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제주 중문단지 외곽에 위치한 컨벤션센터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대회'가 끝날 즈음 방송차량에서 시위 인솔자가 이같은 말을 했다.
8000여 명의 제주 농민을 포함해 1만여 명의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협상장인 신라호텔 방향으로 발걸음을 뗐다. 조만간 있을 경찰 병력과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집회 참가자들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을 찾기 힘들었다.
의례적인 몸싸움을 잠시 한 다음 곧바로 정리집회를 갖는 종래의 집회 방식을 집회 참여자들이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500여 미터 쯤 행진을 하자 집회대오를 맞이한 것은 도저히 물리력으로는 넘을 수 없는 철제 컨테이너였다.
도로를 가득 메운 철제 컨테이너는 이미 이틀 전날 밤에 설치됐다고 인근 주민들이 말했다. 컨테이너 뒤에는 혹시라도 시위대가 넘어올세라 방패로 무장한 전의경들이 새까맣게 배치돼 있었다.
이때부터 예상 외의 사태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앞에 수십 명의 시위대만 남고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민주노총 소속 회원들이 멀찌감치 제주 앞 바다로 가는 우회도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한 간부는 "저리로 가도 (협상장으로) 갈 길은 없는데…"라고 혀를 찼다. 기자들도 컨테이너 앞 시위대의 활동을 취재해야 할지, 우회도로를 택해 다른 길로 접어든 시위대를 따라가야 할지를 놓고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이같은 혼란은 채 20분도 되지 않아 가라앉았다. 우회도로를 택한 시위대 100여 명이 중문단지 내 천제2교로 방향을 잡는 모습이 관측됐기 때문이다.
천제2교의 끝부분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맞은 편에 신라호텔로 이어지는 방파제가 보였다. 그 순간 시위대원들이 차례로 바다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전에 준비한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일부 시위자들은 아무런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헤엄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뒤에서 봉쇄망을 펴고 있던 경찰도 허겁지겁 천제2교 맞은 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방파제까지 병력이 이동을 완료했을 때는 이미 30여 명의 시위자들이 물을 건넌 상황이었다.
방파제 위에서 경찰에게 막힌 시위자들은 또다시 물에 들어가 방파제 옆으로 이어지는 중문해수욕장 해변을 따라 헤엄쳐 갔다. 1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해변 모래 위에 일자로 서서 시위자들이 뭍으로 올라오길 기다렸지만 시위자들은 2km 남짓한 거리를 줄곧 헤엄쳐 갔다.
한편 방파제 반대편에서는 민주노총 회원들이 산을 넘고 있었다. 200여 명의 노동자들은 경찰병력이 컨테이너 주변과 헤엄쳐 물을 건너가는 시위자들에 대응하기 위해 분산된 틈을 타 허술해진 봉쇄망을 뚫기 시작한 것이다.
오후 6시 30분 현재, 협상장인 신라호텔로 진입하려는 시위자들과 이들을 막으려는 경찰이 서로 대치하면서 숨바꼭질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측은 이날 저녁부터 촛불문화제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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