 들추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바로 보게 만드는 언론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명박 정권은 단순히 말하자면 언론과 정치의 밀월로 만들어낸 정권이다. 그 정권이 누구를 위해 복무를 하는지 우리는 지난 5년간 너무나 뚜렷하게 보아왔다.

▲ 지난 5월, 사장실을 방문해 '부당 인사' 및 '1면 바꿔치기' 사태에 항의하는 <한국일보> 노조원들. ⓒ<한국일보> 노조 제공

한국일보 사태는 그 결과다. 사주가 기자들을 내쫓고 외부 용역을 들여 편집국을 폐쇄할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그저 일으켜지는 생각이 아니다. 시기가 그렇고 그래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기를 만든 것이 바로 작금의 언론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을 당하고 나서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고 반문한다.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을 버젓이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지금 그런 일이 또 일어나고 있다.

한국일보는 전통적으로 문학과 예술 지면이 다른 신문보다 빛났다. 한때 지금의 <시사in>이 된 <시사저널>에 가려진 후 그 기세를 회복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아직도 나는 한국일보 문화 지면에 펼쳐졌던 수많은 기획 기사들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도 잦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한국일보가 이번 사태를 딛고 더 강력한 정론지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고군분투하는 한국일보 기자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일보를 지키는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릇을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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