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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에서 부활한 괴벨스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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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1세기 한국에서 부활한 괴벨스의 속삭임

[민교협의 정치시평]<15> 한미FTA 1년…아직도 '괴담'이라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일주년에 즈음하여 오렌지 수입 등의 급증으로 재배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뉴스가 등장했으나, 오히려 정부는 한미 FTA가 우리 경제의 활력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히 일 년간의 한미 FTA로 한국의 수출 증대뿐만 아니라 예상되었던 농업 피해도 미미하다는 장밋빛 보도를 내보냈다. 물론 이들도 최종 소비자의 체감 효과만은 포장할 수 없었기에 한미 FTA 효과를 소비자들이 느끼고 있다고는 차마 쓰지 못했다. 더욱이 한미 FTA의 최종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는 1년이 아니라 향후 5년, 10년 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날 결과가 아니었던가.

제시된 표면적 통계 수치의 허상이 다양한 각도에서 지적되었고 그 효과에 대한 부풀림과 의도적인 해석이 점차 드러났다. 더욱이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공언했던 약속마저 무시한 채 미국에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마무리된 한미 FTA는 세계 주요국이 저마다 과도한 국가 부채와 저성장 및 고실업 문제로 인해 미국의 양적 완화나 일본의 엔화 약세 정책 등과 같은 국제적 자국 이기주의 속에 놓여있다.

여전히 정부와 이에 아부하는 조중동이라는 주요 언론은 현실을 알려주기는커녕 진실을 왜곡한 채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라는 인식을 일반인들에게 심기 바쁘다. 특정 집단 내의 다수가 믿는 것이 사실이 되는 것처럼 이는 여론 조성을 통한 왜곡된 사실 만들기이며, 진실을 가리고자 하는 전형적인 선동 정치의 모습이다. 이런 행태는 어차피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생존할 수 있는 정치 집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공정 보도를 생명으로 해야 하는 주요 언론으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기도 하다. 권력을 지향하고 권력으로부터 혜택을 얻고자 정치권력에 아부하며 정치선전에 앞장서서 그들의 기관지로 전락한 모습이고, 더 이상 사회의 공기로서의 의미를 포기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가 된다. 이렇듯 주요언론이 기득권을 위해 왜곡된 사실을 만들어 대중으로부터 이득과 권력을 얻어내는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이들의 행태야말로 힘없는 이들을 더욱 착취하는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라면 그 무엇일까.

그런데 우리 사회에 단지 부끄러운 행태를 넘어 철저히 불법적인 짓을 벌인 집단이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 힘을 집중해야할 국가기관이 특정 정치 집단을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의 노력을 해온 것이다. 이제는 정치적 문제로 전락해 버린 국정원 직원의 인터넷 댓글 사건뿐만 아니라 국정원장 차원에서 국정원이 일반 시민사회에 개입해서 특정 정치권의 입장을 옹호하는 여론 형성을 적극적으로 주도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물론 정권이 이런 식으로 행동한 것은 이미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 졸속 타결에 반대한 치열한 시민 저항에 부딪힌 정부가 은밀하게 인터넷 상의 여러 사이트에 들어가 여론 조작을 한 것이 댓글팀에 속했던 한 젊은이의 양심선언으로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상황은 국가 기관에 의해서, 그것도 국가 안위를 위해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할 정부 기구가 국민을 상대로 공작 활동을 한 셈이다. 이것이 국가 권력이 양민을 학살했던 광주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라면 그 무엇일까.

국정원이 그동안 시민사회에 깊숙이 개입해 온 행태는 일전에 논란이 되었던 청와대 민간인 사찰과 맥을 같이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상대 정당의 사무실을 도청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이 사임해야 했던 미국 사례보다 더 심각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권의 변명과 물타기 수법으로 흐지부지 진행되었음을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 상의 댓글을 포함해 점차 별 것 아닌 것으로 몰아가면서 사회 분위기는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이 단지 정치적 이해관계이자 당략 차원의 싸움인 것인양 포장되어 버렸다. 이렇듯 불행히도 주류 언론이 부유시킨 사실 왜곡의 선동적 언어는 한국 사회의 건전한 비판 기능의 마비를 유발한다.

4대강 사업도 그렇게 흘러갔다. 용산 참사의 가난한 이들은 도시 게릴라가 되었고, 쌍용차 사태의 노동자들은 폭도가 되었으며, 한진중공업 근로자들 내지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한국 경제를 파괴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범법자들 집단에 불과하다. 또한 많은 성실한 언론인을 거리에 내몬 언론 장악 실태와 이를 철저히 포장하며 왜곡하는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어떠한가. 우리 사회에 떠돌아다니는 이런 선동의 속삭임은 삶의 현장을 부유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그토록 제대로 살아보고자 노력했던 노동자들이, 남겨둔 가족에 대한 안쓰러움에 눈도 감지 못한 채, 봄날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목숨을 끊어야 했던 것이 이렇게 부유하는 선동의 속삭임 때문이 아니라면 그 무엇인가.

진실을 호도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선동에는 이처럼 언제나 이권을 위해 정권 기관지로 전락한 언론이 앞장서는 전근대적 사회문화가 작동한다. 구조적 사회 문제 혹은 잘못된 국가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치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화를 거부하며 강행하는 행태를 수없이 보아왔다. 정부나 여권이 이를 지적하는 국민에 대해 문제의 본질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취하는 전통적 수법 중의 하나가 언론 권력과 결탁해 상대방을 종북 등의 색깔 내지 진보ㆍ보수라는 틀을 씌우는 구태의연한 행태이다.

이외에도 아주 뻔뻔스런 방식으로는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했던 약속이나 명확한 내용을 없었던 것인 양 부정하거나 상대방의 주장으로 인해 얻어진 결과를 마치 자신들이 주장해서 얻어진 것처럼 포장하는 수법도 있다. 이는 올해 일본이 2008년도 촛불 시민들의 주장과 같이 '3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 수입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한 것이나, 그토록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사례에 대해서 정부와 조중동이 취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2008년 정부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이 과학적이고 국제 기준이라고 강변하면서 주변국이 모두 30개월 이상 쇠고기 조건으로 곧 수입할 것이라고 했고, 동시에 미국은 안전하기에 앞으로 광우병 발생은 절대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주장이 맞지 않는다면 즉시 미국과 재협상하겠다고 했다. 당시 조중동은 협상을 졸속타결한 정부에 아부하면서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을 주장하는 시민들은 종북 불온 운동세력에 선동당한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최근 일본 사례에서도 보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 주장은 허구임이 밝혀졌고, 당시 시민들의 주장이야말로 과학적이자 국제 기준에 맞는 것임이 명백해졌으나 정부와 조중동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아니 모른 척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촛불 시민의 저항으로 얻어낸 결과를 마치 자신들의 성과인양 선전한다.

그토록 안전하다던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해당 부처 장관은 한국은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심지어 한미FTA 일주년 성과를 포장하던 <중앙일보>는 '거짓으로 드러난 한미 FTA 괴담'이라는 3월 18일자 사설에서 괴담의 사례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간광우병이 창궐할 것이란 주장이었다. 실제로는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는 전혀 수입되지 않았고 단 1명의 광우병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다. 현재 한시적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고 있어서 그나마 안전성이 보장되고 있는 것은 촛불 시민들의 요구에 따른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의 결과를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잘못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이다. 부분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넣어 자신들의 잘못을 슬쩍 덮는 행위에 불과하다.

시간이 흐르고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서 당시 정부나 자신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대책을 세운다면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이들은 태생적으로 자신과 반대되는 내용이나 지적은 처음부터 아예 듣거나 보지도 않는 자들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오히려 자신들이 폄훼하던 이들의 노력을 채가는 언론의 이런 천박한 짓거리야말로 말장난으로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가는 사기꾼의 전형적 모습이 아니라면 그 무엇일까.

IMF나 WTO, FTA로 상징되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등장과 시장혁명 이후 개방과 자유경쟁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는 더 이상 사회평등을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사회 불평등의 근거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불행히도 이것을 강화시키며 현실의 불평등 문제를 크게 왜곡시키는 것이 언론매체이자 이들에 의한 인터넷 여론 조성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등장하면 선정적인 사건을 인터넷에 올리고 조직적인 댓글 조작을 통해 문제의 초점을 흐려버린다. 그렇게 본다면 과학이 발전해서 더욱 투명해진 것 같지만 오히려 더욱 대중을 조정하기 쉬워졌다. 선동의 속삭임은 이제 넘쳐나 일상이 된 셈이다.

우리 주변에 부유하고 있는 선동의 속삭임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실보다는, 당장 집단의 다수가 믿어 형성되는 사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의 삶을 서서히 파괴한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진실과 사실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과 사실이 간극이 있을 때 비록 언젠가는 진실은 밝혀질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늘 사실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이번 대선에서 거론된 인혁당 사건에서처럼 주변 사람들이 무고한 이들을 간첩이라는 허위 사실로 포장함으로써 사법살인이 가능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한미 FTA에 대한 주류언론이 하고 있는 왜곡된 사실의 재생산이야말로 너와 나의 삶을 갉아먹는 쥐의 행태가 아니라면 그 무엇일까.

폭력이란 바람직한 관계의 왜곡과 단절이기에, 선동의 속삭임은 언제나 폭력을 암시한다. 기득권자들이 표면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결코 옳지 않은 이야기로 일반시민을 선동함으로서 이들이 취하는 경제적 이득과 권력이란 결과적으로 시민들에 대한 착취와 소외라는 폭력적 상황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99%의 분노한 시민들이 미국 금융가를 점령한 것은 이러한 폭력적 상황에 대한 분노였으나, 그 밑에 작동하는 선동의 실체를 직시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선동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에 의해 빚어지는 진실과 사실의 틈새를 바라볼 수 있는 깨어있음이다. 깨어있는 시민의식이란 난무하는 선동의 어휘 속에서 혼재된 진실과 사실의 틈새를 알아차리는 힘이 되는 것이고, 진실을 가리는 자들에 의해 가속화되는 불평등한 사회 개선을 위한 참여와 연대로 전개되어야 한다.

일제와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빌붙어 지금도 그 단물을 빨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치권력, 언론권력, 자본권력, 더 나아가 종교권력들은 나치정권의 선전부장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주장을 집단으로 성실히 실천하고 있다. 그는 '99가지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고 말하면서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 믿게 된다'고 했고, 또한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양극화를 조장하는 정부와 조중동에 의해 만들어져 우리의 귓가를 떠도는 이 파괴적 선동의 속삭임들, 단지 국정원 차원이거나 쓰레기 언론 수준의 목소리만으로 보기에는 너무 뿌리가 깊은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 국정원과 조중동의 행태는 늘 우리들 삶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21세기 한국에서 되살아난 괴벨스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 반세기 이상을 후퇴한 듯하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서 기획한 '민교협의 정치시평'이 매주 목요일 <프레시안>에 연재됩니다. 민교협은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로, 칼럼은 매주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며 연재합니다. 이 칼럼은 민교협 홈페이지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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