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측은 오는 7일까지만 외래 진료를 보고 더는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공고했다. 지난달 입원 환자들을 내보내고, 모든 병동을 폐쇄한 데 이은 조치다. 지난달에는 마지막으로 남았던 의사마저 사표를 낸 상황이다.
남은 직원 42명과 환자 보호자들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한 환자 보호자가 카프 병원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편집자>
2006년 어느 날 남편은 "신문에서 봤는데…내가 알코올 중독 같아"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 그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하니 본인은 술을 먹고 난 뒤의 행동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런 남편의 말을 귀담아들었지만, 한편 매우 싫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사람들은 항상 취해 있고 길거리에서 지저분하게 사는 그런 사람들일 거란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남편에게 나타났던 술로 인한 증상들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나름 높은 수입의 직장을 다니면서도 무리한 주식 투자로 인해 전세조차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무일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으면서도 주식 투자를 계속하여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어하기도 하였습니다.
술을 먹지 않을 때도 거짓말을 진짜인 것처럼 자주 하고 그것이 바로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도 계속 부정하면서 가정 폭력도 더욱 심하여졌습니다. 가재도구와 가전제품을 던지는 것부터, 나의 목을 조르기도 하고 칼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하고 구두를 벗어 딸의 얼굴을 향하여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뒤로는 남편이 늦는 날이면 둘째 딸아이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나는 칼과 가위 등 날카로운 것을 감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남편은 현관의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문을 안 열어준다고 발로 현관문을 마구 차기도 하고, 외부에서 발코니의 유리창을 향하여 돌을 던져서 발코니 유리창이 깨지기도 하였고, 한번은 맥주병을 깨서 현관 철문을 짓이겨 놓기도 하였습니다.
술에 취해 골프 연습을 한다고 골프채를 휘둘러서 거실의 전등을 모두 깨는 등의 기괴한 행동들은 그저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습니다. 나는 동네에서는 창피해서 낮에 집 밖을 나가는 것을 피하기도 하고 낮에 다니기가 힘들 때도 있어 아예 뻔뻔스럽기로 작정을 하고 다녔지만, 내 안의 수치심들은 나를 점점 병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힘이 들었던 것은 온 가족을 밤새 못 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이 어느 정도 술이 깨어서 새벽에 잠이 들면 아이들은 조금 자고 나서 학교에 가야 했고, 나는 아이들 아침 식사와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밤을 하얗게 새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수업 시간에 졸고 그래서 선생님들께 불러가곤 하였습니다.
남편이 나중에는 집 안팎을 가리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여 나는 머리에 상처가 나서 피를 많이 흘리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남편을 돕는 방법으로 경찰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알코올 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겠다는 약속을 한 후 고소 취하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일주일 입원을 한 후 자신에게 알코올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술을 끊겠다고 하여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병원에서 주는 약도 먹고 열심히 종교 생활도 하려고 하면서 술을 끊어보려고 노력하였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술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 남편을 향한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나도 남편을 향해 언어폭력을 사용하면서 나의 분노를 마구 쏟아부었습니다. 그런 나의 행동들로 인하여 남편의 증상들은 더욱 심해져 갔고, 그동안 감쪽같이 몰랐던 여자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 카프 병원 전경 ⓒ프레시안(김윤나영) |
거듭되는 가정 폭력…수치심에 자살 시도까지
나는 결국 남편의 술 문제를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나를 도와줄 곳을 찾기 시작하였고 집 근처의 알코올 센터와 카프(KARF)를 알게 되었습니다(카프에 관해서는 <35년 '술 지옥' 박 씨 "날 살린 병원을 없앤다니…"> 참조). 알코올 센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체계적인 교육이 안 됨을 알고 (재)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내 카프 이용 센터로 가서 도움을 신청해 2007년부터 가족 교육을 받았습니다. 집단을 통한 가족 교육과 상담을 통하여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마음과 생각을 나누면서 조금씩 용기도 생기고 밝아지고 남편을 돕고자 하는 결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코올 의존은 가족병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남편이 그 지경이 된 것에는 나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의 언어 사용과 행동 패턴들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보고 남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달라진 나의 행동을 보고 남편이 당황스러워하면서 증상은 더욱 나빠지고,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나가서 원룸에서 생활을 하며 영양실조 지경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나는 좌절하지 않고 카프 이용 센터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내면 탐색 집단 상담과 공동 의존 12단계 교육을 받고 숲 치료를 통하여 정서를 순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카프 체육대회 때에는 마음껏 운동하고 응원도 하면서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혼자 버림받은 느낌이었는데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카프 이용 센터의 센터장님과 모든 직원 분에게 감사드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 감사가 깊어집니다. 카프 이용 센터를 통하여 이 사회에 내가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살아갈 용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의 형편과 처지를 그리고 그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을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곳은 카프 이용 센터의 가족 모임과 카프에서 장소를 제공해주신 '알아 넌' 모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마음이 참 편합니다.
2010년 2월 초에 남편은 10여 일에 걸쳐서 자살을 하겠다고, 사라져 버리겠다고 하는 문자들을 매일 나와 자녀들에게 보내왔습니다. 나와 세 딸은 힘을 모아 남편에게 제대로 된 알코올 치료를 받게 도와주자고 결정을 하고 남편을 알코올 전문 병원에 3번째로 강제 입원시켰습니다. 그곳에서 퇴원 후 카프의 참사랑 주간 재활에 참여하여 6개월여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밭농사도 하고 숲 치료도 하고 내면 탐색 과정과 12단계 등을 통하여 남편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주간 재활을 통하여 혼자 하는 단주가 아닌, 같이하는 단주를 경험하였습니다. 술만 단순히 끊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변화가 같이 일어나는 단주의 과정을 통하여 저희 가정은 '행복하다'라는 느낌을 다시 만났고 아이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놀라워하였습니다.
카프에서 치료받으며 달라진 남편…"행복한 집" 딸의 말에 눈물이 났습니다
어느 날, 지금은 고3이 된 딸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엄마, 동화 속에 나오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은 없는 것인지 알았는데 우리 집이 그런 행복한 집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속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더 힘들었나 보다 하고요. 나는 반성하면서, 내가 공동 의존자로 다시 재발을 하지 않기 위하여 카프 이용 센터의 가족 교육에 열심히 나가서 나를 돌아보고 키우는 작업들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작업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편은 카프 참사랑 주간 재활을 마치고 사회적 기업인 카프청미래사업단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사회 복귀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곳을 통하여 서로 뜻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과 분노를 관리하는 방법들을 익혀나갔고, 그런 것들이 본인의 단주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스스로 느끼면서 더욱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그저 감격적이었습니다. 지금은 20여 개월의 카프 카페 근무를 마치고 재단 산하 야간 당직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 그리고 정기적인 점검을 통하여 남편은 카프와 더불어 단주를 해 나갈 수 있었고 저도 나의 일들을 잘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인격을 존중해 주도록 노력하면서 자녀들은 과거의 불안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멋진 남편이고 멋진 아빠일 수 있는 사람이 술로 인하여 망가지고 망가져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가정이 살아날 수 있고, 그래서 다른 알코올 의존 가족들에게도 희망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재)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처럼 이렇게 체계적인 예방, 치료, 재활, 사회 복귀 절차를 밟을 있는 곳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잘 자리 잡은 (재)한국음주문화센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소 망설임 속에서 용기를 내어 이렇게 발언하게 되었습니다. (재)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를 정상화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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